CCTV에 훔치는 장면 딱 찍혔는데… 2만원 택배 절도 '무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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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훔치는 장면 딱 찍혔는데… 2만원 택배 절도 '무죄' 왜?

2025. 11. 20 11:23 작성
조연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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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봉투 택배물 가져갔으나

다세대 주택 공동 배송 등 ‘정황 증거’만으로는 절도죄 입증 못 해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24년 12월 서울 영등포구 한 다세대주택 앞 계단에서 2만 2천원짜리 코팅장갑 택배가 사라졌다.


배송기사가 배달을 완료한 지 불과 몇 분 만이었다.


피해자는 CCTV 영상을 확인한 뒤 이웃 주민을 절도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착오로 가져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범행 현장 포착됐지만, 고의성 입증 안 돼

2024년 12월 11일 낮 12시 34분, 피고인 A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다세대주택 앞 계단에서 검은색 택배 봉투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피해자 C씨가 주문한 코팅장갑이 배송된 직후였다. C씨는 택배 도착 알림을 받고 계단으로 나갔지만, 자신의 택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C씨는 곧바로 CCTV를 확인했고, A씨가 검은 택배 봉투를 가져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분명히 내 택배를 가져갔다"고 확신한 C씨는 A씨를 절도 혐의로 고소했다.


검찰도 이를 받아들여 A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A씨는 처음부터 혐의를 부인했다. "남의 택배를 훔친 적이 없다. 그날 내가 주문한 택배를 가져간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4가구 공용 계단, 여러 택배 뒤섞여

재판부가 주목한 것은 사건 당시의 '상황'이었다. 해당 다세대주택에는 4개 세대가 거주하고 있었고, 모든 세대의 택배가 한 곳인 계단 앞으로 배송됐다.


배송기사가 C씨의 코팅장갑을 놓았을 당시에도 이미 다른 택배물들이 계단에 함께 놓여 있었다.


A씨는 온라인 쇼핑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건의 택배를 받았고, 문제가 된 그날도 검은 봉투 외에 두 개의 택배를 더 가져갔다. 특히 A씨가 주문한 상품 중에도 검은 봉투로 포장된 것이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합리적 의심' 여지 있으면 무죄 원칙

법원은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을 강조했다. "유죄 인정은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검은 택배 봉투를 가져간 것은 사실로 보인다"면서도, "그것이 피해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여러 세대의 택배가 한 곳에 모여 있었고, A씨도 당일 여러 택배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검은 봉투 포장도 흔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종합하면, A씨가 자신의 택배로 착각해 가져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대법원 판례(2006. 3. 9. 선고 2005도8675)를 인용했다.


택배 분쟁, 입증 책임은 검찰에

결국 법원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5년 11월 4일 선고된 이 판결은, 공용 공간에서 발생하는 택배 분쟁의 새로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CCTV에 찍혔다는 사실만으로는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다세대주택이나 원룸처럼 여러 세대가 한 공간을 공유하는 경우, 택배 수령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착오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는 한 절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리를 확인했다.


택배 도난 사건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형사재판의 '무죄추정 원칙'과 '합리적 의심 배제' 기준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입증 책임은 어디까지나 검찰에 있으며, 의심만으로는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치주의의 기본 원칙이 관철된 사례다.


[참고] 서울남부지방법원 2025고정812 판결문 (2025. 11. 4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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