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 (2)] 치매 걸린 우리 할아버지의 권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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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교수의 '모르면 후회할 법 이야기' (2)] 치매 걸린 우리 할아버지의 권리행사

2019. 07. 30 12:10 작성
호문혁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omoo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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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노인들을 보호하는 법제도가 아무리 완벽해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정신으로 나이를 먹는 것보다는 훨씬 못하다. / 이미지 편집 김주미 기자

-편집자 주-

원로법학자 호문혁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시민이 알아야 할 기초적인 법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세이 형식으로 연재한다.

호문혁 교수는 사법정책연구원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초대 이사장 등을 지내고 저서 「민사소송법」으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민사법학자다.



“사람이 칠십 년 살기가 예부터 드물었느니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매일 관아에서 퇴근하면 옷을 전당포에 맡기고 술을 마시며, 가는 곳마다 술빚이 널려 있다고 신세타령을 한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이런 멋진 구절을 남기더니 본인도 60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요새 우리는 백세 시대를 살고 있으니 사람의 목숨이 많이도 질겨졌다.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오래 살다 보니 1500년 전 두보 시대는커녕 50년 전에도 듣도 보도 못한 노인 질병들이 등장해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아마도 그중 가장 두려운 것이 ‘치매’라는 병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권리능력을 가지지만, 권리를 행사하거나 법률행위를 하려면 제대로 된 ‘의사표시’를 해야 하는데, 치매에 걸린 사람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의 권리능력을 빼앗을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려야 하므로, 누구나 똑같이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사람의 권리능력을 부정하거나 제한하는 것, 예를 들어 노예제도를 인정한다든가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등은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이처럼 의사표시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법이 먼저 상정하는 것이 있는데, 자기의 의사를 제대로 형성하고 표시할 수 있는 능력인 ‘의사능력(意思能力)’이다.


의사능력이 없는 사람이 표시한 의사에 법적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치매 노인이 자기가 살고 있는 10억 원짜리 주택을 남에게 공짜로 주겠다고 계약을 한 경우에 그 계약의 효력을 인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의사무능력자가 한 의사표시는 무효임을 논리적 전제로 한다. 본래 법률행위는 ‘의사표시’를 불가결의 요소로 하므로, 의사표시가 무효이면 그에 터잡은 법률행위도 효력이 없다.

이처럼 의사무능력자의 행위를 무효로 처리하면 이들을 보호할 수는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거래를 할 때 나중에 이 거래가 무효가 될 염려를 없애려면 거래 상대방이 거래 당시에 의사능력이 있는지를 일일이 점검을 해야 하는데, 이러면 거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의사능력 유무에 관한 객관적인 기준과 표지(標識)를 만들어서 거래 당사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거래가 원활해진다. 이러한 필요에서 만든 제도가 ‘행위능력(行爲能力)’이다.


미성년자처럼 ‘나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서, 또는 법원이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재판’을 하여서 능력이 없거나 제한되는 사람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하고, 친권자나 후견인이 이들을 보호하면서 모자라는 능력을 보완해주도록 하는 제도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행위무능력자’라고 하고, 이들을 미성년자와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로 분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무능력 제도는 의사능력이 제한되는 사람들의 상황이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이들의 능력을 부정하거나 제한하고, 특히 장애인들에게 낙인을 찍는 인상을 주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


이를 시정하고자 2011년에 민법을 개정하여 구체적 상황에 맞는 보호 방법을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제한능력자’ 제도이다.


민법은 제한능력자로 미성년자와 피성년후견인, 피한정후견인, 피특정후견인에 관하여 규율한다. 이들 제도에 관하여는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금치산이나 한정치산 제도보다는 훨씬 세밀하고 복잡하다.

오늘날 백세시대에 대부분의 노인들은 오래 살다가 치매에 걸려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거나, 요양원에서 정신줄 놓고 쓸쓸히 세상을 하직할 날을 기다리게 될까봐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다.


이들을 보호하는 법제도가 아무리 완벽해도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정신으로 나이를 먹는 것보다는 훨씬 못하다. 누구든지 효과가 확실한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면, 그 사람에게 노벨 의학상은 물론이고 평화상까지 얹어서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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