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火)를 에너지(力)로 바꾼다⋯'화난사람들' 대표 최초롱 변호사
분노(火)를 에너지(力)로 바꾼다⋯'화난사람들' 대표 최초롱 변호사
두 돌 맞은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이끄는 최초롱 대표
조주빈 엄벌 탄원서,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사건 등⋯'법.알.못'들의 분노 모아
"지금 단계는 10점 만점에 1점"⋯'최종 진화 단계'는 장벽 없이 찾아오는 플랫폼

'법알못'의 분노를 장작 삼아 활활 태우는 화력발전소 '화난사람들’. 지금까지 7만명 이상이 이곳에서 열린 사건에 참여했지만 최초롱 대표는 점수를 매기자면 아직 10점 만점에 1점이라고 했다. 이유를 들어봤다. /용산=안세연 기자
거대한 화력발전소처럼 보였다. 사건명과 함께 '타오르는 불' 이모티콘을 보고 든 생각이다. 동력은 '분노'. 여기선 '법알못(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분노가 구체적인 '에너지'로 바뀐다. 약 2만 6000장. 텔레그램 n번방 박사 '조주빈'의 엄벌 탄원서는 그렇게 모였다.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이 두 돌을 맞이했다. '공동소송'이라니 생소하다. 발전소장 최초롱(33) 대표는 "내 화가 의미 있어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최 대표는 2년째 '법알못'의 분노를 장작 삼아 활활 태우고 있다. 분노가 "의미 없이 흩어지는 게 안타까웠다"고 한다.
"지난 4월 '여러분이 생각하는 디지털 성범죄 처벌 기준을 들려달라'는 프로젝트에는 국민의견서 2만장이 모였어요. 한 장씩 출력하면 책으로 40권 분량이 나오더라고요. 이 프로젝트 담당 변호사님이 산처럼 실어서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했죠."
실제로 약 2주 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기준을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50건 이상의 사건이 화난사람들 플랫폼을 통해 열렸고, 7만명 이상이 '화난사람들' 플랫폼에서 열린 사건에 참여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지금 단계는 "10점 만점에 1점"이라고 잘라 말한다.
"저희 진짜 맨땅에 헤딩하고 있어요. 이제 막 2단계에 첫발을 디딘 거죠."
"(웃음) 감사합니다. 그런데 담당하신 김영미 변호사님이 사실 의견서를 모두 출력한 것도 아니었어요. 다 출력하면 책으로 40권 분량이 나오더라고요.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그걸 전부 다 읽을 시간은 없을 것 같았어요. 나름대로 텍스트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 요청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김 변호사님이 정리한 다음 제출한 게 이 정도였습니다."
"앞으로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잊히지 않도록 하고 싶었어요. 실시간으로 탄원에 참여한 사람의 현황이 반영되는 상황판을 만들었죠."
"네. 아주 '뼈 아픈 후기'를 받았죠. 'BMW 화재 차량 공동소송'이 저희 플랫폼에서 진행되고 있거든요. BMW 본사가 독일에 있잖아요. 피고가 해외에 있다 보니까 서류 전달 절차만으로도 굉장히 오래 걸리거든요. 재판 진행이 더딘 상태에요.
참여해주신 분들 중에 불만이 쌓인 거죠. 이런 피드백이었어요. '오히려 화가 난다. 내가 참여한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 굉장히 마음이 아팠죠. '아, 이제부터라도 플랫폼으로서 화난사람들에서 열린 사건들의 진행 상황 공유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난 2018년. BMW에서 연쇄적으로 화재가 발생한 사건이 공분을 샀다. 특히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부품 결함을 'BMW 코리아'가 알면서 묵인했다는 은폐 의혹이 일었다. 현재 해당 차주들은 '화난사람들'에서 단순 리콜 이상의 피해 보상과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이 생각하는 '디지털 성범죄 처벌 기준을 모아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어요. 2만 장 정도가 모였죠. 그때 저희가 의견서를 '한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 글자 수 제한을 걸었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이 '이걸로는 우리의 의견을 다 담을 수 없다!'고 하시면서(웃음). '이런 프로젝트를 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엄청난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주셨었거든요. 그런 이메일이나 댓글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힘이 나는 것 같아요."
화난사람들에서는 변호사가 이처럼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분석해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하고, 법적 분쟁 '참여자'와 '변호사'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참여자들은 실제로 연결된 담당 변호사와 함께 고소 또는 고발 등에 나서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반응이 있었습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사건이었어요. 그때 1817명이 '화난사람들'을 통해 대한항공의 약관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심사청구했습니다. 담당 변호사님이 참고 자료 없이! 본문만 70장이 넘는 약관심사청구서를 작성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직접 제출을 했죠.
그랬더니 보통 공정위도 이렇게까지 안 한다고 하는데.(웃음) 공정위에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신청을 했느냐'면서 먼저 이 프로젝트를 연 변호사님들에게 만나자고 했더라고요. 나중에 변호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담당 팀장님까지 오셔서 회의에 참석했다고 하더군요."
'대한항공 마일리지 개편 사건'이란 대한항공에서 지난 1월. 마일리지 정책을 고객 동의 없이 변경한 사건을 말한다. 고객 75%의 마일리지가 깎여나가는 조치였기 때문에 반발이 거셌다. 화난사람들을 통해 법무법인 태림 변호사들은 대한항공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공동소송이 그렇게 매력적인 시장은 아니에요. 당사자가 많다 보니까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여기에 대한 수익 자체는 작거든요. 지금까지 참여해주신 변호사님들도 (대가를 바라는 마음보다는) 공익적 측면에서 진행하신 경우가 많아요. 정의감에 불타서."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먼저 저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정보 관리 툴이 있습니다. 여기서 변호사님이 손쉽게 자료와 정보를 관리할 수 있어요. 원래는 당사자로부터 자료를 받고, 전산화를 또 하고, 계속 관리도 해야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두 번째는 변호사님과 참여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돕습니다. 개개인이 한 번씩만 변호사님에게 전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변호사님들은 수십, 수백 통의 전화를 받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화난사람들에서 소송 진행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면 조금 더 효율적이겠죠. 그런 서비스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우선 자료 관리에서 '훨씬 편하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죠. 또 화난사람들 플랫폼을 통해 참여자들이 많이 모이잖아요. 아무리 변호사라도 혼자서는 잘 안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등을 떠밀어주면 변호사님들도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선순환이죠."
"처음엔 정말 그랬어요. 변호사 자체가 의심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까(웃음). 모르는 사람이 불쑥 연락한다고 무시당할 때가 제일 많았죠. 사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니까.(웃음)
그래도 요즘은 한 번 더 들어주시는 것 같아요. 타율이 조금 올라갔어요. 아주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오르고 있어요(웃음). 그래도 여전히 맨땅에 헤딩이에요. 어떻게든 연락드릴 때 접점 하나라도 더 찾으려고 고민하고, 무작정 이메일이나 문자 보내고. 그렇게 부딪히고 있습니다."
"고통은 굉장히 많이 느껴요.(웃음) 정말!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제가 터지거든요. 스타트업을 운영해 보니까 이런 작은 결정 하나하나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고통스럽죠.
그래도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스타트업을 창업할 것 같아요. 후회는 없습니다. '창업가 정신'을 키우면서 스스로 단련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문제든 해결하겠다는 정신."
"10단계 중에서 1단계인 것 같아요.(웃음) 구상했던 서비스 중에서 아주 초기의 서비스만 시행되고 있거든요. 저희가 굉장히 소규모 조직이에요. 개발자, 디자이너, 홍보 마케터, 그리고 저. 이렇게 4명이서 운영하다 보니까 기획부터 실현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요. 그런 점이 아쉽죠.
그래도 이번 달부터는 제보, 신고 기능을 강화했어요. 누구든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화난사람들을 찾아왔으면 해서요. 그러니까 이제 막 2단계에 첫발을 내디딘 셈이네요."

"많은 분들이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요. '이걸 법대로 해결해야 하나?', '변호사는 또 어떻게 찾지?'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몸이 아플 때 병원 가거나, 약국 가는 건 고민 자체를 안 하잖아요. 저희 화난사람들도 내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이런 고민 없이. 장벽을 느낄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법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그런 플랫폼이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