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골 시신이 내 딸일까 두렵다" 21년 전 사라진 5살 딸, 엄마는 희망을 놓지 못한다
"백골 시신이 내 딸일까 두렵다" 21년 전 사라진 5살 딸, 엄마는 희망을 놓지 못한다
'단순 가출'로 치부한 초동 수사의 아쉬움
'태완이법'이 미제 사건에 희망인 이유

1,050명의 장기 실종 아동 가족은 오늘도 아이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다. /셔터스톡
2년 전 남한산성 등산로에서 발견된 5세 아이의 백골. 경찰이 장기 실종 아동 명단을 확인하던 중, 한 어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골의 신원이 내 딸로 결론 날까 너무 두렵다." 21년 전 자전거를 타다 사라진 딸을 기다려온 엄마의 절규였다.
다행히 DNA는 일치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공포는 1,050명에 달하는 20년 이상 장기 실종 아동 가족들이 매일 겪는 현실이다.
17일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은 21년째 행방이 묘연한 우 양의 사연을 통해, 실종 골든타임을 놓친 아쉬움과 그럼에도 법이 꺼뜨리지 않는 희망의 불씨를 조명했다.
휴지 한 장 들고 사라진 아이…21년의 기다림
사건은 2004년 9월 경기도 광주시의 한 순댓국밥집 앞에서 시작됐다. 맞벌이 부모 대신 큰어머니와 지내던 5살 우 양은 가게 앞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었다.
그때 한 남성이 막걸리를 따다 얼굴에 튀었고, 이를 눈물로 착각한 우 양은 "아저씨 닦아줘야 한다"며 가게에서 휴지를 들고 나갔다. 그것이 가족이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경찰은 수사본부까지 꾸렸지만, 우 양의 행방은 묘연했다. 실종 당일 버스 정류장과 음식점에서 한 남성과 함께 있었다는 제보, 닷새 뒤 과자 봉지를 들고 울고 있었다는 목격담이 이어졌지만 결정적 단서는 되지 못했다. 경찰은 우 양에게 과자를 자주 사주던 전과 7범의 동네 남성을 유력 용의자로 의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
시간은 흘러 2023년, 남한산성에서 발견된 백골 시신이 5세 아이로 추정되면서 우 양의 가족들은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백골과 우 양 모두 어금니에 충치가 있다는 공통점은 가족의 애를 태웠지만, 신경치료 흔적이 없고 DNA가 불일치한다는 결과는 안도와 함께 깊은 절망을 안겼다. 진실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단순 가출" 경찰의 예단이 놓친 골든타임
우 양의 사례처럼, 실종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은 '단순 가출'이라는 섣부른 예단이다. 2002년 전남 순천에서 실종된 여고생 조수민 양의 사건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야간자율학습 후 친구에게 책을 돌려주기 위해 통학버스 대신 다른 길을 택했던 조 양은 그대로 연락이 두절됐다. 밤 11시, 딸이 귀가하지 않자 어머니는 파출소로 달려갔지만, 경찰은 "단순 가출로 보이니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휴대전화 마지막 신호 위치만 적어줬다. 그곳은 가족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낯선 지명, 보성 벌교였다.
CCTV도 없던 시절, 어머니는 다음 날부터 홀로 벌교 일대를 헤매고 다녔다. 언론 보도로 사건이 커지자 경찰은 뒤늦게 수색에 나섰지만, 이미 아이의 흔적을 찾을 골든타임은 한참 지나있었다.
로엘 법무법인 김수민 변호사는 이날 방송에서 "경찰이 인근 수색만 해줬어도 어머니 혼자 고군분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단순 가출로 치부한 초동 대처가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늦장 수사, 법적 책임 물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경찰의 소극적인 초동 대처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까. 현행 '실종아동법'(실종아동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경찰이 실종 신고를 접수하면 즉시 수색 조치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제9조).
만약 이를 어기고 조치를 미루면 담당 경찰관을 직무유기죄(형법 제122조)로 문제 삼을 수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나 경찰청 감사실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수민 변호사는 "CCTV 확보나 동선 추적 요청에 경찰이 비협조적일 경우,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정보 공개를 강제하고 행정소송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년이 지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
수십 년이 흐른 뒤 범인이 잡힌다 해도 처벌이 가능할까. '공소시효'가 발목을 잡지 않을까. 다행히 법은 장기 미제 아동 사건에 한 줄기 희망을 남겨두었다.
2015년 개정된 '태완이법'(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만약 우 양과 조 양이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다면, 범인은 언제 잡히더라도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또한, 강간 목적의 유괴 범죄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으며, 아동 대상 성범죄는 피해자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 진행이 정지된다.
법은 이렇게 범인을 기다리고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일같이 아이를 찾아 헤매는 1,050명의 부모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실종 아동을 위한 국가의 법적 지원과 DNA 데이터베이스가 운영되고 있지만, 가장 절실한 것은 우리 사회의 식지 않는 관심이다. 법이 공소시효를 멈춰 세웠듯, 아이들을 향한 우리의 기억 또한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