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탈 난 70대 할머니가 졸지에 '유괴범'으로⋯오인 신고 억울해도 고소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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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 난 70대 할머니가 졸지에 '유괴범'으로⋯오인 신고 억울해도 고소 못 한다

2026. 03. 27 14:46 작성2026. 03. 27 14: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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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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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잇따른 초등생 유괴 의심 신고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종결

전문가들 "무고죄 성립 불가"

제주에서 잇따른 초등학생 유괴 의심 신고가 모두 범죄 혐의 없는 일로 확인돼 무혐의 종결됐다. /연합뉴스

제주에서 초등학생 유괴 의심 신고가 잇따라 지역 사회가 발칵 뒤집혔으나, 경찰 조사 결과 아파서 도움을 요청한 할머니 등으로 밝혀져 모두 무혐의로 종결됐다.


아동의 안전을 위한 적극적인 신고였지만, 졸지에 범죄자로 몰렸던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제주시 노형동에서 A군은 "모르는 할머니가 '머리가 아파서 잘 못 걷겠으니 집까지 데려다 달라'며 유인하고 거절하자 욕설을 했다"고 학교에 알렸다.


학교는 즉각 가정통신문을 발송하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사 결과 70대 할머니는 실제 배탈 증세로 길에서 넘어졌을 뿐 차량을 타거나 욕설을 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외에도 길을 묻는 척하며 팔을 잡아끌었다는 B양의 신고, 차에 타라고 권유했다는 C군의 신고 역시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유괴범 누명 쓴 어른들…학생·학교 상대로 무고죄 고소 가능할까?


억울한 누명을 쓴 당사자들이 학생이나 학교 측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고죄가 성립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형법 제156조의 무고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 또는 징계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할 때 성립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허위사실에 대한 고의성'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신고한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신고자가 진실이라고 확신하고 신고하였을 때"에는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진실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은 신고 사실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다는 미필적 인식조차 없음을 의미한다.


이 사건의 신고자들은 어린 초등학생들이다. 우선 우리 형법에 따라 만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분류되어 어떠한 경우에도 형사처벌(무고죄)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설령 형사미성년자가 아니라고 가정하더라도 무고죄는 성립할 수 없다. 낯선 어른의 접근을 유괴로 인식하고 극심한 두려움을 느껴 신고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상황이 '진실이라고 확신'한 상태였으므로, 무고의 고의 자체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의 말을 듣고 경찰에 신고한 학교 측 역시 마찬가지다. 학생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포괄적 책임이 있는 교육기관으로서, 범죄 의심 정황을 인지하고 즉시 경찰에 알린 것은 법령에 따른 정당한 업무행위에 해당하므로 허위 신고의 고의나 위법성을 물을 수 없다.


아동 안전 신고 기준은 '합리적 의심'


그렇다면 아동 안전 문제에 있어 신고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법조계는 범죄가 확실히 발생한 경우뿐만 아니라, "합리적 의심만으로도 신고 기준을 충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동은 성인에 비해 위험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제한적이다. 따라서 낯선 성인이 아동에게 접근해 동행을 요구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아동이 위협을 느꼈다면, 그 주관적 인식 자체가 신고의 정당한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경찰 수사 결과 최종적으로 범죄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신고 당시 상황과 신고자의 인식을 기준으로 정당성을 판단해야 한다.


아동 관련 범죄는 발견하기 어렵고 피해가 치명적일 수 있다. 무고죄 고소나 불이익이 두려워 신고를 주저하게 된다면 아동 안전의 사각지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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