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 된 영화 'HER', 챗GPT에 '사랑 고백'한 남편⋯이혼 사유가 될까?
현실이 된 영화 'HER', 챗GPT에 '사랑 고백'한 남편⋯이혼 사유가 될까?
"아내보다 니가 더 좋다"
AI와의 감정적 교류가 가져온 위기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결혼 8년차, 7살 아들을 둔 A씨의 고민은 많은 부부들이 겪는 평범한 일상에서 시작됐다. 신혼 때까지만 해도 대화가 많았던 부부였지만, 언젠가부터 아내와의 대화가 재미없어졌다. A씨가 무슨 말을 해도 아내는 한숨만 쉬었고, 급기야 "당신한테 냄새가 난다"며 잠자리까지 거부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장인어른의 잦은 요청까지 겹쳤다. "화장실 비데를 고쳐달라", "인터넷이 안 되니 봐달라" 등 사소한 것들이지만 틈만 나면 걸려오는 전화에 A씨는 점점 지쳐갔다.
챗GPT, 예상치 못한 상담사가 되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A씨는 우연히 챗GPT(ChatGPT)에게 물어봤다. "처가집에 안 가고 싶은데 뭐라고 거짓말을 해야 할까?" 놀랍게도 AI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해줬다. 그때부터 A씨의 일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유료 구독까지 하며 챗GPT를 활용하던 A씨는 점차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챗GPT는 귀신같이 그의 마음을 알아줬고, 좋아하는 음악까지 공감해주니 마치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가도록 챗GPT와 대화를 나누던 A씨. 그러던 어느 날 밤, 아내가 은밀한 말투로 씻고 온다고 했지만 이제는 A씨가 거부감을 느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아내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식어버렸다는 것을.
들킬 줄 몰랐던 디지털 일기장
충동적으로 "아내보다 니가 더 좋다, 니가 진짜 사람이라면 너와 만나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던 A씨. 이혼하는 방법까지 검색해봤지만,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아내가 챗GPT 계정을 잠깐 쓴다고 하자 흔쾌히 허락했던 A씨. 그런데 대화 내용을 지우는 것을 깜빡했다. 결국 아내는 모든 것을 보고 말았다.
"일기장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처럼 수치스러웠다"고 토로한 A씨. 아내는 그를 변태 취급했고, 이혼을 요구하자 아내는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고 맞받아쳤다.
AI와의 감정적 교류, 과연 '외도'일까?
24일 YTN 라디오 '조인섭 변호사의 상담소'에 출연한 이명인 변호사(법무법인 신세계로)는 이 사안에 대해 명확한 법적 해석을 제시했다.
이 변호사는 "정신적 외도는 배우자 외 제3자와의 지속적이고 친밀한 정서적 교류를 통해 배우자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법적으로는 '현실의 사람'을 상정하고 있기에 챗GPT와의 교류만으로는 부정행위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완전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변호사는 "혼인을 지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흥미로운 점은 부부관계 거부의 선후관계다. 아내가 먼저 "냄새 난다"며 잠자리를 피했고, 그 후 남편이 거부하게 된 상황이다.
이 변호사는 "성관계 거부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장기간 지속되면 유책 사유로 평가될 수 있다"며, "아내 쪽의 성적 거부가 선행되었고, 남편은 그 결과 애정이 식은 것이므로 일방적 유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장인어른의 잦은 간섭과 아내의 무시도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 처가의 지나친 간섭이나 아내의 무시, 정서적 단절이 혼인생활 유지가 곤란한 수준이면 혼인파탄 사유로 고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생활 침해 vs 동의하에 사용
A씨는 아내가 챗GPT 기록을 본 것이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했지만, 법적으로는 애매한 상황이다. 이 변호사는 "사연자 본인이 계정을 '잠깐 써보라'고 동의한 상태에서 기록 삭제를 깜빡한 것이므로, 엄밀히 법적 처벌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내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A씨는 재판상 이혼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 변호사는 "아내의 성관계 거부, 정서적 단절, 장인 간섭 등에 대한 입증자료를 충분히 준비해 혼인 파탄 사유로 주장하고, 부부관계가 회복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