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상 허락도 없이 광고에 쓴 미국 회사⋯제재하려면 국제 소송밖에는 답이 없을까
내 영상 허락도 없이 광고에 쓴 미국 회사⋯제재하려면 국제 소송밖에는 답이 없을까
"사용자 영상 마케팅과 홍보에 사용할 수 있다" 약관
국내 약관법 따져보면 '무효'로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미국에 본사가 있는 해외 기업
허락 없는 영상 사용 막기 위해서는 국제 소송밖에는 답이 없는 걸까

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렸는데, 허락도 없이 광고로 쓰이게 됐다면? 법적 대응을 결심했지만, 외국 회사라면? '약관'을 제대로 안 읽었다는 이유로 그냥 손 놓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셔터스톡⋅구글플레이스토어 캡처⋅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지난 8월, 자기도 모르게 '본인' 얼굴이 담긴 광고 영상을 보게 된 A씨. 그 뒤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노래방을 못 가게 되자 한 애플리케이션(어플)을 이용해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 올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 영상이 광고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은 영상을 사용하라고 허락한 적이 없었고, "광고로 사용하겠다"는 어떤 사전 연락도 받지 못했었다. 악플까지 받아 가며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은 A씨.
미국에 본사를 둔 B어플 회사에게 여러 차례 메일을 보내 광고를 내려 달라고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에 법적 대응을 결심했지만, 넘기 어려운 산을 만났다.
바로 문제 제기를 위해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소송을 하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넘겼던 약관에는 "사용자 영상을 마케팅과 홍보에 사용할 수 있다"고도 써있었다.
억울하긴 하지만, '약관'을 제대로 안 읽었다는 이유로 그냥 손 놓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우선, B어플 회사의 "사용자의 영상을 홍보에 이용할 수 있다"는 규정에 문제 제기해보면 어떨까? 우라나라에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이라는 법이 있다. 이 법에 따르면 불공정한 약관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

'변호사 이민재 법률사무소'의 이민재 변호사는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다만, 약관법 제6조로 다퉈볼 수 있다. 해당 조항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성을 잃었다고 보는 조건 3가지도 규정해놨는데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 ▲고객이 계약의 거래 형태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에 따르는 본질적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의 경우다.
이민재 변호사는 "해당 약관이 위 조항에 따라 '불공정’한 조항으로 무효가 될지 여부는 위 사항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제반 사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약관법 제12조를 근거로 'B어플 회사의 규정'이 무효가 된다고 본 변호사도 있다. 해당 조항은 약관의 내용 중 무효가 되는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①일정한 작위(作爲) 또는 부작위(不作爲)가 있을 경우 고객의 의사표시가 표명되거나 표명되지 아니한 것으로 보는 조항.
②고객의 의사표시의 형식이나 요건에 대하여 부당하게 엄격한 제한을 두는 조항

③고객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자의 의사표시가 상당한 이유 없이 고객에게 도달된 것으로 보는 조항
④고객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업자의 의사표시 기한을 부당하게 길게 정하거나 불확정하게 정하는 조항
법무법인 고원 수원분사무소의 이지영 변호사는 "B어플 회사의 약관은 약관법상 무효로 규정한 조항 두 가지에 해당한다"고 봤다.
"B어플을 사용하며 '내 영상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는 의사를 보일 수 있다는 조항이 없다는 점(①), 또한 이용자에게 충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무단으로 사용자의 영상을 사용한 점(③)에서 그렇다"고 이 변호사는 말했다.
하지만 약관법의 적용을 가로막는 큰 장애 요소가 한 가지 있다. '준거법'이다. 해외에 있는 B어플 회사에 한국의 약관법을 적용하려면 "준거법은 대한민국 법률"이라는 점이 전제돼야 하는데, 그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준거법의 기준이 되는 국제사법 제32조에 따르면 '불법행위는 그 행위가 행하여진 곳의 법에 의한다'고 규정돼있다. 한국인인 A씨가 국내에서 해당 어플을 이용하다 생긴 일이므로 한국의 법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미국에 위치한 B어플 회사의 서버를 통해 서비스가 제공됐고, 이용자 영상들이 홍보에 사용된 것으로 보여 불법행위가 벌어진 곳은 미국이 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다만 예외적으로 국내법원의 관할을 인정할 때도 있다. 지난 2017년 서울고법은 "구글에 가입하며 '서비스 관련 분쟁이 생기면 미국의 주(州) 법률에 따르기로 한다'는 약관에 동의했더라도 이는 국제재판권관할과 준거법을 정하는 '국제사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국내에서 소송제기가 가능하다고 봤다. 법원의 근거는 국제사법 제27조였다.
해당 조항은 ▲소비자의 상대방이 계약체결에 앞서 그 국가에서 광고에 의한 거래의 권유 등 직업 또는 영업활동을 행하거나 ▲그 국가 외의 지역에서 그 국가로 광고에 의한 거래의 권유 등 직업 또는 영업활동을 행하고, 소비자가 그 국가에서 계약체결에 필요한 행위를 한 경우 ▲소비자의 상대방이 그 국가에서 소비자의 주문을 받은 경우▲소비자의 상대방이 소비자로 하여금 외국에 가서 주문을 하도록 유도한 경우에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더라도 소비자의 상거소가 있는 국가의 강행규정에 의해 소비자에게 부여되는 보호를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조항을 적용하려면 먼저 B어플 회사가 국내에서 광고에 의한 거래 권유 등 영업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이민재 변호사는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회사가 국내에 지사를 두고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한 국내의 법적 절차에 의한 구제는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이민재 변호사는 말했다.
이렇게 되면 A씨는 국제소송만이 남는다. 하지만 이지영 변호사는 "(국제 소송은) 큰 비용이 들고 과정도 어렵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해결책은 없는 걸까.
익명의 변호사는 "불공정 약관으로 공정위에 시정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약관 자체를 무효로 만들 수는 없으니 공정위의 힘을 빌려 "고치라"고 명령해달라는 '우회로'를 택하라는 조언이다.
만일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면 실제 "불공정하다"고 판단한다면 B어플에게 약관 시정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때 B어플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례로, 지난 8월 공정위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의 자동차 매매약관 중 5개 유형이 불공정 약관이라며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공정위의 명령에 따라 테슬라는 해당 약관을 고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