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3일 만에 법정 출석했지만⋯돌아온 건 "너가 임신해서 일 처리 제대로 못 했다" 폭언
출산 3일 만에 법정 출석했지만⋯돌아온 건 "너가 임신해서 일 처리 제대로 못 했다" 폭언
의뢰인 위해 출산 3일 뒤 광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지만⋯돌아온 건 폭언과 삿대질
일부 승소 판결에도⋯"착수금 돌려달라" 행패 이어져
A 변호사 "이제는 100억을 줘도 집단소송은 맡지 않을 것"

11년차 변호사인 A 변호사는 "집단소송은 맡지 않는다"는 자신만의 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지난 5년 전 있던 한 사건 때문이다. /셔터스톡
출산 3일 뒤였다. 뼈마디가 여기저기서 쑤셨다. 1월이라 뼛속 깊이 찬바람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이날 A변호사는 가족을 뒤로하고 광주에서 서울까지 300km를 이동했다. 서울중앙지법까지 가야 했다. 이날은 의뢰인이 200명이 넘었던 수도권의 한 '상가 집단소송' 사건의 선고가 나오는 날이었다.
보통 변호사는 선고일에 법정에 나가지 않는다. 이미 결과는 정해진 뒤고, 자칫 결과가 의뢰인 뜻과 다르면 법정에서 어떤 수난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 6년차 변호사였던 A 변호사도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내일 결과 잘 안 나오면 너 내가 가만 안 둘 줄 알아"라는 협박성 전화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A 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했다. 200명이 넘는 의뢰인들과 소통하면서 진행방향이나 의견을 구한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고, 실제 이들에게 억울한 점도 많아 보였다. 건물의 엘리베이터도 작동이 안 되는 등 하자가 많았는데 관리사무소는 고쳐주지는 않고 관리비⋅임대료를 꼬박꼬박 챙겨갔기 때문이다.
A 변호사는 1년 가까이 이들을 대리했다. 다행히 결과 자체는 일부 승소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던 찰나, 법정 복도에서 의뢰인 무리가 삿대질과 폭언을 퍼부었다.
"전부 이겨야 하는데 네가 잘못해서 진 거야!"
"임신한 것 때문에 일을 제대로 처리 못 한 것 아니야?"
"사건 맡기 전에 임신한다고 미리 알렸어야지! 임신 사실을 속였으니까 사기죄로 고소하겠다!"
이때를 두고 A 변호사는 "내 머리채를 잡으려는 사람도 있었다"며 "정말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A 변호사는 "본격적인 행패는 선고가 나온 이후에 시작됐다"며 말을 이어갔다.
일부 승소에도 의뢰인들은 A 변호사에게 시도 때도 없이 욕설 전화와 문자를 보냈다. 특히 같은 여성인 B씨가 가장 심각했다. 선고 당일 머리채를 잡으려 했던 그 상인이다. 선고 하루 전날에는 협박성 전화를 하기도 했다. A 변호사는 B씨에게 "야, 이 X가지 없는 X아"라는 욕설 들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욕설 문자와 전화를 넘어 B씨는 A 변호사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이때 A 변호사는 산후조리를 위해 남편이 있는 광주에 내려가 있었지만, B씨 행패는 멈출 줄 몰랐다. "변호사 나오라 그래!" B씨가 의자를 집어 던지는 등 난동을 부려 경찰까지 출동해야 했다고 했다.
A 변호사는 "사무실에 있던 다른 변호사나 직원에게 너무나 죄송했던 건 물론이고, (당시 이 사건 때문에) 산후조리도 당연히 제대로 못 했다"고 말했다. "이때 상한 몸이 지금까지도 회복이 안 됐다"며 "특히 손가락 관절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B씨 등 의뢰인들이 행패를 부린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이들은 특히 A 변호사의 '임신'을 문제 삼으며 착수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1인당 30만원에서 100만원 정도의 금액이었다. B씨의 경우엔 50만원 정도였다.
A 변호사는 "절대 안 된다"고 맞섰다. "민사든, 임신 사기로 고소를 하든 얼마든지 하라"고 강경하게 나갔다.
그럼에도 행패를 계속 부렸던 B씨. A 변호사가 '최후의 통지'를 보내고 난 뒤에서야 멈췄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내가) 임신 사실을 속였다고 생각되면 차라리 고소를 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A 변호사는 임신 사실을 속인 적도 없었다.
B씨는 한발 물러서면서 "수임료만 반환하면 찾아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타진해왔지만, A 변호사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다행히 B씨는 행패는 그걸로 끝이었고, 법적 분쟁은 없었다.
11년차 변호사가 된 A 변호사는 "앞으로는 100억원을 줘도 집단소송은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패도 그랬지만, 소송 자체가 진행이 힘들었다. "100명이 의뢰인이면 100명이 다 생각이 달랐고, 소송 진행 방향에 훈계를 두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다시는 집단소송을 하지 않는 걸 평생의 룰(규칙)로 삼았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