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캄보디아 한국인 고문치사, '반인도적 범죄' 인정땐 공소시효 없다
[단독] 캄보디아 한국인 고문치사, '반인도적 범죄' 인정땐 공소시효 없다
조직적 범행 입증시 ICC 관할·보편적 관할권 행사 가능
반인도적 범죄 vs 일반범죄, 처벌 수위 천지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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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 이미지. /구글 제미나이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학생 박모(22)씨 고문치사 사건이 국제법상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될 경우, 가해자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영구히 배제되고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처벌이 가능해진다는 법률 분석이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이 단순 살인이 아닌 '조직의 정책에 따른 체계적 공격'으로 인정받을 경우, 국제형사재판소(ICC) 관할권 행사는 물론 보편적 관할권에 따라 제3국에서도 가해자 처벌이 가능하다.
반면 일반 범죄로 처리될 경우 25년의 공소시효가 적용되고 범죄인 인도 등에서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반인도적 범죄 성립 요건, "조직적·체계적 공격이 핵심"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제7조는 반인도적 범죄를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그 공격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범해진 행위"로 정의한다.
한 국제법 교수는 "고립되거나 산발적인 살인은 반인도적 범죄가 아니지만, 국가나 조직의 정책에 따라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 행해진 경우 단 1명을 살해한 행위도 국제법상 반인도적 범죄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본 사건의 경우 2024년 10월 KBS 보도에서 "캄보디아 3개 사기 조직에서 한국인 납치가 단순 은행계좌 목적이 아니라 처음부터 몸값 목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일부 캄보디아인들이 현지 경찰과 공모하여 구조 및 신고 노력을 방해"했다는 점이 밝혀진 바 있다. 이는 '조직의 정책에 따른 체계적 공격'의 전형적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소시효 영구 배제, 국제형사재판소 개입 가능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될 경우 가장 큰 법적 효과는 공소시효와 형의 시효가 완전히 배제된다는 점이다.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6조는 집단살해죄 등 국제범죄에 대해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와 형법상 형의 시효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반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25년인 것과 대비되는 파격적 조치다.
또한 캄보디아 당국이 적절한 수사 및 처벌을 하지 않을 경우 ICC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 ICC는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국내 사법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에만 개입하지만, 현지 경찰의 공모 정황이 드러난 만큼 ICC 개입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보편적 관할권 행사..."전 세계 어디서든 처벌 가능"
반인도적 범죄는 보편적 관할권의 대상이 되는 국제범죄다. 이는 범죄 발생지나 범죄자·피해자의 국적과 무관하게 모든 국가가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본 사건이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되면 한국뿐 아니라 제3국도 가해자들을 체포하여 처벌할 수 있다. 가해자들이 캄보디아나 중국 이외의 국가로 도주하더라도 체포·처벌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은 2006년 결정에서 "인륜에 반하는 범죄, 집단살해, 전쟁범죄 등 국제범죄에 대해서는 정치범 불인도 원칙의 예외가 인정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범죄인 인도 '정치범 불인도 원칙' 적용 배제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될 경우 범죄인 인도 절차에서도 결정적 이점이 있다.
범죄인 인도법 제8조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성격의 범죄에 대해 범죄인 인도를 금지하지만, "다자간 조약에 따라 대한민국이 범죄인에 대하여 재판권을 행사하거나 범죄인을 인도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범죄"의 경우 예외를 인정한다.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등 다자간 조약의 대상 범죄인 반인도적 범죄는 가해자들이 정치적 동기를 주장하더라도 정치범 불인도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범죄인 인도가 훨씬 용이해진다.
국제형사사법공조 강화, UN·국제사회 개입 본격화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되면 한국 정부는 국제형사사법공조법에 따라 캄보디아뿐 아니라 중국, 제3국 등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사법공조를 요청할 수 있다.
UN 인권이사회는 특별보고관 파견이나 조사위원회 구성을 통해 사건을 조사할 수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캄보디아 정부에 권고안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캄보디아에 대해 경제적 제재, 원조 중단, 외교관계 격하 등 강력한 외교적 압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미국·EU·일본 등 우방국들과 공조하여 다자간 제재를 추진할 수도 있다.
피해자 구제, 국제기금 지원부터 특별법 제정까지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될 경우 피해자 및 유족은 국제법상 배상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다. ICC 로마규정 제75조는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규정하고 있으며, ICC는 유죄판결을 받은 자에 대해 피해자에게 배상하도록 명령할 수 있다.
또한 국제형사재판소 피해자신탁기금 등 국제기금을 통한 지원도 가능하다. 가해자로부터 직접 배상을 받기 어려운 경우에도 피해자들이 일정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하여 해외범죄 피해자에 대한 구조금 지급, 의료지원, 심리상담 등을 제공할 수 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처럼 반인도적 범죄 피해자에 대한 특별 보호와 지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반 범죄 처리시 공소시효 25년, 구조금 지급도 불가
반면 일반 범죄로 처리될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살인죄로 처리되면 공소시효 25년이 적용되어 범죄 발생 후 25년이 경과하면 더 이상 처벌할 수 없다. 캄보디아 법원에서 이미 재판이 진행 중이거나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따라 한국에서 다시 처벌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범죄인 인도 측면에서도 한국과 캄보디아 간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거나 조약이 있더라도 인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범죄인 인도가 어려워진다. 특히 중국인 피의자들이 중국으로 송환될 경우 중국의 자국민 불인도 정책으로 인해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피해자 구제 측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은 구조대상 범죄피해를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 발생한 범죄로 제한하고 있어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범죄피해는 원칙적으로 범죄피해자구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법조계 "조직적 범행 입증이 관건"
한 변호사는 "본 사건을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적 범죄가 아니라 조직의 정책에 따라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범행임을 입증해야 한다"며 "한국인 등 민간인 집단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임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국제법 교수는 "공격이 계획적이거나 조직적이거나 지휘 하에 진행되었다면 정책에 따른 범행임을 인정할 수 있다"며 "어떠한 상황 속에서 범행이 이루어졌느냐에 따라 동일한 행위가 국제범죄가 될 수도 있고 단순한 국내법상 범죄에 그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캄보디아 국립경찰청장은 한국 대사관과 협력하여 수사를 진행 중이며, 도주한 공범들에 대한 수색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는 지난 10월 10일 프놈펜에 대한 여행경보를 발령했으며, 조현 외교부 장관은 캄보디아 대사를 소환하여 즉각적인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법조계는 향후 수사 과정에서 조직의 정책적 관여 정황이 추가로 드러날 경우, 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등 보다 적극적인 법적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