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사태가 쏘아 올린 공, '대형고래·경주마' 잡는 징벌적 과징금 온다
빗썸 사태가 쏘아 올린 공, '대형고래·경주마' 잡는 징벌적 과징금 온다
불법 수익 최대 5배 벌금
금융권 공포의 '징벌적 과징금' 본격 도입

빗썸 "비트코인 오지급 관련 고객 손실 보상금 지급 예정" /연합뉴스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의 60조 원대 비트코인 오지급 사고로 인해 코인 시장의 ‘장부 거래’ 구조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금융당국이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고위험 행위에 대해 전면적인 ‘기획조사’와 ‘징벌적 과징금’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2026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빗썸 사태로 드러난 가상자산 시장의 구조적 취약점을 해소하고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고강도 대책을 내놓았다.
"내 코인이 왜 이래?" 시장 어지럽히는 5대 수법에 '기획조사' 착수
금융감독원이 주목한 가상자산 시장의 고위험 분야는 크게 다섯 가지다. 대규모 자금을 동원해 시세를 조작하는 '대형고래' 수법, 입출금이 중단된 틈을 타 가격을 올리는 '가두리' 수법, 특정 시점에 물량을 대량 매집해 가격을 폭등시키는 '경주마' 수법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주문을 이용한 자동 시세조종과 SNS를 통한 허위사실 유포 등 부정거래도 집중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금감원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이상 급등 종목을 초·분 단위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가동해 혐의 그룹을 실시간 적출할 방침이다.
이미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상장 심사를 대가로 수십억 원의 금품이 오가거나, 다단계 마케팅 방식으로 수천억 원의 투자금을 가로채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거래소 임직원이 브로커에게 상장 청탁을 받고 21억 원이 넘는 돈을 챙기거나, 가상자산 투자를 빙자해 1,100억 원대 사기를 벌인 사례들이 적발된 바 있다.
"CEO도 책임져라" IT 사고에 '징벌적 과징금' 도입…'잔인한 금융' 척결
가상자산뿐만 아니라 금융권 전반의 IT 리스크 대응도 대폭 강화된다. 빗썸 사태와 같은 대규모 시스템 사고 발생 시 최고경영자(CEO)와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에게 엄중한 보안 책임을 묻고,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잔인한 금융’ 혁파를 위해 불법 사금융과 보이스피싱 대응력도 높인다. 통신사와 금융사가 보유한 정보를 공유해 AI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조기에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피해금에 대한 배상책임제도 시행을 준비한다.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이용자의 자금 보호를 위해 선불충전금 예치 전용 예금상품을 도입하고 정산자금 외부관리 현황을 점검하는 등, 일반 소비자의 금융 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대책도 이번 계획에 포함됐다.
법의 이름으로 단죄할 수 있을까? 가상자산법의 실효성 분석
이번 금감원의 대책은 2024년 7월부터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법)'을 근거로 한다. 해당 법 제11조는 시세조종과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부정거래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시세조종 행위가 인정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부당이득의 최대 5배에 달하는 벌금이 병과될 수 있다. 특히 이득액이 50억 원을 넘어서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도록 가중처벌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법원의 판단은 점차 엄격해지는 추세다.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 비리 사건(서울남부지방법원 2023. 9. 26. 선고 2023고단781 등)에서 재판부는 "상장 사실 자체가 투자자에게 검증된 자산이라는 인식을 주어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며 임원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1,100억 원대 사기 사건(수원지방법원 2022. 2. 11. 선고 2021고합413 등)에서는 총책에게 징역 22년이라는 중형이 내려지기도 했다.
넘어야 할 산, '익명성'과 '입증 책임'의 벽
하지만 강력한 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처벌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가상자산 거래의 특성상 익명성이 강해 행위자의 '시세조종 고의'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단순한 대량 매매와 의도적인 시세조작 사이의 경계를 증명하는 것이 수사 기관의 최대 과제다.
또한 가상자산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만적 수단"이나 "위계"와 같은 추상적 개념에 대한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다.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따라 구성요건이 불분명할 경우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빗썸 사태 등으로 드러난 시스템상 취약점을 해소하기 위해 가상자산 2단계 법안의 효과적 이행을 준비 중"이라며 "디지털자산기본법 도입 준비반을 통해 공시 체계를 마련하고 인가 심사 매뉴얼을 개발해 시장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