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저(低)성과자' 해고 지름길 열어줬다? 변호사가 분석한 판결의 진짜 의미
대법원, '저(低)성과자' 해고 지름길 열어줬다? 변호사가 분석한 판결의 진짜 의미
다년간 업무평가 최하위 기록한 근로자 해고⋯해고무효소송 당한 현대중공업
5년 만에 나온 판결 "해고 적법"⋯노동계 "법원이 저성과자 해고 더 쉽게 만들어줬다" 우려
저성과자 해고 가능성 높였다? 변호사들 "오히려 사측의 평가책임 더 커진 셈"

업무성과가 낮다는 평가를 받고 해고된 근로자가 사측인 한국해양조선(현대중공업 지주회사)을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사측의 해고가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편집=조소혜 디자이너
업무성과가 낮다는 평가를 받고 해고된 근로자들. 사측인 한국해양조선(현대중공업 지주회사)을 상대로 해고무효소송을 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지난 2016년 1심이 시작된 이후, 5년 만에 나온 결론이었다.
지난달 25일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에서 선고한 이 판결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실무상 금기시됐던 저성과자 해고를, 법원이 나서 물길을 터준 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기업 해고제도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정말 그렇게 보아야 할까? 이 판결의 진짜 의미를 변호사들과 함께 분석해봤다.
변호사들은 의미 있는 판결은 맞지만, 모든 해고 사건에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일반 해고'의 기준선을 엄격하게 제시했다는 평가였다.
법무법인 주원의 박지영 변호사는 "판결 결과만 두고 섣불리 '저성과자=해고 가능'이라는 공식이 성립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오히려 이 정도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기준이 없이는 일반 해고가 안 된다는 판결로 봐야 한다"고 했다.
박지영 변호사는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일반 해고 사유가 확장된 것은 맞다"면서도 "결국 근로자를 저성과자로 평가하는 기준이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인지의 문제로 논의가 흘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무법인 인헌의 박창원 변호사도 "형식적으로만 직무향상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근로자들을 퇴출시키려고 하는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게 아니다"라면서 "이 판결만으로 일반 해고가 편법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전했다.
법률 자문

두 변호사 모두 일각의 우려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저성과자의 해고 가능성을 열어주는 판결이라기보다는, 회사 측의 평가 책임을 더 강화했다는데 무게를 뒀다.
변호사들은 이 판결에서 대법원이 수용한 평가 요소와 절차들에 주목했다.
특히, 박창원 변호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해고 대상을 선정했는지 ▲장기간에 걸쳐 다면적으로 평가가 이뤄졌는지 ▲개선을 위한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는지가 모두 쟁점이라고 분석했다.
정리해보면, 단순히 업무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낮은 인사평가를 받았다고 해서 곧장 해고 대상으로 직결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회사 측은 저성과를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평가의 근거와 절차를 이중, 삼중으로 검증해야 한다.
평가기준을 공개하고 이의절차를 갖추는 것은 물론, 상대평가로 인해 손해가 발생하지 않게 보완 장치를 둬야 한다. 이를 판단하는 평가자는 다수여야 한다. 또한 직무재배치 교육 프로그램은 실제로 역량 개선에 도움을 줘야 한다. 업무 변경이 이뤄졌다면 근로자가 적응할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그 해고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박지영 변호사는 "만약 이 사건과 달리 저평가 기간이 단기에 그쳤다면, 직무재배치 뒤에 실질적으로 업무를 주지 않았다면, 2인 이상이 평가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1인이 평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면 전혀 새로운 판결이 나올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대법원의 입장은 어떨까? 대법원 관계자 역시 2일 로톡뉴스와의 통화에서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가 손쉬워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에 대해 선을 그었다. 오히려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취지였다.
이 사건 원고들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연 2회씩 종합인사평가를 받았다. 이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최하위평가를 받았고, 각각 3~4차례씩 직무경고를 받기도 했다. 상대평가 방식이었지만, 최저등급을 강제 할당하지 않도록 평가자에게 재량권을 줬다. 평가는 여러 명의 평가결과를 합쳐 진행했다.
지난 2015년에는 원고들에 대한 직무재배치와 교육도 이뤄졌다. 하지만 직무재배치 이후 치러진 인사평가에서도 이들은 최저등급을 받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저성과자 해고를 위해선 공정하고 엄격한 업무평가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기조"라며 "사용자가 체계적이고 복합적으로 개선 기회를 제공했는데도, 끝내 업무역량이 나아지지 않았을 때 비로소 해고가 인정된다"고 취지를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