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의 무한 증식… 대한민국 사법부, ‘실질적 10심제’ 늪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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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의 무한 증식… 대한민국 사법부, ‘실질적 10심제’ 늪에 빠지나

2026. 03. 24 13:51 작성2026. 03. 24 14: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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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j.jo@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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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 연쇄 파생으로 사법 자원 고갈 우려

다이어그램이 보여준 시스템의 균열

법왜곡죄가 ‘실질적 10심제’의 늪에 빠져 사법 마비를 초래하지 않도록, 실효성 낮은 사후적 방어막 대신 수사 초기 단계에서 악성 고소를 즉각 걸러낼 ‘사전 각하’ 절차 신설이 필요하다.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26년 3월 12일 형법 제123조의2(법왜곡죄)가 신설된 이후, 법조계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사법 시스템의 기능적 과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엄격한 구성요건 ▲무고죄 처벌 ▲권리남용 법리라는 ‘3중 안전장치’가 존재하므로 시스템 마비는 기우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후적 방어기제들이 고소 접수 단계에서 발생하는 ‘수사력의 블랙홀’ 현상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커뮤니티 캡쳐
커뮤니티 캡쳐


법왜곡죄 신설에 따라 사건마다 파생될 수 있는 연쇄 고소의 구조적 위험성을 시각화한 ‘사법 루프 다이어그램’은, 현재 사법 시스템이 직면한 마비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목적범’의 굴레: ‘유죄 판결’보다 무서운 ‘수사력의 블랙홀’

일부에서는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 내 재량 판단은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 조항(제1호 단서)이 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법왜곡죄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타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이 증명되어야 하는 목적범 구조를 취하고 있어 처벌 문턱이 높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이는 형사 절차 초기 단계에서 발생하는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간과한 논리다.


오히려 ‘부당한 목적’ 유무를 가려내야 하는 목적범의 특성상, 수사기관은 고소인의 주장이 합리적 재량인지 아니면 악의적 의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판결의 내면과 증거 자료를 더욱 깊이 파헤치는 고강도 조사를 벌여야만 한다.


설령 최종 기소에 이르지 않더라도, 수사 인력이 이 파생 사건에 집중되는 사이 정작 신속한 보호가 필요한 민생 사건들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사법 정체’ 현상은 피하기 어렵다.



무고죄의 두 얼굴: ‘사실관계’와 ‘법리 해석’ 사이의 사각지대

허위 고소를 남발할 경우 ‘무고죄’로 대응할 수 있다는 논리 역시 실무적 맹점이 있다.


물론 고소 내용이 객관적 사실 자체에 반함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한 채 고소했다면 무고죄로 엄단하는 것이 확립된 판례(대법원 87도2366 등)다.


문제는 법왜곡죄 고소의 핵심이 사실관계 날조가 아닌 ‘주관적 법리 해석’에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84도1737)은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한 주관적·법적 평가의 잘못은 무고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즉, 사실 자체를 속이는 국면(무고죄 성립)과 법적 평가를 다투는 국면(무고죄 불성립)은 서로 다른 법리가 적용되는데, 악의적 고소인이 사실관계 조작 대신 ‘법률 해석의 오류’로 포장해 대응할 경우 처벌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


결국 이 입증의 난관을 뚫고 무고죄를 가려내는 과정조차 고스란히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


‘권리남용’ 법리는 허울뿐인 방패… 피해는 일반 국민의 몫

헌법재판소가 반복적인 고소·고발을 ‘권리남용’으로 보아 각하한 결정(2006헌마1475) 역시 실무적으로는 ‘때늦은 처방’에 불과하다. 해당 결정은 헌법소원 심판 단계에서 내려지는 사후 판단이기 때문이다.


민사 소송과 달리 형사 고소 단계에서는 접수 시점에 즉각적으로 ‘권리남용’ 여부를 판단해 반려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


결국 정식 수사 절차를 거친 뒤에야 종결할 수 있는 구조적 맹점이 존재하며, 이 과정에서 검찰과 공수처 등 국가 수사 기관의 역량이 소모된다.


물론 '실질적 10심제'라는 표현은 제도의 맹점을 경고하기 위한 상징적 비판에 가깝다.


검찰과 공수처가 소추권을 관리하는 체계와 소송 지연 목적의 기피 신청을 즉각 각하하는 법원의 관행을 고려할 때, 모든 고소가 실제 재판으로 이어질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결과'가 아니라 '절차의 남용' 그 자체에 있다.


수사기관이 파생 사건에 매몰되는 동안 한시가 급한 국민들의 긴급한 권리 구제 절차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정작 법의 보호가 절실한 시점에 사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 지연된 정의는 국민에게 또 다른 불의가 된다.


사법의 공정성 수호를 위한 ‘선제적 차단막’ 신설 시급

법왜곡죄의 입법 취지인 ‘사법 정의 실현’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행 시스템의 빈틈이 소송의 무한 증식으로 이어져 사법 신뢰를 무너뜨리는 뇌관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수사 초기 단계에서 단순 재판 불복성 고소를 즉각 걸러낼 수 있는 ‘사전 필터링’ 절차 신설 등 실효성 있는 입법 보완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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