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죄 그리고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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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죄 그리고 벌

2022. 04. 29 17:21 작성2022. 05. 03 15: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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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de movie]

시카리오 (Sicario) : 암살자의 도시, 2015 드니 빌뇌브 감독

콜롬비아에서 온 컨설턴트라는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연기)는 사적인 복수를 하려고 작전에 참여한 전직 검사이다. / LIONSGATE

사람이 지은 죄를 벌하는 규범이 형법이다. 그런데 형법을 설명한 교과서에는 보통 사람들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이 가득하다. 일단 그 개념이 자연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사람이 발명해낸 것이라서 그렇다. 가령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란 용어가 있다. "자신의 행위로 어떤 범죄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 결과 발생을 인정하여 받아들이는 심리 상태." 이런 개념이 개발된 것은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다. 사람을 처벌하는 원칙은 "죄의 성립 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형법 제13조)"인데, 이를 돌파하려 법률가들이 미필적 고의를 개발했다. 미필적 고의도 고의여서 처벌이 가능해졌다.


추상적 개념인 미필적 고의가 무엇인지 법률가들도 알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온갖 판례가 엇갈리고 유죄가 무죄로, 무죄가 유죄로 뒤집어진다. 법과대학과 사법시험이란 통과의례가 미필적 고의라는 개념을 주입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법률가들은 "미필적 고의가 더러 오해되기도 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한다. 거듭된 사건과 판례를 통해 확인되고 구체화한다"고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거듭된 재판을 통해 확인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런데 미필적 고의에 관한 법률가들의 주장이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되면서 깨졌다. "시민들이 미필적 고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더라. 그래서 무죄가 난다." 판사들의 얘기다.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도 마찬가지다. 안희정 전 지사가 기소되면서 업무상 위력이 무엇인지 온 사회가 토론하고 논쟁했다.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다음에도 논란이 계속됐다. 안희정의 행위가 범죄인 것은 알겠지만, 어떤 경우에 이런 강간인지 범위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는 죄명이 복잡해서 문제인 것은 아니다. 강간이 무엇인지 대법원 판례도 일정하지 않다. 교과서 설명도 마찬가지다. 이 무렵 나온 판례 해설도 확고하지 않다. "강간의 기수 시기는 성기를 삽입한 시기이다. (중략) 성기 일부가 삽입되면 충분하다는 설과 성기가 결합되어야 한다는 설이 있으나…." 이런 식으로 지루하게 이어진다. 결국 범죄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다.


CIA팀이 마약 카르텔 간부를 데려오기 위해 멕시코 국경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이 정보를 빼내 준비하고 있던 마약 조직원들이 이들과 총격전을 벌인다. / LIONSGATE
CIA팀이 마약 카르텔 간부를 데려오기 위해 멕시코 국경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이 정보를 빼내 준비하고 있던 마약 조직원들이 이들과 총격전을 벌인다. / LIONSGATE


이렇게 사실을 평가하기도 어렵지만 그 전에 사실을 확정하는 일부터 만만치가 않다. 인터넷이 세상을 뒤덮고 아무리 과학수사가 발달해도, 여전히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도에서 사실로 본다. 일본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에서는 전철 성추행범으로 기소돼 유죄를 받은 주인공이 나온다. 많은 정황이 그를 가리켰다. 그런데 주인공은 재판이 끝나고 혼잣말을 한다.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재판관은 알아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얼마나 재판이 혹독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타이르면서도 '정말로 하지 않았으니까 유죄가 될 리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진실은 신만이 알고 있다'고 말한 재판관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최소한 나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도 있다. 2014년 고속도로에서 승합차가 갓길에 정차 중이던 8톤 화물트럭을 뒤에서 들이받았다. 조수석에 있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당시 24세)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뱃속에 있던 7개월 된 태아도 숨졌다. 승합차를 운전한 남편(당시 44세)은 다소 다치고 말았다. 수사기관은 고의 사고를 의심했다. 아내를 피보험자로 보험금 총액 100억원 보험에 들었고, 숨진 부인의 혈흔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으며, 이씨가 사고 직전 핸들을 꺾어 아내가 타고 있던 조수석 쪽이 부딪히게 한 정황이 나왔다. 사고 몇 시간 만에 화장장을 예약했고, 아내의 친정 식구들이 "한국에 갈 테니 화장을 미뤄달라"고 했지만 거부했다. 남편은 살인 혐의로 기소됐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 무죄가 났다.


비슷하게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살인죄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군사 독재자 전두환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사실 광주사태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 없어요. 어느 누가 총을 쏘라고 하겠어(2016년 <신동아> 인터뷰)." 그가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듬해인 1989년 국회에서 열린 5·18 특위 청문회, 김영삼 정부이던 1995년 검찰 수사에서도 발포 명령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에 대한 재판에서 "광주 재진입 작전 명령 목표에 비추어 볼 때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므로,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하다"며 내란목적살인 유죄를 확정했다.


범죄를 처벌하는 국가는 절차를 지켜야 한다. 수사기관이 죄를 처벌하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짓지 않도록 막는 장치다. 가령 전문(傳聞·전해 들은 말)은 증거가 아니라는 게 기본 원칙이다. 이는 고문을 막는다. 검사나 수사관이 "판사님, 피의자에게 이런 진술을 받았습니다"라며 내미는 종이 뭉치를 증거로 인정하기 시작하면 수사기관의 심리적, 육체적 가혹행위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검사가 만든 피의자신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해왔다. 나중에 피의자가 판사에게 "검찰 조서에 적힌 얘기는 사실과 다르고 지금 드리는 말씀이 진실입니다"라고 해봐야 통하지 않는다. 이런 예외를 인정한 형사소송법 조항이 최근에 폐지됐다.


이처럼 근대 이후 국가의 역사는 법에 따라서만 처벌하는 '절차의 역사'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이라는 수사기관의 호소는 이를 곧잘 무너뜨렸다. "이것만은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도 시대마다 있었다. 재벌이 수사에 맞서 적법 절차를 요구하면 이를 비난하는 여론이 있고, 경찰이 남의 신체를 촬영한 휴대전화의 열라며 피의자를 겁박하는 것은 미담 기사로 등장한다. 이런 사회적 요구의 원조는 빨갱이는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법원마저도 형사소송법을 물렁하게 해석하면서 검찰과 여론을 추종했다. 그러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판사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수사기관의 열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실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사권이 경찰로 모조리 넘어가면서 국가의 수사력이 약화하고, 이에 따라 범죄 피해자가 변호사를 사실상 수사관으로 고용하는 일이 늘었다. 변호사들이 어지간해서는 하지 않던 고소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고소대리 시장의 최고 수혜자는 검찰 전관, 최근에는 경찰 전관이다. 수사기관이 모든 사건을 열심히 수사하리란 신뢰가 없으니 안면이 통하는 변호사를 중간에 세우는 것이다. 이렇게 경찰과 검찰에 변호사가 작성한 고소장이 늘면서 직접 고소장을 작성하는 피해자는 상대적으로 홀대당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피해자 권리 보호를 위해 고소대리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권리가 변호사 고용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이 정의로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과 절차를 존중하는 케이트는 잔혹하게 죽은 수십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범죄가 처단되지 못하는 곳은 지옥이란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 LIONSGATE
법과 절차를 존중하는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연기)는 잔혹하게 죽은 수십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범죄가 처단되지 못하는 곳은 지옥이란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인다. / LIONSGATE


<시카리오>는 죄를 벌하기 위해 그 수많은 절차와 법률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다. 미국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연기)는 CIA가 주도하는 작전에 차출된다. 실은 국경과 법률을 넘어 마약 조직을 정리하려는 CIA가, 이 작전을 합법으로 만들기 위해 케이트를 합류시킨 것이다. 작전을 이끄는 맷(조시 브롤린 연기)은 케이트에게 어떤 수사인지조차 알려주지도 않는다. 이들은 미국 멕시코로 들어가 마약 카르텔의 간부를 잡아 오고 윗선을 대라며 고문한다. 케이트는 불법적 수사에 항의하고 경고하지만 소용없다. 이 작전을 이미 정부가 승인한 것이라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범죄가 처단되지 못하는 곳은 지옥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라고 케이트도 생각한다.


콜롬비아에서 온 작전 컨설턴트라는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연기)는 사적인 복수를 하려 작전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과거 멕시코의 검사였다. 마약 조직에 부인이 참수당하고 딸은 염산통에 던져져 살해됐다. 이후 마약 카르텔에 복수하기 위해 누구와도 손을 잡는 사람이 됐고, CIA에 고용됐다. 알레한드로는 미군 정찰기의 지원을 받으며 가족을 죽인 마약 카르텔 중간 보스의 저택에 진입한다. 알레한드로에게 중간 보스는 "널 여기로 보낸 놈들은 다를까? 우리가 누구에게 배웠을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이제 신을 만나러 갈 시간"라면서 그의 두 아들과 부인을 쏴 죽인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중간 보스도 사살한다.


케이트가 머무는 숙소에 알레한드로가 나타난다. 그는 작전이 모두 적법했다는 서류에 사인하라고 요구한다. 케이트가 울먹이며 거절하자 "자살을 당할 수도 있다"며 오른손으로 케이트의 턱에 총을 겨누고, 왼손으로 눈물을 닦아 준다. 서명을 받아낸 알레한드로는 아직 법이란 게 남아있는 곳으로 가라고 말하고, 떠난다. 케이트는 떠나는 알레한드로에게 총을 겨누지만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내려놓는다. 과연 수사와 재판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 영화는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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