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갚아라" 떼인 돈 받으려 전산망 뒤진 경찰관…6번이나 무단 열람한 대가는
"내 돈 갚아라" 떼인 돈 받으려 전산망 뒤진 경찰관…6번이나 무단 열람한 대가는
개인 채권 회수 목적으로 수배 조회한 경찰관
법원 "사적 채권 회수에 급급해 개인정보 무단 열람" 질타

사적 채권 회수를 위해 경찰 전산망으로 지명수배자 정보를 무단 조회한 경찰관에게 벌금 1,000만 원이 확정됐다. /셔터스톡
서울 관악경찰서 소속 경찰관 A씨(경위)는 2012년 속이 타들어 갔다. 지인인 지역주택조합장 B씨에게 빌려준 돈과 조합 가입비 등 무려 3억 4,000만 원이 물려있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B씨는 조합비를 횡령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자취를 감췄다. 다급해진 A씨는 경찰관이라는 자신의 신분을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찰 전산망으로 채무자 추적? 6차례 무단 열람
A씨는 수배자 검거 등 수사 목적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경찰 전산망을 자신의 '채무자 추적용'으로 둔갑시켰다.
2012년 3월부터 7월까지 A씨는 지구대 사무실에서 자신의 ID로 전산망에 접속해 B씨의 수배 여부, 죄명, 소재, 검거 여부 등을 은밀히 조회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총 6회에 걸쳐 집요하게 지명수배 자료를 무단 열람했다.
이러한 사적 추적 끝에, A씨는 지인의 제안으로 충북 청주까지 내려갔다가 한 휴대폰 대리점에서 도피 중이던 B씨와 마주치게 된다.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명수배자를 눈앞에서 발견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A씨를 본 B씨는 당황해 매장을 빠져나가 도주했고, A씨는 그를 즉각 체포하거나 관할 경찰서에 도주 경로를 알리는 등 긴급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1심 "공무보다 사적 채권 회수 급급" 징역형… 2심서 뒤집힌 직무유기
결국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1심 재판부는 A씨의 행태를 강하게 꾸짖었다.
재판부는 "경찰공무원인 피고인이 공무보다 사적 채권 회수에 급급하여 직무와 관계없이 개인정보를 열람했다"며, "중한 범죄로 지명수배된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검거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범인이 도주하도록 하는 등 직무를 유기한 점에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일갈하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2심)에서 판결은 크게 뒤집혔다.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열람한 혐의는 유죄가 유지되었지만, 쟁점이 된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당시 A씨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쉰 비번 상태로 경찰관 직무 수행 중이 아니었던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B씨를 만날 수 있을지 불확정적인 상태에서 우연히 만났고, 도주하는 바람에 체포를 실행에 옮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A씨가 며칠 뒤 담당 수사팀에 B씨의 도주 조력자나 발신 번호 등 수사 정보를 제공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태만이나 착각 등으로 직무를 소홀히 수행한 탓으로 적절한 직무 수행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있을지언정, 경찰공무원이 자신의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하거나 포기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결국 A씨는 직무유기 혐의는 벗었으나, 사적 목적으로 전산망을 뒤진 대가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최종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