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신청하자 횟집으로 호출하고, 뇌물 받고, 룸살롱 가고…은행 지점장들의 '부패일기'
대출 신청하자 횟집으로 호출하고, 뇌물 받고, 룸살롱 가고…은행 지점장들의 '부패일기'
대출 희망자 횟집으로 불러내더니 다짜고짜 술 마시게 한 은행 지점장 논란
"은행 대출 잘 나오게 해주겠다" 빌미로 향응에 뇌물 받은 지점장들 천태만상
누군가에겐 생계인데⋯간절함 악용해 사리사욕 알차게 채운 그들의 최후

일부 지점장들에게는 은행 대출이 업무가 아니라 하나의 권력이었다. 판결문 속에는 대출을 내주는 조건으로 접대뿐만 아니라 뇌물이나 향응을 받은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셔터스톡
소상공인 대출을 신청하기 위해 신용보증재단을 찾은 한 여성 자영업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출을 받지 못했다. '대출 거절'에 좌절한 여성에게 창구 직원은 한 은행의 지점장을 소개했다.
여성은 소개받은 지점장에게 연락해 대출 상담을 문의했다. 그러자 이 지점장은 은행이 아닌 횟집으로 여성을 불러냈다. 그리고는 대출서류 대신 술잔을 건넸다. 대출 희망 고객을 사적인 저녁 자리에 불러내고 술까지 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출이 필요한 고객의 어려운 처지를 은행 지점장이 악용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렇게 일부 지점장들에게는 은행 대출이 업무가 아니라 하나의 권력이었다. 판결문 속에는 대출을 내주는 조건으로 접대뿐만 아니라 뇌물이나 향응을 받은 사례가 수없이 많았다.
A회사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주거래 은행조차 A회사에 대출을 내주지 않았다. 담보도 부실했고 마땅한 상환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 인건비도 주기 어려울 만큼 큰 위기였다. 그런데 A회사는 단 몇 개월 만에 10억원대 자금 조달에 성공한다. 한국산업은행 지점장 B씨와 만난 뒤로 생긴 '행운'이었다.
이 만남이 처음 성사된 지난 2013년 10월부터 2014년 6월까지, 불과 8개월간 실행된 대출금만 45억원에 달했다. 심지어 대출의 심사 근거가 된 A회사의 세금계산서 발급 내역이나 담보물 모두 허위로 꾸며진 것들이었다.
대출심사 담당 직원이 A회사의 규모와 재무 상태 등을 살펴보고 대출이 어렵겠다고 보고하자, B 지점장은 "다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라"며 도리어 해당 직원을 압박했다. A회사에는 대출심사에 통과하려면 어떻게 재무제표를 수정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지시하기도 했다. 이후 B지점장의 주머니에는 3500만원의 현금이 꽂혔다.
향응도 제공받았다. 법원에서 인정한 횟수만 14번이었다. B지점장은 고급 유흥주점에서 1회에 300만원에 가까운 술 접대를 받았다.
B씨는 지점장을 떠나 산업은행 본점으로 발령을 받은 뒤에도 꾸준히 영향력을 행사했다. 수시로 새로운 지점장과 대출담당 직원들을 통해 A회사의 대출 현황을 점검했다. 그 대가로 '현금 2억원과 은퇴 후 중국 법인 대표자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B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 등 혐의로 징역 5년, 벌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뇌물과 향응으로 누렸던 4700여만원도 추징됐다. 대법원은 "형이 무겁다"며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은 B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형을 확정했다(2018도4262).
기업 대출에 필요한 보증서를 마치 자신의 물건처럼 사고판 지점장도 있었다.
기술보증기금의 지점장 C씨는 기업으로부터 대출 신청이 들어오면 즉각 대출이 이뤄지도록 보증서를 내주고 뇌물을 건네받았다. 대출이 실행된 날에는 접객부가 있는 유흥주점을 찾아가는 것도 주요 코스 중 하나였다.
C지점장은 지난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총 3개 기업에서 현금 5500만원을 받았다. 각 기업에 대출 보증을 내준 데 대한 대가였다. C지점장이 인증해준 대출 보증액만 약 40억원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내민 대출근거는 공사금액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짜 담보'였다.
C지점장이 아니었다면 실행될 수 없었던 대출이었던 셈이다. 문제의 기업들은 대출이 시행되고 나면 C지점장에게 어김없이 대가를 치렀다.
이 사건 1심을 맡은 대전지법 홍성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대현 부장판사)는 "금융기관의 사업이나 업무는 국가의 경제정책과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다"면서 "피고인의 행위는 일반의 신뢰를 훼손하고 금융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를 교란시킨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C지점장은 징역 3년 6월과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으며 법정 구속됐다. 뇌물과 향응으로 받았던 5500여만원도 추징됐다.
뇌물과 향응을 받으며 맘대로 대출을 내준 지점장들. 누군가에겐 생계를 좌지우지하는 중대사였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도구에 불과했다. 또한 부실기업에 전달된 대출금 대다수는 은행에 환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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