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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상상력 풍부한 공감

2023. 03. 17 10:08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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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de movie]

액트 오브 디파이언스(An Act of Defiance), 2017 얀 반 데 벨데 감독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로비에 걸린 역대 재판관 사진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저항하다 팔과 눈을 잃은 알비 삭스의 모습도 보인다(위에서 둘째 행, 왼쪽에서 셋째 열). /이범준 작가 제공

미국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처럼 사람 이름을 딴 공항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두 곳이 있다. 경제 중심지 요하네스버그의 OR 탐보 국제공항과 사법수도 블룸폰테인의 브람 피셔 국제공항이다. 남아공에는 사법수도, 행정수도, 입법수도가 나뉘어 있다. OR 탐보는 넬슨 만델라와 함께 법률사무소를 운영한 올리버 레지널드 탐보의 이름이다. 브람 피셔는 만델라의 형사 변호인이다. 만델라 자신도 변호사이다. 이들 모두 혁명가이다. 이처럼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인종차별정책)와 싸워온 남아공 역사는 부당한 법률과 싸워온 역사이다. 2018년 요하네스버그를 찾았다. 남아공 헌법재판소가 있는 곳이다.


남아공 취재를 준비하던 2017년 브람 피셔의 삶을 다룬 영화 <액트 오브 디파이언스>가 개봉했다. 남아공 개봉 제목은 <브람 피셔>다. 1963년 요하네스버그 인근 리보니아의 한 농장에서 무장혁명단체 조직원들이 체포되고, 조직 리더 넬슨 만델라도 기소된다. 20세기 최고 연설로 꼽히는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I am prepared to die)'라는 3시간짜리 최후 변론이 나온 재판이다. 이때 만델라의 변호인이 브람 피셔이다. 사실 피셔도 조직원이었는데 이 사건 재판이 끝나고 그 사실이 드러나 종신형을 받는다. 만델라는 1994년 대통령이 되지만, 피셔는 1975년 이미 옥사한 뒤였다.


브람 피셔는 보어계 백인, 네덜란드인 후손이다. 네덜란드인이 케이프타운에 정착한 때는 이곳에 동인도회사가 설립된 1652년이다. 이후 영국이 네덜란드를 해상에서 제압하면서 1814년 케이프타운도 영국령이 된다. 영국이 케이프타운의 노예제도를 폐지하자 노예해방에 반대하는 보어인들은 1836년 남아공 내륙으로 대이동을 시작한다. 보어는 네덜란드어로 농부라는 뜻이고, 이들이 노예제를 유지하려는 이유다. 이곳에서 보어인은 두 공화국을 세우고 아프리카 토착민을 노예로 부린다. 그러다 다이아몬드와 금광이 발견된다. 이에 영국은 전쟁을 벌여 1902년 식민지로 만들고 1910년 영연방으로 독립시킨다. 1948년 보어계가 정권을 잡아 아파르트헤이트를 공식화한다.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를 1990년대 들어서야 철폐했다. 넬슨 만델라가 석방된 1990년 시작한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협상에서 만든 잠정헌법을 1994년 발효시켰다. 잠정헌법에는 제헌의회 구성 방법, 헌법재판소 설치 등이 정해져 있다. 잠정헌법에 따라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자유선거로 새로운 의회를 구성했다. 의회는 2년에 걸쳐 최종헌법을 만들었다. 이를 최종헌법안으로 승인할지 판단하는 변론을 헌법재판소가 열었다. 일부 조항을 지적하면서 승인을 거부했고, 의회는 지적을 반영해 수정한 최종헌법안을 제출해 승인받았다. 마지막으로 만델라 대통령이 서명해 1997년 발효됐다.


남아공 헌법은 세계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진보적이고 완결적인 헌법으로 평가된다. 차별금지 조항을 보면 '인종, 사회적 성(gender), 생물학적 성(sex), 임신, 혼인 여부, 인종적·사회적 출신, 피부색, 성적지향, 나이, 장애, 종교, 양심, 믿음, 문화, 언어, 태생' 등 16가지를 예시로 밝혀놓았다. 이 헌법을 만드는데 세계헌법기구 베니스위원회와 정상급 학자들이 관여했다. <법의 제국>과 <정의론>으로 유명한 미국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도 초안을 받아 보고 의견을 밝혔다. 이 때문에 남아공 헌법은 사회변화의 현실적인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를 설계하려는 이상적인 문서라는 비판도 받는다.


과거 남아공의 인종차별은 법률에 근거했다. 한국의 군사독재도, 나치독일의 폭압정치도 모두 법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이 나라들은 독재를 끝내고 헌법재판소를 새로 만들었다. 기존 법원은 헌법위반을 선언해야 할 법률로 오히려 시민을 탄압하며 독재에 부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헌법이 있어도 헌법재판소가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남아공 헌법이 높이 평가받는 것은 결국 남아공 재판소 때문이고, 마찬가지로 한국의 낡은 헌법이 버티는 것도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힘입은 것이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영향력은 어떤 사람이 헌법재판관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넬슨 만델라가 1995년 임명한 초대 헌법재판관 상당수가 부당한 법률에 저항해온 사람들이다. 알비 삭스는 반정부 활동을 이유로 두 차례의 감금을 거쳐 해외로 추방됐다. 외국으로 나가서도 남아공의 차별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고, 남아공 정부는 그의 차에 폭탄을 설치해 한쪽 팔과 눈을 빼앗았다. 판사이던 리처드 골드스톤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 법률을 무력화하는 판결을 해왔다. 백인만 거주와 영업을 할 수 있는 지역에 백인 아닌 사람이 자리 잡아도 곧바로 처벌되지는 않는다는 1982년 판결이 유명하다. 이 결정으로 인종별 거주지구를 정한 집단지역법은 사실상 효력을 잃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심판정 재판관석은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이다. 다양한 시각을 확보하라는 의미다. 우리나라 헌재는 소장이 한가운데 앉고 서열순으로 퍼져 앉는다. /이범준 작가 제공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새로운 청사를 지으면서 과거 교도소 건물을 살렸다. 브람 피셔와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혁명가들이 갇혀 있던 요하네스버그 교도소 자리다. 만델라가 갇혀 있던 옥사는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을 기리는 박물관이 됐다. 재판소 심판정 벽돌도 교도소에 쓰이던 것을 가져다 썼다. 재판소 마당에는 민주주의의 불꽃이라는 성화가 있다. 헌법재판소와 박물관 등을 합쳐 헌법의 언덕(constitution hill)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곳은 요하네스버그 시내 관광버스의 주요 정류장이기도 하다.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부당한 법률을 거부하고 맞서 싸워온 투쟁의 역사 위에 세워졌다.


요하네스버그로 날아가 에드윈 캐머런(Edwin Cameron) 재판관을 만났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시절인 1980년대 동성애자라고 밝혔고, 1994년 만델라 대통령에게 판사로 임명받은 뒤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사실을 공개했다. 캐머런 재판관은 남아공 사회의 주류인 교육받은 백인 남성이면서도 대표적 소수자인 동성애자이자 HIV 감염자이다. 세계적으로 정치적 소수파가 최고 재판관인 경우는 많아도 여러 면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최고 재판관인 사례는 드물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헌법의 약속>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에게 남아공의 역사와 소수자에 관해 물었다. 어떤 사람을 소수자로 부를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핵심은 권력을 누가 행사하느냐는 것입니다. 백인은 남아공에서 소수민족입니다. 심지어 세계적으로도 백인은 소수입니다. 중국인이 14억명이고 인도인이 13억명이지만 유럽인은 7억명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권력을 누가 갖고 있습니까. 저 자신은 매우 약한 두 소수자에 속해 있습니다. HIV 감염자이고 성소수자입니다. 물론 대단한 공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제가 처한 소수자의 위치를 떠올립니다. 저 자신이 다양한 사건들을 접하면서 소수자가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캐머런 재판관은 법관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공감(imaginative empathy)을 꼽았다. "나를 예로 들면 (나와는 다른) 여성, 아이, 흑인과 공감해야 합니다. 이들을 이해하려면 상상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동정심(sympathetic)을 가지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만델라를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했다. "만델라가 1992년 연설에서 말했습니다. 에이즈는 우리가 공개적으로 얘기하기 아주 어려워하는 삶의 한 대목을 드러낸다고요.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낸 74세 지도자가 에이즈에는 성 접촉을 통한 감염이란 특징과 이를 수치스러워하는 침묵이 얽혀 있음을 이해하고 있던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피부색 차별보다 드러나지 않는 성적지향 차별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캐머런 재판관은 말했다. 비가시성(invisibility)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인종이나 성별과 다르게 성적지향은 자신이 밝히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습니다. 외부에 숨기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숨기는 동안 자신에게 정신적인 상처가 되고, 공개한 다음에는 공격과 차별이 시작됩니다." 이 얘기를 들으며 식민지 시절 일본에 건너간 조선인과 후손들인 자이니치를 떠올렸다. 일본인과 얼굴도, 이름도, 언어도 같은 이들은 조선인이란 사실이 드러날까 노심초사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조선인이란 사실이 드러나면 차별이 시작된다. 캐머런 재판관은 이 역시 비가시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에드윈 캐머런 헌법재판관이 남아공 헌법재판 역사를 설명하면서 차를 따르고 있다. 그는 법관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공감(imaginative empathy)을 꼽았다. /이범준 작가 제공


에드윈 캐머런 재판관은 1953년 남아공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자동차 절도로 복역하는 등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아동보호기관에서 성장해야 했다. 남아공 스텔렌보스대학에 진학해 라틴어를 전공했다.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유학하면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만델라 등과 인권변호사로 활약하다 1995년 지방법원 판사로 임명됐다. 12년 임기 헌법재판관에 2009년 임명됐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았지만 20대에 여성과 결혼했다가 헤어졌다. "이 일을 겪고 나서 다시는 게이라는 이유로 미안하다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캐머런은 회고했다.


넬슨 만델라가 오래 갇혀 있던 곳은 케이프타운 로벤섬이다. 27년 감옥생활 가운데 18년을 있었다. 해안에서 불과 12㎞ 떨어진 섬 전체가 감옥이었다. 육지가 빤히 보이는 곳이기에 섬을 탈출하려다 죽은 사람도 많다. 이 로벤섬에서 보이는 해안에는 주로 백인이 거주한다. 지금은 유명한 러닝 코스다. 나도 이곳을 달렸는데 아름다운 바다와 아픈 역사가 뒤섞인 풍경이 잊히지 않는다. 처음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해 받은 외교부 문자 메시지는, 범죄 피해 우려가 매우 크니 절대 도보로 이동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달리지 않고서는 이 도시와 공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매일 달렸고 여러 사람을 만났고,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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