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 불기소되자 '무고'로 역고소 당한 여성…법원 "무고 아니다" 두 번 판단한 이유는?
강간죄 불기소되자 '무고'로 역고소 당한 여성…법원 "무고 아니다" 두 번 판단한 이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가려진 성적 자기결정권
강간죄 성립 여부와 무고는 별개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2021년 5월, 갓 스무 살이 된 여성 A씨는 처음 만난 10살 연상의 남성 B씨 숙소에서 성관계를 갖게 됐다. A씨는 B씨 무리의 권유로 숙소에 가게 된 것이었다. 사건 직후 A씨는 해바라기센터를 찾아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B씨를 강간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B씨에 대한 강간 혐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번에는 A씨가 무고죄로 기소되는 처지가 됐다. 결정적 근거는 B씨가 당시 성관계 전 과정을 녹음한 파일이었다. 그 안에는 전체적으로 웃음소리와 장난스러운 대화가 담겨 있었다.
웃음소리 사이에 숨겨진 '반복된 거부'
검찰은 녹음 속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근거로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같은 녹음파일에서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B씨가 A씨의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 삽입하려 할 때, A씨는 "밑에는 안 돼요", "진짜 안 한다고 했어요", "싫어요 싫어" 등 거부 의사를 여러 차례 표현하고 있었다. B씨는 그때마다 일정한 유형력을 사용해 거부를 무시하고 관계를 이어 나갔다.
A씨가 "머리채를 잡혀 성기를 빨게 시켰다"고 진술한 부분도 녹음파일에서 뒷받침됐다. 녹음에는 B씨가 "아 해봐"라고 반복하고 A씨가 "아 싫어. 진짜 안 할 거예요"라고 거부하는 음성이 확인돼 A씨의 진술과 부합했다. B씨는 법정에서 이 부분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증언했으나, 법원은 녹음까지 해둔 상황에서 이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강간죄가 안 된다고 해서 곧바로 무고가 되는 건 아니다"
법원은 전체적인 분위기상 강간죄에 이를 정도의 현저한 폭행은 없었다고 봤다. 그러나 A씨가 중요한 순간마다 명시적으로 거부했고, B씨가 유형력으로 이를 무시한 점은 분명히 인정했다.
핵심 법리는 이것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무고죄가 성립하려면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돼야 하며, 단순히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객관적 사실관계를 그대로 신고한 이상, 이에 대한 나름의 법률평가를 잘못했다고 해서 허위 신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2023고단2616)은 2025년 1월 "설령 강간죄 성립에 필요한 정도의 폭행이 없었더라도, A씨로서는 성범죄가 있었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했으나, 수원지방법원 항소심(2025노510)도 같은 해 9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무고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두 차례에 걸친 판결이 확인해 준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