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은 알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판결문은 알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심상찮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캄보디아 카지노로 이어진 형사 판결문 10건 분석
'아바타' 도박에서 100억대 금융사기까지

22일(현지시간)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에 위치한 한 범죄단지 건물에 크메르어와 중국어로 벌금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국 각지의 법원에서 선고된 판결문들이 하나의 공통된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울, 수원, 대전, 대구, 창원, 청주… 사는 곳도, 나이도, 죄명도 다른 피고인들의 범죄 행각이 모두 '캄보디아'라는 한 지점에서 교차했다. 판결문들은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처럼, 캄보디아의 카지노를 거점으로 한 거대한 범죄 생태계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자, 화려한 카지노 테이블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현지에 있는 '아바타'가 실시간으로 댓글을 읽으며 대신 베팅을 해준다. 수십, 수백억의 도박 자금이 오가는 이 위험한 게임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전국의 판결문을 통해 그 시스템의 속살과 그곳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 봤다.
거대한 시스템, '아바타'와 '총책'
전국 법원에서 선고된 '도박공간개설' 판결문들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한 범죄 구조를 묘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캄보디아 현지 카지노 업체와 협약을 맺고, 유튜브 광고 등으로 도박 참여자들을 모집했다.
조직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었다. 업무를 총괄하는 '대표', 고객센터 역할을 하는 '플로어', 도박 참여자의 지시에 따라 베팅하는 '아바타', 이들을 관리하는 '본부장', 그리고 자금 세탁과 환전을 담당하는 '재무팀' 등으로 구성됐다.
이 거대한 시스템의 규모는 판결문에 적시된 도박 자금 총액에서 엿볼 수 있다. 청주지방법원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판결문에 따르면, 특정 조직이 운영한 도박 자금만 합계 30,839,073,448원에 달했다.
이 시스템의 최전선에는 '아바타'들이 있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피고인 A씨는 예명으로 활동하며 30분 게임마다 5달러와 손님들의 팁을 받으며 대리 베팅을 했다.
창원지방법원의 피고인 A씨 또한 예명을 쓰며 1시간당 10달러와 팁의 절반을 수익으로 챙겼다. 법원은 이들의 역할이 "범행 성립에 필수적인 역할"이라며 그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단순 아바타를 넘어 조직의 핵심부로 들어간 이들도 있었다. 청주지방법원의 피고인 A씨는 조직의 '총괄실장'으로서 직원 상담, 숙소 배정, 운영비 관리 등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대전지방법원의 피고인 A씨는 조직 총책과 연인 관계로, 유튜브 방송 운영부터 신규 직원 교육, 자금 환전까지 도맡아 "범행을 주도적으로 계획 또는 실행을 지휘하거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경우"에 해당했다.
유혹의 덫, 평범한 일상 속으로
이들이 차려놓은 판에 평범한 사람들도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불법 온라인 도박에 빠진 A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A씨는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만난 총책으로부터 사이트 주소를 건네받고 도박에 발을 들였다.
A씨는 2023년 9월 10일 처음 70만 원을 입금한 것을 시작으로, 불과 석 달 만인 12월 11일까지 총 55회에 걸쳐 55,930,000원을 입금하며 '바카라' 도박을 했다.
캄보디아 카지노는 도박 공간을 넘어, 더 큰 사기 범죄의 미끼가 되기도 했다. 수원지방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 A씨와 B씨는 피해자에게 "캄보디아 카지노에 투자를 해서 수익을 내고 있다"며 "투자금을 주면 수익금을 주고 한 달 뒤 원금도 돌려주겠다"고 속여 2,000만 원을 뜯어냈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피고인 A씨는 지인을 피해자에게 소개해 "캄보디아 카지노 온라인 정킷방에 투자하면 40%의 이익을 남기고 지분도 주겠다"고 거짓말했다. 이후 A씨는 직접 "투자처인 회사는 200억 원의 자산가치가 있다", "1억을 주면 매월 2,000만 원을 지급해주겠다"고 재차 속여 총 1억을 편취했다.
범죄의 최종 진화, 금융 사기의 해외 거점
캄보디아는 단순한 도박이나 투자 사기의 배경을 넘어, 더욱 정교하고 거대한 금융 범죄의 해외 거점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의 '주식리딩방' 투자사기 사건 판결문은 그 충격적인 실태를 보여준다.
이 사건의 피고인 A씨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주식리딩방' 사기 조직에 가담했다. A씨가 맡은 역할은 법인 계좌를 개설해 범죄 수익금 세탁 용도로 제공하고, "캄보디아로 출국하여 그곳에 체류하면서 위 계좌가 정지되는 경우 금융기관에 전화하여 정지 사유를 확인하는 등의 계좌 관리 업무"를 하는 것이었다.
A씨는 2024년 8월 18일 캄보디아로 출국했고, 바로 다음 날부터 A씨가 개설한 계좌로 사기 피해금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57명의 피해자로부터 입금된 돈은 무려 10,418,205,093원에 달했다.
법정에서 A씨는 "도박이나 환전에 이용되는 줄 알았을 뿐, 사기 범행에 연루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단호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과거 보이스피싱 범죄단체에 가담해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을 지적하며, "위와 같은 보이스피싱 범행은 이 사건 투자 리딩 사기 범행과 조직의 구성, 범행 수법 및 방식이 매우 유사하다"고 밝혔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이 편취금을 수취함으로써 사기 범행에 가담하는 행위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의 주장을 배척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결국 캄보디아 카지노라는 키워드로 꿰어진 판결문들은 하나의 결론을 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바타'를 내세운 온라인 도박으로 시작해, 점차 '고수익 투자'를 미끼로 한 사기 범죄로 변질되었고, 마침내 수백억 원대 금융 사기 조직의 자금 세탁과 관리를 위한 해외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전국 각지의 법원에서 울려 퍼진 판결의 망치 소리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에 대한 단죄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 조직적으로 이뤄지며 "일반 국민의 사행심을 조장하고 건전한 근로의식을 저해하는 등 사회적 폐해가 큰" 범죄의 뿌리를 향한 경고였다.
판결문들은 우리 사회의 평온을 위협하는 심상찮은 일들이 캄보디아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었다.
[참고]
서울서부지방법원 2025고단440 판결 (2025.07.23 선고)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2025고단457 판결 (2025.07.23 선고)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 2024고단2024 판결 (2025.07.11 선고)
창원지방법원 2025고단1197 판결 (2025.07.11 선고)
대전지방법원 2025고단1266 판결 (2025.06.12 선고)
서울동부지방법원 2024고합603 판결 (2025.04.24 선고)
서울북부지방법원 2024고정1636 판결 (2025.04.11 선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노3004 판결 (2025.04.11 선고)
수원지방법원 2024고단2705 판결 (2025.03.21 선고)
청주지방법원 2024고단1871 판결 (2025.02.11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