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140만원·외상 라면·체납 보험료…4개 기관이 알고도 막지 못한 일가족의 죽음
월 140만원·외상 라면·체납 보험료…4개 기관이 알고도 막지 못한 일가족의 죽음
울산 일가족 비극이 드러낸 '신청주의' 복지의 한계

지난 18일 30대 아버지와 어린 자녀 4명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해당 세대 현관 전경 모습. /연합뉴스
학교와 경찰, 지자체까지 4개 기관이 위기 신호를 감지하고도 '신청주의'라는 제도적 문턱에 막혀 일가족 5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지 못했다.
지난 18일 울산 울주군의 한 다세대 빌라에서 30대 초반의 아버지 A씨와 7세, 5세, 3세, 생후 5개월 된 네 자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홀로 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며 "미안하다"고 적은 유서가 남겨져 있었다.
엄마의 구속과 월 140만 원의 생계… 외상으로 버틴 다둥이 아빠
20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방송에 따르면, 이 가정의 비극은 예견된 위기에서 시작됐다.
평소 건강상의 이유로 A씨가 가사와 양육을 전담하고 아내가 생계를 책임지는 구조였으나, 지난해 12월 아내가 범죄에 연루돼 구속 수감되면서 가정 형편이 급격히 무너졌다.
남은 수입은 아동수당과 부모급여를 합친 월 140만 원이 전부였고, 다섯 식구의 생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A씨는 인근 편의점에서 라면과 과자 등 생필품을 10만~12만 원씩 외상으로 구입해 다음 달에 갚는 생활을 반복했고, 건강보험료 역시 100만 원 넘게 체납된 상태였다.

"괜찮다"는 거절에 막힌 지원… 발목 잡은 '신청주의'의 덫
관할 지자체가 이들의 위기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초, 아이들의 어머니가 직접 주민센터를 찾아가 생활고를 토로했고, 당시 긴급 복지 지원으로 약 800만 원의 생계비와 주거비가 3개월간 지원됐다. 동시에 이 가정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명단'에 올랐다.
올해 2월, 주민센터 복지 담당자가 전화를 걸고 가정 방문을 진행하면서 어머니의 부재 사실을 인지했다. 담당자는 A씨에게 안정적인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라고 권유했지만, A씨는 "괜찮다,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관계자는 "젊은 나이에 수급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컸던 것 같다"며 "물품 지원은 받아들이면서도 수급 신청에는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현행 복지 체계가 철저한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이 직접 신청서를 작성하고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 탓에, A씨가 거절한 이상 주민센터 측은 방문 때마다 설득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긴급 지원을 다시 해주는 것도 불가능했다. 올해부터 긴급 지원 제도의 기한 규정이 변경되어, 동일한 위기 사유일 경우 재신청까지 2년(기존 1년), 다른 사유일 경우 1년(기존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A씨 가족은 지난해 5월 마지막 긴급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재신청까지는 아직 두 달가량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4개 기관이 출동했지만 막지 못한 참사
마지막 위기 신호는 첫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이었다. 3월 첫 주를 통째로 무단결석하자, 담임 교사가 아동 방임 의심 신고를 했고 경찰과 아동학대 담당관이 가정을 방문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정황만으로 공권력이 강제 개입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당시 현장에 방문했던 울주군청 관계자는 "되게 말라 있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며 "경찰과 함께 신체상 학대 행위 유무를 확인했지만 없었고, 아버지가 주변에 외상을 해서라도 아이들 식대를 제공했다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정 방문 당시에 힘들겠다 생각은 했지만, 아이들이 못 먹고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며 "요즘 경제적 빈곤이라는 게 눈으로 확 드러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가정 방문 당일 A씨가 직접 경찰에게 생활고를 호소해 경찰이 이를 다시 주민센터에 인계했음에도, 일가족은 약 2주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복지 사각지대 명단에 있었고, 군청과 주민센터가 방문했으며, 학교가 신고하고, 경찰이 출동하는 등 무려 4개 기관이 이 가정을 목격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구하지 못한 것이다.
위험 신호가 일정 수준 누적되면 공공이 선제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