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60)] 무장군인들로 가득한 잠무(Jam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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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60)] 무장군인들로 가득한 잠무(Jammu)

2023. 01. 13 11:00 작성
정형근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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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지나가는데, 기차는 한없이 늦게 달렸다. 언제 잠무에 도착할지도 알 수 없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인도 델리(Delhi)에서 잠무(Jammu)까지 거리는 650km가량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2배 정도 되는 거리로 생각되었다. 델리에서 잠무로 가는 기차는 출발 예정 시간보다 5시간이 지난 후 새벽 3시에 도착하였다. 한밤중에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움직이기도 힘겨웠다. 침대칸 기차를 타본 적이 없어 궁금했는데, 바닥에서 천장까지 3개의 침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국방색 모포 2장과 흰 시트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엉거주춤 담요를 펴고 바로 누웠다.


8월 6일 오전 9시경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의 천정 높이가 1m도 되지 않아 일어나 앉아 있을 수도 없는 구조였다. 밤에는 침대로 사용하고, 낮에는 벽에 접어두고 그 방에 있는 승객 등은 1층 침대에 엉거주춤 앉아 있어야 했다. 창밖을 내다보고 싶은데, 2층 침대에 있어 유리창이 보이지 않았다. 세수를 하려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세면용으로 사용하는 물이 깨끗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양치질 후에는 식수로 입을 헹궈야 했다. 화장실 안에 좌변기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대소변이 곧바로 철로에 떨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발이라도 잘못 디디면 큰일 날 거 같았다. 대단하구나 싶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오전 10시 20분에 아침 먹기로 하였다. 기차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다행히 어제 점심 식사 때 먹고 남은 '난'을 몇 개 포장해 온 것이 있었다. 구운 지 하루가 지나 딱딱하게 굳어진 상태였다. 그래도 아주 훌륭한 식사였다. 충분하지 않아 아쉬웠다. 바나나, 새우깡, 에이스 과자도 가방에 있었다. 아침을 때운 후 과연 오늘 스리나가르(Srinagar)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밤에는 테러범들의 공격에 대비하여 스리나가르로 향하는 도로를 차단하기 때문에 오후 늦은 시간에는 출발할 수 없다고 했다.


정오가 지나가는데, 기차는 한없이 늦게 달렸다. 언제 잠무에 도착할지도 알 수 없었다. 현지인들도 그저 막연히 몇 시간 더 가면 도착할 것이라는 정도의 추측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다급한 생각이 들었다. 기차 연착으로 일정에 차질이 생겼기에 어찌하든 오늘 중에라도 출발하기를 원했다. 기차는 10시간째 달리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경부터 찰스 스탠리 저 "역경을 이기는 법"을 읽기 시작하였다.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며, 역경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특히 역경을 극복한 후에야 역경의 원인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 식사를 주문한 지 1시간이 되었는데도 소식이 없었다. 주문을 받아갔던 그 직원이 다시 왔다. 기대하던 음식을 가지고 오지도 않았다. 단지 1시간 전에 주문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되돌아갔다. 어이가 없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30분이 지난 후에 점심을 가져왔다. 수저는 티스푼처럼 생긴 아주 작은 스푼을 놓고 갔다. 점심이 인도의 카레 색깔의 묽은 수프처럼 만든 것이라 수저가 필요했다. 그러나 라면 먹을 때 쓰려고 가지고 간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했다. 국물 같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먹는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국물 속에 건더기가 몇 점은 있었다.


어느 역에서 기차가 멈추자 한 꼬마 아이가 기차로 올라와 다가왔다. 그리고 좌석 주변에 있는 바나나 껍질, 과자 봉지 등의 쓰레기를 깨끗이 청소를 해주었다. 이제 갓 열 살이 넘었을까 말까 한 소년이었다. 피부가 시꺼멓고, 상의는 걸치지도 않고 있었다. 마치 걸레로 바닥을 닦듯 맨손으로 깨끗하게 치워냈다. 기차 좌석 주변을 청소해 주고 돈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수고비로 몇 루피를 주었다. 그런데 자리에서 들고 나간 그 쓰레기를 기차에서 내리면서 곧바로 선로에 버리고 사라졌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유리창에 빗물이 흘러내렸다. 계곡에서 누런 흙탕물이 세차게 내려왔다. 드넓은 평야 가운데 드문드문 마을이 보였다. 평야에서 산이 보이기 시작하면 기차 종착역인 잠무가 가깝다고 하였다. 어디쯤 달리고 있는지, 얼마 후에 도착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사람마다 제각각 예상할 뿐이었다. 오후 5시 30분경에 어느 역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부터 총을 든 경찰들이 올라와 순찰을 돌기 시작하였다. 경찰과 군인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잠무가 가깝다는 증거라고 하였다. 앞으로 1시간가량 더 가면 된다고 하였다. 느리게 진행하는 것이지만, 10시간도 넘게 달린다는 것은 이 땅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멀리 산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식사 때가 지나 시장기가 밀려왔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이다.


오후 6시 10분에 잠무 푯말이 나왔다. 도로변 산길에도 무장군인들이 보였다. 30분 후에 'JAMMU' 라고 기재된 팻말이 보이는 역에 진입하였다. 시간을 보니 오후 6시 30분이었다. 델리에서 기차를 탄 지 15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기차에서 짐을 챙겨 출구로 내려올 때 가방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요란스러웠다. 경비초소에 여자 군인이 책상에 앉은 상태로 멈추라고 제지하였다. 소지하고 있던 가방을 X-ray 투시기를 거치라고 했다. 기차역인데도 검색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일단 짐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 검색기를 통과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 짐을 가지고 나와야 했다. 그런 구조로 보아 검색기는 원래 기차를 타려는 승객들의 짐을 검사하려고 설치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차에서 내린 승객의 짐을 검사하는 것은 평소에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밖으로 나온 상태에서 무거운 짐을 다시 들어 검색대에 올리고 하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또한 날도 저물어 가고 있었다. 붉은 석양빛이 서서히 짙어져 옴을 느꼈다. 다른 승객들은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왜 다른 사람은 검사하지 않으면서 내 짐만 검사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순순히 그냥 가라고 하였다.


역 광장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가득했다. 빨간 베레모를 쓴 군인들의 모습이 긴장감을 더해 주었다. 군용트럭도 세워져 있었다. 조그만 광장 안에 민간인보다 군인들 숫자가 더 많아 보였다. 과거 군사계엄 시절 거리에서 무장군인들의 모습을 자주 보았기에 그런 장면이 낯설어 보이지는 않았다. 국경도시이면서 그 지역이 얼마나 위험지역인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주변 분위기가 살벌하여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하였다. 시간은 오후 7시가 넘고 있었다. 그 시간에 스리나가르를 향하여 출발하면 중간지점에서 자야 할 상황이었다. 문제는 그 중간지점에 늦은 밤 시간에 투숙할 수 있는 숙소가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 안에서 잠을 자야 한다.


결국 노숙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잠무에서 일박을 하기로 했다. 여행은 예정에 없던 상황의 연속이다. 숙소를 먼저 잡아야 했다. 기차역에서 가장 가깝게 위치한 호텔로 갔다.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가는 동안 눈에 보이는 사람들 숫자를 헤아린다면 족히 수백 명도 넘어 보였다. 아니 그 이상인지도 모른다. 저녁 무렵이었음에도 마치 시골 장날처럼 북새통을 이뤘다. 마치 외국인을 구경나온 사람들 같았다. 외국인이라 그런지 신기한 듯 쳐다보며 시비 거는 것 같기도 하고 희롱하는 소리도 들렸다.


호텔 입구에도 군인이 있었고, 호텔 정문 옆에는 총구를 밖으로 내놓고 경비하는 초소가 있었다. 우리를 쏘아보는 경비병의 눈빛이 매서웠다. 잦은 테러범의 출현으로 군인들이 많은 것이다. 사방에 무장군인들이 있으니 마음이 위축되고 긴장되었다. 호텔 정원 주변에는 델리에서 늦게 도착한 여행객들이 숙소를 잡으려고 붐비고 있었다. 그 호텔의 방이 과연 투숙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했다.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의 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을 미리 보고 투숙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였더니,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기분이 나빴든지 방이 없다고 하였다. 방금 전까지 빈방이 있다고 하였다가 방을 보자고 하니까 없다고 한다. 결국 방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아마 숙박하기 어려운 형편없는 방을 주려고 하였을 것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숙소를 찾아야 했다. 기차에서 내린 지 1시간이 지나 오후 7시 40분이 되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가득하였다. 금방 한바탕 비를 쏟아부을 것 같았다. 비가 내리면 트렁크를 가지고 어디로 피하나 막막했다. 드디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주 빠른 속도로 어둠이 몰려들고 있었다. 호텔 마당에 서성이던 그 많던 사람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어디론가 급히 떠나고 있었다. 어둠이 아주 짙었을 때 다행히 숙소를 잡았다.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숙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 잠시 머물고 있던 호텔 정문을 나올 때는 감옥에서 석방되는 기분이었다.


비가 내리고 날도 어두워졌기에 빨리 걸었다. 한참을 가다 보니 꽤 품위 있어 보이는 호텔이 나타났다. 안에 들어갔더니 바깥 모습과는 달랐다. 카펫이 낡아 계단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객실 천정에는 팬이 돌아가고 있었고 에어컨도 나왔다. 평소에 투숙객들이 별로 이용하지 않은 호텔같이 눅눅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밤중에, 생소한 지역에서 이런 방에라도 들게 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고향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기차 연착으로 예정에 없던 잠무에서 머무는 것은 여행이 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런데 잠무역에 도착하였을 때, 왠지 알 수 없는 무서움이 엄습하였다. 국경도시라서 감도는 긴장감이겠거니 생각해 보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였다. 때마침 어두워지는 시간에 맞춰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였다. 광장을 경계하던 군인들이 쓰고 있는 빨간 베레모 모습이 더욱 위축시켰다. 분위기로는 금방이라도 총소리가 울릴 것 같은 그런 도시였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호텔에서 식당에 이르는 길에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하였다. 물론 도로포장도 되지 않았다. 아침과 점심을 기차 안에서 대충 먹었기에 식사다운 식사를 기대하였다.


몇 가지 요리를 주문하였다. 닭고기 요리와 훅 불면 날아갈 듯한 쌀 등의 음식이 나왔다. 처음 주문하여 먹은 음식이 넉넉하지 않아 추가로 주문하였다. 냉커피도 마셔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냥 커피를 시켰는데, 아이스크림을 넣은 커피를 갖다주었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커피를 주문했는데, 또다시 아이스크림이 컵 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일부러 비싼 종류로 갖다주는 것인지 모르지만, 직원의 실수로 이해하였다. 실제로 외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기 쉽지 않았다.


그런데 식당에 있던 TV에서 때마침 한국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 내용인즉, 고깔모자를 쓴 무당이 푸닥거리를 하는 장면과 절을 찾은 사람들이 합장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불교국가 또는 토속신앙이 뿌리가 깊은 나라로 알리는 모습이었다. 인도 방송국에서 어떻게 그런 자료를 입수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무당의 굿하는 장면보다는 눈부시게 발전된 서울의 모습이 방영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 있던 손님들도 음식을 먹으면서 TV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새벽에 출발해야 하였기에 속히 잠을 청해야 했다. 에어컨 소리가 요란하고 천정에서는 팬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어 시원하였다. 자리에 누웠더니 침대가 습기를 머금고 있어 눅눅하였다. 베개도 축축했다. 상쾌한 느낌이 아니었다. 평소 투숙객이 없어 방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 낯선 환경이 여행의 맛이겠지만, 워낙 피곤하니까 쉬 잠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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