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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했으니까, 했을 것이다

2021. 05. 15 11:53 작성
강선민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mea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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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중생 성폭력 투신 사건' 항소심 취재기

지난 3월, 우연히 '인천 여중생 성폭력 투신 사건' 항소심 결심 공판에 참석했다. 불과 30여 분간 진행된 공판. 그날 퇴근 후에 귀를 빡빡 씻었다. 2년간 유족이 느꼈을 심정이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조하나 기자

형사 재판의 '꽃'은 결심 공판이라고들 한다. 선고 기일을 앞두고 검찰과 변호인들이 필살기를 내놓는 날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것만 들어도 해당 재판의 내용을 얼추 다 알 수 있다.


'인천 여중생 성폭력 투신 사건'도 그랬다. 지난 3월, 우연히 항소심 결심 공판에 참석했다. 불과 30여 분간 진행된 공판만으로도, 2년간 유족이 느꼈을 원통함과 비참함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날 퇴근 후에 귀를 빡빡 씻었다.


"강간을 당하는 사람처럼 보이질 않는다. 남자친구와 관계할 때랑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가정에 불화가 있어서 투신한 것⋯안 됐지만 불의의 사고였다."

"좋은 가정에서 자란 피고인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다."


피고인 측 변호인들의 변론은 부관참시(剖棺斬屍)였다. 변론을 지켜보는 내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신은 자식을 키워보지도 않았느냐"고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생각을 바꿨다. 이게 변호인 한 사람의 일탈일까 싶어졌다. 그들도 법조 경력이 지긋한 중견 변호사였다. 지는 싸움을 시작하는 변호사가 어딨을까.


통했으니까, 했을 것이다. 그런 변론이 통했으니까.


아버지의 이성을 붙잡은 건 믿음이 아닌 무형의 불이익이었다

피고인 방어권이라는 미명 하에 허용되는 2차 가해들. 그동안 숱한 재판부들이 터무니없는 변론을 들어줬고, 그걸 이유로 넉넉히 감형도 해줬다. 피해자의 전의를 상실시키는 데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사건 변호인들은 '그 변론'으로 이미 유명했다. 1심에서는 재판을 방청했던 인천여성연대가 "명백한 2차 가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변호인들의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의 주장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들은 건 피해자의 아버지였다. 기자는 물었다. 어떻게 참으셨느냐고. 아버지는 답했다. 혹여 판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까 싶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노라고. 일어나서 소리치고 싶은 아버지를 붙든 건, 법정의 지엄함이 아니었다. 어쩌면 피해자에게 되돌아올지 모르는 무형의 불이익이었다.


'법보다 주먹이 빠르다'는 말을 싫어한다. 드라마 '모범택시'에서 자행하는 사적 제재들을 보며 속으로 자극적이라 생각했다. 비현실적이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순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이 피해자를 지켜주지 못하거나 오히려 가해에 가까운 행동을 방관할 때. 그런 순간에도, 기다리면 자연히 사법부가 정의를 실현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되는지 고민이 든다. 그런 기사를 써도 될지 고민이 많아진다.


기계적인 형사 사법절차가 기이한 현상을 낳았다. 피해자에겐 사죄하지 않는 가해자들이 법원에는 반성문을 낸다. 법원은 죄질이 나쁘다고 지적하면서도 초범이라며, 아직 어려서 뭘 모른다며 선처한다. 그 밖에도 형량을 깎아줄 재료는 애석하게도 차고 넘쳤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 변론은 통하지 않았다

14일, 피해자 사망 1031일 만에 드디어 가해자들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나왔다. 선고 직전까지도 마음에 걸리는 요소들은 많았다. 재판 도중 보석 신청까지 받아들여진 만큼 집행유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앞서 검찰의 주요 공소사실 중 일부가 무죄로 결론이 난 점도 고려해야 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심보다 감형이 이뤄졌지만 실형이 나왔다. 성추행을 했던 A군은 징역 3년. 성폭행을 한 B군은 장기 5년, 단기 3년 6월이 선고됐다.


특히 이번 재판에선 구태의연한 2차 가해 변론들이 통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피해자가 교제 관계에 있지 않은 남성들과 무분별하게 성관계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서울고법 제8형사부(재판장 배형원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부터 보석으로 풀려나 있던 두 사람을 그 자리에서 법정 구속했다. 명예훼손으로 기소됐던 C군만 겨우 실형을 피했다.


법정 구속 명령이 떨어지자 피고인들의 목소리가 떨렸다. 억울하다고 했다. 어쩌면 자기 인생에 '빨간 줄'이 그였다고 괴로워하고 있을까.


재판에서 가해자들이 구속되는 걸 두 눈으로 지켜봤지만, 아버지 역시 괴롭긴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아버지는 오늘 술 한잔 기울일 거라 말했다. "그래야 깊이 잠들 수 있고, 꿈에서라도 딸을 만날 수 있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도, 죽은 딸 아이의 방에는 온기가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기분을 감히 가늠해 보기 어렵다.


그런 아버지에게 집행유예가 나오지 않아서, 피고인이 낸 반성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위로를 건넸다. 위로라고 건넨 그 말이 부끄러웠다. 아버지 역시 "실형이 나온 게 다행이다"라고 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판결에도 우리는 안도했다.


법 좀 아는 사람들이 판결을 두고 말했다. 그만하면 잘 된 편이라고. 되묻고픈 말이 있다. 법 잘 모르는 사람이어도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은 안 되느냐고.


아버지의 당부로 글을 마친다.


"국가나 사법부가 제 편이 돼주는 것까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각자 해야 할 일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이 기사는 로톡뉴스의 윤리강령에 부합하는 사실 확인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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