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쓰러진 자, 서 있는 자
[로드무비] 쓰러진 자, 서 있는 자
[law de movie]
일대종사(一代宗師), 2013 왕자웨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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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 영춘권 '일대종사' 엽문(량차오웨이·양조위 연기)은 말한다. "쿵푸란 단 두 글자로 요약된다. 수평과 수직, 쓰러진 자는 수평, 서 있는 자는 수직이다." / China Film Group Corporation
"의뢰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의뢰인의 손실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변호사 일입니다. 어느 의뢰인 편에 서는 것이 더 멋있느냐는 가치 판단은 변호사가 할 일이 아닙니다."
어느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로스쿨을 갓 수료한 자폐 장애 변호사가 이렇게 말하자, 인권 변호사라는 이가 나무라듯 반박한다. 그는 판사나 검사와 달리 변호사는 가치를 판단해서 변호하고 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가치 판단 없이 의뢰인을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하고, 어떤 결론이 옳은지는 판사가 정한다고 배워온 사람에게는 느닷없는 얘기였다.
이 드라마 속 인권 변호사의 주장은, 현실에서 자신을 인권 변호사라 이르는 이들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 대사는 이렇다. "변호사는 사람이잖아요. 판사랑 검사하고는 달라요. 같은 '사'자 돌림이라도 판사와 검사는 일 사(事)를 쓰지만, 변호사는 선비 사(士)를 쓰죠. 판사나 검사한테는 사건 하나하나가 그냥 일일지 몰라도 변호사는 달라요. 우리는 선비로서 그러니까 한 인간으로서 의뢰인 옆에 앉아 있는 거예요. '당신 틀리지 않았다' '나는 당신 지지한다' 그렇게 말하고 손 꽉 잡아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거죠. 그러려면 어느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해야 해요."
그런데 대한민국헌법은 사법권이 법관(法官)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법관을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로 나눈다. 이처럼 사법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법관이다. 여기에 최고 사법기관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관도 있다. 그러니 '판사(事)한테는 사건 하나하나가 그냥 일'이라는 이른바 인권 변호사들의 주장은 자칫 사법제도를 왜곡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판사와 검사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1895년 법률 제1호 재판소구성법은 각 재판소에서 기소와 재판을 담당하게 했다. 이 가운데 기소는 검사(事), 재판은 판사(事) 업무로 정해 지방관(官)이 겸임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일본에서 가져온 것이다. 메이지헌법 시절이던 1890년 만들어진 일본 재판소구성법이 판사와 검사라는 표현을 썼다. 이 시절 일본 재판소는 기소와 재판을 모두 담당했다. 그러다 일본국헌법 시절인 1947년 검찰청법과 재판소법이 따로 생기면서, 재판관과 검찰관으로 나누었다. 기존의 검사를 검찰관으로 통칭하고 그 아래 검사총장, 차장검사, 검사장, 검사, 부검사로 나눴다. 마찬가지로 판사는 재판관이 됐다. 우리는 해방 이후 검찰청법과 법원조직법으로 바꾸면서도, 기존의 판사와 검사라는 명칭을 유지했다.
한국에서 변호사라는 이름은 1905년 법률 제5호 변호사법에 따라 생겼다. 제1조에서 민사 당사자나 형사 피고인에게 위임받아 통상재판소에서 대인(代人) 행위와 변호권을 행한다고 정했다. 이 역시 일본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메이지헌법 시절이던 1893년에 변호사법이 만들어지면서 이전까지 쓰이던 대언인(代言人)이라는 단어를 변호사(弁護士)로 대체했다. 변호사는 사법성 감독을 받는 민간인이어서 사(事)나 관(官)이 아닌 인(人)이나 사(士)를 썼다.
변호사 역할이 옳은 판단이라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정작 사건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는 졌지만 잘 싸웠다고 한다. 누군가의 인생이 걸린 사건을 사회운동의 재료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서, 재판 중인 판사와 싸우고 사건을 불리하게 만들어 당사자를 패소시킨다. 이들은 역사와 정의를 말하지만, 결과는 사건을 패배시켜 역사를 후퇴시킨 것뿐이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남의 사건으로 권력과 싸운다는 자기만족을 충족한 것 말고 무얼 했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일대종사>는 무술 영춘권의 일대종사, 즉 큰 스승인 엽문(량차오웨이·양조위 연기)의 이야기다. 영춘권을 하는 엽문은 세 동작으로만 싸운다. 팔을 내밀고, 올리고, 내릴 뿐이다. 이렇게 겨뤄 상대가 쓰러지면 이기는 것이고, 자신이 쓰러지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쿵푸란 단 두 글자로 요약된다. 수평과 수직, 쓰러진 자는 수평, 서 있는 자는 수직이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엽문이 사는 광둥성 포산도 일본군이 점령한다. 일본에 협력하지 않은 엽문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난 속에서 두 딸을 잃는다.
전쟁이 끝나자 엽문은 1949년 포산에서 가까운 홍콩으로 건너가 영춘권 도장을 연다. 이 시절 홍콩에는 중국 본토에서 망명한 많은 무술가가 있었다. 이들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엽문은 명성을 얻는다. 1951년 중국공산당 정부가 광둥성-홍콩 국경을 닫아 엽문은 부인, 아들과도 헤어져 이산가족이 된다. 홍콩에서 엽문은 영춘권을 비전(祕傳)하지 않고 일반에게 대중화한다. 영춘권은 소수의 무술가 사이에서 전해지는 비기가 아니라 대중적인 무술이 된다. 현실에서 이 시절 엽문의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이소룡이다.
무술은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무술은 의미가 없다. 내가 쓰러져도 괜찮은 마음을 무술이라 부를 수는 없다. 졌지만 잘 싸웠다는 문장은 승부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재판으로 사회를 바꾸려면 이겨야 한다. 정치적 맥락이 중요한 입법이나 행정과는 다르다. 정치는 져도 지는 게 아니고, 이겨도 이기는 게 아니다. 오늘 이겨도 안심할 수 없고, 내일 밀려도 끝난 게 아니다. 이처럼 입법과 행정은 타협과 분배의 기술이다. 하지만 재판은 다르다. 단순한 승부이다. 판례를 뒤집지 않는 이상 회복되지 않는다.
1975년 박정희 정부는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 선고를 받은 피고인 8명 전원의 사형을 집행했다.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다.
30년이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진실이 드러났다. 국가정보원은 인혁당 사건이 조작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인혁당 사건 피해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해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이때 국가소송 대표자인 법무부가 상소해 대법원까지 사건을 가져가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역사적인 사건이므로 최고법원에서 확정해 리딩 케이스(leading case)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상소가 돼도 유족은 배상액을 가집행할 수 있고, 피해자는 이미 고인이라는 설명도 덧붙었다.
노무현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못했다. 국가의 상소에 부정적인 여론이 많았다. 피해자 유족의 고통을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인혁당 사건 다른 유족이 뒤이어 제기한 손해배상 사건을 항소해 고등법원으로 가져갔다. 이수근 간첩조작 사건, 서창덕 납북어부 조작 사건 등에서도 그렇게 했다. 법리가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적대적으로 소송을 벌였다. 그제야 리딩 케이스를 만들어야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육군 제5기갑여단 변희수 하사는 2019년 성전환수술을 받았다. 계속해서 여군으로 복무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육군은 심신장애 판정을 내리고 전역을 결정했다. 변희수 하사는 행정소송을 냈는데 첫 재판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전지법은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고 2021년 결정했다. 국방부는 대법원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며 법무부에 항소 지휘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항소를 포기하라는 여론이 잇따랐다. 정의당은 "당장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항소는 양심이 있다면 즉각 포기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법무부는 항소 포기를 지휘했다. 그러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사건 판결은 성전환자의 군복무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고, 이 사건 처분 당시 여성이었던 망인에 대해 음경상실, 고환결손 등을 이유로 한 전역 처분은 관련 법령 규정에 비추어볼 때 위법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더러 법률-시행령-시행규칙으로 이어지는 입법이 섬세하게 소수자를 보호해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국회가 통과시키는 법률부터 행정부가 만드는 시행규칙까지 모든 입법은 다수의 의사를 문서화하는 과정이다. 다수의 힘과 의지가 섬세하게 관철되는 절차이지, 소수자를 보호해 나라를 따뜻하고 섬세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이던 2007년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간제법이 시행됐다. "기간제 근로자를 2년 초과해 사용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고 기간제법은 정했다. 그런데 1년 11개월째에 계약을 종료하는 일이 속출했다. 기간제법이 오히려 기간제 노동자를 위협한다며 이 법을 없애달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를 대법원이 해결했다. 기간제법 10년째인 2016년 갱신기대권을 만들어 판례로 확정했다.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에게 그에 따라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

드라마 속 인권 변호사 말처럼 '당신 틀리지 않았다' '나는 당신 지지한다' 그렇게 말하고 손 꽉 잡아주는 것도 변호사 일이다. 하지만 그런 호의는 누구라도 베풀 수 있다. 쌍용자동차 소송이 대법원에서 패소하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나. 이런 사건을 맡아 법정에 들어선 변호사는 이기는 것이 유일한 목표여야 한다. 재판부의 편견을 지적했고, 당사자에게 위로가 됐다며, 그래서 졌지만 잘 싸운 재판이라고 제 입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더는 변호사가 아니다. 소송도 단 두 글자로 요약된다. 수평과 수직, 쓰러진 자는 수평, 서 있는 자는 수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