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인 줄 알았는데… 깨알 글씨로 원산지 숨긴 생수, 꼼수 처벌 못하나
국산인 줄 알았는데… 깨알 글씨로 원산지 숨긴 생수, 꼼수 처벌 못하나
대외무역법 위반 소지

중국산 생수가 ‘백두산’이라는 이름으로 국산처럼 팔리며, 원산지 표기 논란이 일고 있다. /셔터스톡
"국산인 줄 알고 샀는데…" 매일 마시는 생수병 뒷면의 작은 글씨를 보고 뒤통수를 맞은 듯한 경험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최근 중국에서 생산된 한 생수가 '백두산'이라는 상징적 이름을 앞세워 국산 제품처럼 판매되면서, 교묘한 원산지 마케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법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러한 마케팅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따져봤다.
한 생수 브랜드는 '수원지 백두산(중국)'이라고 표기했지만, 정작 '중국'이라는 글자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작게 적어둬 소비자들의 혼란을 샀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뒤늦게 중국산인 걸 알고 놀랐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이는 비단 생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재료는 수입산이면서 "국내에서 만든 100% 콩기름", 쌀만 국산인 "100% 우리햅쌀 고추장" 등 유사 사례는 식품업계 전반에 만연해 있다.
깨알 같은 글씨 함정, 괜찮나?
업체들은 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항변하지만, 형식만 지켰다고 해서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원산지 표시는 단순히 정보를 기재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가 쉽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대외무역법은 원산지 표시의 위치, 크기, 색상 등을 부적정하게 하여 소비자가 원산지를 식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행위를 '원산지 부적정표시'로 규정하고 있다.
청주지방법원 역시 "일반인의 입장에서 해당 표시를 보고 원산지를 쉽게 알 수 있는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은 바 있다 (2014노416 판결). 즉, 소비자가 돋보기를 들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깨알 글씨' 표기는 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소지가 충분하다.
이름은 한국적, 원산지는 외국?…표시광고법 위반 소지
'백두산'처럼 한국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지명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해 국산 제품처럼 보이게 하는 마케팅은 어떨까. 이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상 소비자를 속이거나 잘못 알게 할 우려가 있는 기만적인 표시·광고에 해당할 수 있다.
표시광고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은 소비자 오인성, 즉 소비자를 착각하게 만들었는지 여부다. "국내산인 줄 알고 샀다"는 소비자들의 실제 반응은 이러한 오인성이 발생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원산지 정보를 교묘하게 감추거나 오해하게 만드는 행위는 명백한 법 위반이다.
교묘한 '부분 국산' 마케팅의 경계
"국산 돼지고기, 엄선된 채소로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만두의 주재료인 밀가루와 당면이 수입산이었던 것처럼, 일부 국산 원재료만 부각하는 마케팅 역시 법적 경계 위에 있다.
과거 법원은 국내 다른 지역 인삼을 섞어놓고 '강화 인삼'으로 판매한 행위를 원산지 허위 표시로 판단한 바 있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15노555 판결). 이는 일부 사실을 내세워 전체가 그런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하게 만드는 행위는 위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제품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요 원재료가 수입산임에도 부수적인 국산 재료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소비자에 대한 기만 행위가 될 수 있다.
식품은 소비자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원산지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단기적 이익을 위해 소비자의 신뢰를 저버리는 꼼수 마케팅은 결국 법의 심판과 시장의 외면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