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깎였으니 계약 무효"… 잠적한 집주인 대신 HUG가 1억 원 물어낼까?
"대출 깎였으니 계약 무효"… 잠적한 집주인 대신 HUG가 1억 원 물어낼까?
집값 하락으로 깎인 대출 한도
법원 "기존 대출 조건 안 맞으면 계약은 종료된 것"

허그 홈페이지 캡쳐
임대차 계약 당시 "대출이 불승인될 경우 계약을 무효로 한다"는 특약을 넣었다면, 집값 하락으로 인해 대출 한도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보증금을 온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을까. 최근 의정부지방법원은 이러한 특약의 효력을 폭넓게 인정하며, 잠적한 임대인뿐만 아니라 보증 책임을 회피하려던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도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보증금 1억 원의 생명선, '대출 불승인 시 무효' 특약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입자 A씨는 전 소유주 C씨와 의정부시의 한 건물을 전세보증금 1억 원에 임차하기로 계약했다. 당시 사회초년생이었던 A씨에게 1억 원은 전 재산과 다름없었기에, 계약서에 중요한 안전장치 하나를 마련했다. 바로 "임대인은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에 적극 협조하며, 대출 불승인 시 계약은 무효로 한다"는 특약이었다.
A씨는 이 계약을 바탕으로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했고, 실제로 1억 원을 대출받아 보증금을 지급했다. 이후 건물의 주인은 C씨에서 B씨로 변경되었고, A씨는 바뀐 집주인 B씨와 2024년 4월에 임대차 계약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이때도 역시 "기존 계약 조건을 유지하며 대출 불승인 시 계약은 무효"라는 내용이 포함된 새 계약서를 작성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부동산 시장 냉각으로 해당 건물의 시가가 하락하면서 대출 기관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8,000만 원으로 낮춰야만 대출 연장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A씨는 급히 임대인 B씨에게 보증금을 감액해달라고 요청했고, B씨는 처음에는 협조할 듯 답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결국 대출 연장이 좌절된 A씨는 계약 종료를 통보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집값 하락이 불러온 대출 거절... '묵시적 갱신' 주장한 HUG의 패소
재판 과정에서 HUG 측은 보증 책임을 면하기 위해 두 가지 논리를 내세웠다. 첫째는 A씨가 제때 갱신 거절 통지를 하지 않아 계약이 이미 '묵시적으로 갱신'되었다는 주장이었고, 둘째는 대출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8,000만 원까지는 가능했으므로 이를 '대출 불승인'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의정부지방법원(2024가단116508)은 이러한 HUG의 주장을 모두 일축했다. 재판부는 A씨와 임대인이 나눈 대화와 특약 문구의 취지를 종합해 볼 때, 이 계약은 '종전과 동일한 내용'으로 대출이 연장되는 것을 전제로 체결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시가 하락으로 인해 기존 대출금액인 1억 원을 그대로 빌릴 수 없게 된 상황 자체가 특약에서 정한 '대출 불승인'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임대차 계약이 갱신되지 않고 기존 만기일인 2024년 4월 18일에 정상적으로 종료되었다고 보았다.
"공동으로 1억 원 돌려줘라" 법원의 준엄한 심판
결국 법원은 임차인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의정부지방법원 오성우 판사는 "임대인 B씨와 주택도시보증공사는 공동하여 A씨에게 보증금 1억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특히 HUG에 대해서는 보증 채무자 변경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이 보증 사고 기간 내에 발생한 것이 명백하다고 짚었다.
이번 판결은 전세 사기와 역전세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임대차 계약 시 작성한 '대출 관련 특약'이 임차인의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강력한 법적 방어막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전문가들은 임대인이 연락을 피하거나 보증공사가 책임을 회피하려 할 때, 계약 당시 설정한 특약의 구체적인 문구가 승패를 가르는 핵심 열쇠가 된다고 조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