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헌법에 새긴 건국의 아버지와 어머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헌법에 새긴 건국의 아버지와 어머니
올해 4월 11일은 임시정부 수립·임시헌장 선포 100주년

SK텔레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인공지능 기술로 복원한 임시정부 요인과 직원들=(C)저작권자 SK텔레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1조 1항입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인 만큼 헌법의 성격을 풀어낸 전문(前文)을 제외하면 가장 앞에 있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그것 아시나요? 이 문장이 등장한 건 무려 100년 전 초대 헌법인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였습니다. 임시헌장이 등장한 배경엔 바로 임시정부 수립이 있습니다. 이 까닭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를 알아보려면 임시정부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살펴야 합니다.
1910년대 독립운동가들은 몰려들었던 곳이 바로 중국 상해입니다.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 소식이 전해지자 상해에 머물던 한인 청년을 중심으로 ‘독립을 위해 뭔가를 해보자’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전쟁이 끝나면 전후 처리를 위해 국제회의가 열립니다. 상해 청년들은 국제회의 결과가 당시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 청년 중에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여운형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여운형을 중심으로 신한청년당을 조직합니다.
국내에서는 천도교·기독교 인사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인 3·1운동을 준비했습니다. 이들은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상해에 있는 신한청년당에 대표를 보내 국내 소식을 알립니다. 이때 대표로 파견된 사람이 현순입니다. 현순은 상해에 있는 프랑스 ‘조계’ 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조계란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국가들이 아시아 국가와 불평등계약을 맺은 뒤 자신들의 국민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게 정한 지역입니다.
이 조계는 제국주의의 산물이지만 우리 독립인사들에게는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상해의 청년들과 국내의 종교계 원로가 생각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또 유럽의 힘이 미치는 만큼 일제가 독립임시사무소의 활동에 함부로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유럽과 접촉할 수 있는 ‘외교의 땅’이기도 했습니다. 상해의 청년들과 국내의 종교계 인사들은 현순을 중간 다리로 삼아 정부를 수립하고 의회를 구성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4월 11일 이들은 한반도의 각 지방의 대표들로 의회를 구성하고 정부를 조직했습니다. 의회 이름 임시의정원, 정부 이름은 임시정부입니다. 임시의정원은 초대 의장과 부의장에 각각 이동녕과 손정도를 선출했습니다. 나라의 이름인 ‘국호’는 대한민국, 조선공화국, 고려공화국이 후보로 나왔는데요. 결국 현재 우리나라의 명칭인 ‘대한민국’으로 결정됐습니다. ‘대한’(大韓)은 옛 한반도의 고유 이름인 한(韓)에서 따왔습니다.
중요한 건 ‘민국’(民國)입니다. 왕이나 황제가 아닌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체제가 공화국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같은 공화국 정신은 임시헌장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임시헌장은 총 10개 조항으로 구성됐는데요, 바로 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만 알아볼까요.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헌법 문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세계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중국의 헌법 문서에서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1925년 ‘중화민국헌법 초안’에서였습니다.
유럽에서 민주공화국(Democratic)이라는 용어가 나타난 건 체코슬로바키아 헌법(1920년 2월)과 오스트리아 연방헌법(1920년 10월)에서였습니다. 인간의 기본권을 오밀조밀하게 담은 것으로 유명한 그 독일의 바이마르 1919년 헌법에서 ‘독일제국은 공화국이다’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요? 임시헌장의 초안을 잡은 사람은 조소앙입니다. 190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법학을 전공한 조소앙은 정치철학자인 몽테스키외의 공화제를 자연스럽게 공부했을 것입니다. 몽테스키외는 ‘권력분립’이라는 공화제의 원칙을 만든 사람으로 많이 알려져 있죠. 그가 설계한 공화정 중 하나가 바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합친 민주공화정이었답니다.
이처럼 당시 임시정부를 설립하고 임시헌법을 만들었던 청년들은 선진 문물과 국제정세에 민감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건국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문장은 1948년 제헌헌법에 그대로 반영되고, 여덟 차례에 걸쳐 헌법이 개정될 때 항상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 소중한 문장을 오늘의 정치인과 시민 모두 지켜나가야겠습니다.
(기사 작성에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2013년에 저술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참고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