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배터리 제조사' 낙인찍힌 삼성과 LG, 명예회복 할 길은 '이것'뿐
'불량 배터리 제조사' 낙인찍힌 삼성과 LG, 명예회복 할 길은 '이것'뿐
8개월 전에는 "복합적인 원인"⋯이번엔 돌연 "배터리 때문"
발표 하루 만에 조사 과정 문제 수면 위로⋯졸속 발표 의혹
LG화학·삼성SDI, 잘못된 발표라면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 가능할까?

ESS 화재사고 조사단장인 김재철 숭실대학교 교수와 공동단장인 한국전기공사 문이연 이사가 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 조사단, 5곳의 화재사고 조사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있었던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원인 발표에 뒷말이 무성하다.
반년 전 "복합적 원인"이라던 정부는 이날 돌연 입장을 바꿔 "화재는 배터리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배터리 공급 제조사인 LG화학과 삼성SDI는 난리가 났다. "정부 발표는 사실과 다르다"며 극구 부인했지만, 정부 발표로 "문제 있는 배터리를 만드는 회사"란 낙인이 찍혔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 하루만인 7일에는 "조사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왔다. 조사단 20명 중 3명이 비전문가인 국회의원 보좌관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회의에서 전문가 그룹은 "화재 원인은 배터리 탓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냈지만 묵살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업들을 중심으로 "정부가 애꿎은 기업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앞으로 '한국 배터리는 결함이 있다'는 낙인도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전망이다. 해당 기업에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힌 것이다.
"우리 배터리에는 문제가 없다"고 억울해하는 기업들이 밟을 수 있는 법적 조치는 무엇이 있을까. 변호사들과 정리해봤다.
최근 들어 태양광 발전소에서는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랐다. 계속된 화재에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해 불안감이 높아진 상태였다. 8개월 전 정부가 "복합적 요인에 의해 불이 났다"고 발표한 건, 하나의 확실한 원인이 불을 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는 "ESS가 화재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을 바꿨다. ESS란 태양광 발전을 통해 만들어진 전기를 저장해두는 배터리의 일종인데, 여기에서 불이 났다는 것이다.
ESS 제조사인 LG화학과 삼성 SDI 측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며 반발했다. "같은 제품을 사용한 해외에선 ESS 화재 사고가 보고된 적이 없다"며 "자체 조사와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업계에서도 "정부가 확실하지 않은 '추정'을 섣불리 발표했다"고 입을 모았다.
Point ① 이미 끝난 발표, 책임 물을 수 있나
만약 기업 주장대로 '정부 발표에 문제가 있다'고 드러날 경우, 기업은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변호사들 "발표 자체에 책임 묻기 어렵다"
변호사들은 발표 자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기 힘들다"고 했다. 행정부의 어떤 액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려면, 그 액션이 법적으로 처분에 해당해야 한다. 그래야 소송을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법률 전문가들은 "정부의 발표는 '처분'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처분이 아니니 "그걸 취소해달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법무법인 문장의 임원택 변호사는 "설사 행정처분으로 본다 하더라도, 이미 회사의 피해는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경우 법원은 취소 소송을 각하시킨다"고 밝혔다.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은 상황이라, 소송을 진행할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임 변호사는 "만약 발표 이전이었다면 발표를 연기하거나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oint ② 허위 사실 및 조사 과실이 드러난다면?
하지만 정부 발표가 허위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발표 과정에서 과실이 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7일 불거진 '졸속 검증'이 사실인지 여부가 중요한 이유다.
변호사들 "입증하기 어렵지만 손해배청구 가능"
법무법인 지후의 민태호 변호사는 "정부가 성급한 추정을 했거나, 잘못된 자료에 의해 발표한 점을 기업이 밝힌다면 승소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임원택 변호사도 "해당 내용이 밝혀진다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며 "이번 발표와 회사 매출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될 수 있다면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다만 입증은 어렵다. 임 변호사는 "지금 단계에서는 발표 때문에 회사가 구체적인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 손실을 객관적으로 산정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지금 상황에서 기업이 취해야 할 조치는 따로 있다. 정보공개청구다. 모든 국민은 공공기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정부가 이번 발표에서 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조사 과정 전반'에 대한 정보 확보가 필수적이다.
변호사들 "정보공개청구 소송, 법원이 받아줄 것"
상황을 종합했을 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정부 발표의 근거자료를 얻은 뒤 이를 분석하여 정부 측에 과실이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는 게 핵심"이라고 민태호 변호사는 분석했다.
정부가 "공개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그럴 경우 소송을 내면 된다"고 했다.
임원택 변호사는 "정보공개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인다"며 "발표 결과를 비롯하여 조사 경위, 데이터, 분석 방법 등을 공개해달라고 하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