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는 이겼는데 뉴진스는 졌다... '신뢰 파탄' 인정 기준은 어디까지?
동방신기는 이겼는데 뉴진스는 졌다... '신뢰 파탄' 인정 기준은 어디까지?
뉴진스, 항소 마감 앞두고 어도어 복귀
15년 전 동방신기 '노예 계약'은 인용, 뉴진스 11가지 주장은 기각
법원이 요구하는 중대한 사유란 무엇인가

뉴진스 사태가 멤버 전원의 어도어 복귀 선언으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항소 마감 하루 전 극적 결정이다. /연합뉴스
1년간 K-pop 산업을 뒤흔든 뉴진스 사태가 뉴진스 멤버 전원의 어도어 복귀 선언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항소 마감 시한(13일 자정)을 하루 앞두고 극적인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많은 이들이 15년 전, 소속사 SM을 상대로 '노예 계약' 문제를 제기하며 승리했던 동방신기 3인(JYJ)의 사례를 떠올렸다. 하지만 뉴진스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법원은 1심에서 "신뢰 파탄의 주된 원인은 민희진 전 대표의 독립 시도에 있다"며 어도어의 손을 들어줬다.
비슷해 보이는 분쟁에서 왜 다른 결론이 나왔을까. 해답은 법원이 '신뢰 파탄'을 인정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있다.
동방신기는 '계약서'로, 뉴진스는 '주장'으로 싸웠다
동방신기 3인이 2009년 법원에서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명확했다. '노예 계약'이라 불렸던 불공정한 계약서 그 자체가 핵심 증거였다.
당시 법원은 13년이라는 과도한 계약 기간과 과다한 손해배상액 조항 등이 "연예인의 경제적 자유와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계약 조항 자체가 객관적인 불공정성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뉴진스 측은 1심에서 11가지에 달하는 계약 해지 사유를 주장했다. 민희진 전 대표 해임에 따른 프로듀싱 공백 우려, 빌리프랩 소속 그룹 아일릿의 뉴진스 표절 논란, 멤버 하니가 들었다는 '무시해' 발언 등이다.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들 대부분을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오히려 민 전 대표 해임 후에도 어도어가 프로듀서 지위를 보장하겠다고 제안한 점, '무시해' 발언 논란 당시 어도어가 문제 해결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을 인정했다. 동방신기가 '계약서'라는 객관적 증거로 싸운 반면, 뉴진스의 주장은 법적 기준에서 입증되지 못한 셈이다.
법원의 '신뢰 파탄' 인정 기준…"중대한 사유"
법정에서 "신뢰가 깨졌다"는 말은 단순한 감정 호소가 아니다. 치열한 입증 문제다.
대법원 판례(2017다258237 판결)에 따르면, 전속계약 해지를 위해서는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연예인의 인격권을 침해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중대한 사유는 누가,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계약 해지를 주장하는 측, 즉 이번 사건에서는 뉴진스 측이 '신뢰 파탄'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야 할 책임(입증 책임)을 진다. 법원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불만이 아닌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이며, 이는 반드시 객관적 증거를 통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법원이 대표적으로 인정하는 중대한 사유로는, 소속사가 수익금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정산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정산 의무의 중대한 위반', 합리적 이유 없이 트레이닝이나 앨범 발매 등 핵심 지원을 중단하는 '매니지먼트 의무 불이행', 또는 소속사가 아티스트의 건강이나 인격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인격권 보호의무 위반' 등이 해당한다.
가수 은가은의 가처분 인용 사례처럼 "과도하게 비용을 정산"했거나, 동방신기 사례처럼 계약 자체가 부당하다는 명백한 증거가 필요했다. 뉴진스 측이 제기한 11가지 주장은 법원의 이 엄격한 기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항소 마감 하루 전, 전격 복귀 선언... 왜?
뉴진스 측은 1심 패소 후 "항소심 법원에서 현명한 판결을 바란다"며 항소 의지를 밝혔었다. 하지만 항소 마감 시한을 하루 앞두고 180도 태도를 바꿔 복귀를 선언했다. 이는 전략적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1심에서 11가지 주장이 모두 기각된 판결을 항소심에서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뉴진스 측은 이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초기 동정 여론과 달리, 법원이 "신뢰 파탄의 주된 원인은 민희진 전 대표의 독립 시도"라고 못 박으면서 여론 또한 급격히 악화됐다.
시간과 비용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항소는 곧 활동 중단 기간의 장기화를 의미한다. 2029년 7월까지 계약이 남은 상황에서, K-pop 시장의 빠른 속도를 고려할 때 이는 멤버들에게 치명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국, 실익 없는 법적 다툼을 이어가기보다 복귀라는 현실적 카드를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막 내린 분쟁, 뉴진스의 향후 행보는
어도어는 "컴백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이라며 멤버들과의 논의를 통해 활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이미지 쇄신과 팬덤 결속을 위한 새 앨범 활동이 유력하다. 하지만 2029년까지 남은 계약 기간 동안 깨진 신뢰를 봉합하는 것은 법적 문제와는 또 다른 과제다. 멤버들이 주장했던 불만은 법원에서 기각되었을 뿐, 해소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