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시계만 멈췄나⋯1999년에도, 2020년에도 '스토킹 처벌법'은 제자리걸음 중
국회의 시계만 멈췄나⋯1999년에도, 2020년에도 '스토킹 처벌법'은 제자리걸음 중
1999년부터 발의됐던 스토킹 처벌법, 단 한 번도 통과되지 못해
국회 회의록 살펴봤더니 달라진 건 스토킹 정의뿐⋯의논 내용은 모두 비슷
20년 넘게 '정의'만 내리는 국회?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5개 관련 법안 모두 통과 못할 듯

지난 1999년 이후 스토킹 관련 법안을 논의를 계속해왔던 국회. 하지만 번번이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이렇게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사이 스토킹 범죄는 늘어만 갔다. 해당 이미지는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코리아
"사랑해."
지난 2015년, 출근길에 나선 A씨는 골목길 바닥에 스프레이 라카로 적힌 "사랑한다"는 문구를 발견했다. 보자마자 A씨는 소름이 끼쳤다. 분명 바닥엔 누구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A씨는 누가, 누구에게, 왜 이런 메시지를 남겼는지 직감했다. A씨를 끈질기게 스토킹하던 B씨가 A씨에게 남긴 글이었다.
그는 A씨의 출퇴근길에 위치한 여관에 짐을 풀고, 집요하게 스토킹을 하고 있었다. A씨는 이를 여러 차례 신고하며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B씨에게 경고를 하고 귀가조치 했을 뿐이다. B씨는 자유롭게 A씨를 따라다녔고, 결국 성폭행까지 저질렀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씨는 B씨에 의해 살해됐다.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있던, 그리고 집요했던 스토커에게.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는데… 그런 것까지 처벌하는 건 그렇지 않습니까?" (1999년 국회 회의록 중)
스토킹을 보는 한 국회의원의 시선이다. 하지만 스토킹은 주거침입, 폭행 그리고 살인까지 여러 흉악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렇게 비극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 '스토킹' 범죄는 미연에 차단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려면 가해자의 범죄 의사를 꺾을 수 있는 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법은 전무한 상태다.
2020년 현재도 스토킹은 경범죄처벌법만으로 처벌하고 있는데, 최대 처벌 수위가 '벌금 10만원'일 정도로 경미하다. 이 때문에 스토킹을 제대로 처벌할 법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난 20여년간 끊이질 않았다.
국회도 이것을 모르지 않는다. 지난 1999년 이후 스토킹 관련 법안을 논의해왔다. 논의한 전체 수량만 놓고 보면 적은 양은 아니다. 21년 동안 발의된 법안만 총 12개다. △15대 1건 △16대 1건 △17대 1건 △18대 1건 △19대 3건 △20대 5건이다.
하지만 번번이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5건이나 관련 법안이 발의된 이번 20대 국회에서도 같은 운명에 처해질 전망이다. 임기 종료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와, 사실상 이번에도 법안 통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사이 스토킹 범죄는 늘어났다. 지난 1월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2013년 312건이었다가 점점 증가해 2018년 544건, 2019년엔 583건으로 늘어났다. 피해자 수로 따지면 지난 7년간 3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셈이다.
관련 논의에 진전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스토킹 관련 법안을 논의한 국회 회의록을 비교한 결과, 비슷한 내용을 토론할 뿐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서 첫 스토킹 관련 법안이 발의된 15대 국회와 지난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에 대해 회의한 회의록을 비교해봤다.
두 회의록에서 달라진 건 스토킹에 대한 정의를 구체화한 것 뿐이다. 1999년도 발의됐던 법안에서는 스토킹을 "특정인을 그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미행하거나 편지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일방적으로 말과 글 등을 전달해 심각한 공포심 등을 유발하는 행위"라고 정의했었다.
19년이 지난 뒤 2018년 추혜선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서는 스토킹을 10가지 유형으로 나눠 세분화해 처벌을 강화했다. 그뿐이었다.
다른 내용은 마치 '국회의 시간만 변하지 않은 듯' 똑같았다. 회의록 속 내용은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었다.
① 스토킹을 처벌할 관련 법이 없다
"실제로 스토킹 관련 처벌 법규가 없다"(1999년)
"스토킹 가해자들을 차단할 제도적이고 현실적인 처벌 근거법이 없어"(2016년)
② 스토킹의 지속성이 강하다
"스토킹 행위는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집요한 행위"(1999년)
"스토킹 피해 지속 기간은 3개월 미만에서 많게는 5년 이상 지속되기도 한다"(2016년)
③ 스토킹이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
"스토킹은 성폭력이나 폭력 등으로 확대범죄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1999년)
"살인 등 심각한 범죄 행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2016년)
④ 입법을 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우리도 독립된 스토킹처벌특례법을 제정해 처벌을 강화해야 할 때"(1999년)
"'이제는' 입법을 통해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하고 예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이를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스토킹 범죄에 대한 문제의식과 입법에 대한 의지는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건 법안 통과인데 여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20년 동안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 국회. 다음 21대 국회에서는 과연 바늘구멍보다 작았던 국회의 문턱을 넘어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