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금 0원" 중동 여행 전액 환불 선언한 여행사들… 손해는 누가 떠안나
"위약금 0원" 중동 여행 전액 환불 선언한 여행사들… 손해는 누가 떠안나
소비자엔 전액 환불, 여행사는 누구한테 받나
B2B 계약서에 달린 구상권의 운명

4일 인천국제공항에 에미레이트 항공 A-380 여객기가 계류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쟁 공포가 덮친 중동 지역. 국내 주요 여행사들이 이례적인 결단을 내렸다. 3월 출발하는 중동행 및 두바이 등 경유 상품에 대해 취소 수수료 없이 '100% 전액 환불'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나투어, 노랑풍선, 모두투어 등 대형 여행사들의 선제적 조치에 소비자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훈훈한 미담 이면에는 뼈아픈 현실이 존재한다. 여행사가 소비자에게 위약금을 받지 않고 돈을 돌려준다는 것은, 누군가는 그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여행사는 자신들이 입은 손해를 항공사나 호텔에 청구해 받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여행사가 끝까지 환불을 거부했다면, 소비자는 법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있었을까. 복잡하게 얽힌 여행 계약의 법적 쟁점을 파헤쳐 봤다.
여행사의 험난한 구상권 청구
여행업의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여행사는 소비자와 패키지 여행계약을 맺는 동시에, 이행을 위해 항공사 및 호텔과 별도의 B2B 계약을 체결한다. 소비자의 돈을 돌려준 여행사가 항공사나 호텔에 비용을 청구(구상)할 수 있는지는 철저히 계약서 내용에 달렸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계약서에 전쟁 위협 등 불가항력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면 여행사도 수수료 없이 환불을 받을 수 있다.
둘째, 계약 방식이다. 만약 여행사가 항공사로부터 좌석을 일괄로 미리 사들이는 방식으로 계약했다면 환불은 엄격하게 제한되며 구상이 어려울 수 있다. 호텔 역시 불가항력 조항이 없다면 여행사가 고스란히 손해를 뒤집어써야 한다.
결국 여행사가 항공사나 호텔로부터 환불을 받으려면 양측이 맺은 개별 B2B 계약서상의 불가항력 면책 조항을 입증해야만 한다.
만약 계약서에 전쟁 위험에 대한 명확한 면책 조항이 없거나 항공사가 이를 엄격하게 해석할 경우, 여행사가 소비자에게 내어준 환불금은 고스란히 여행사의 자체 손실로 남게 된다.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은 강제성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해
사실 여행사들의 이번 전액 환불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다. 현행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르면, 외교부 여행경보가 3단계 이상이 아닌 지역에 대해 소비자가 단순 불안감으로 취소할 경우 여행사는 위약금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기준에 환불하라고 적혀있는데 여행사가 배째라 식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법적으로 여행사를 직접 처벌할 방법은 없다.
소비자기본법에 명시된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은 분쟁 해결을 위한 합의나 권고 기준일 뿐, 법적 구속력을 가진 강행규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원 역시 이 기준이 소비자의 구체적인 사법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여행사가 이를 어긴다는 이유만으로 행정 관청이 직접 제재를 가하거나 환불을 강제 이행시킬 수는 없다.
직접적인 제재 수단이 없다고 해서 소비자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사가 권고 기준을 무시할 경우, 소비자는 한국소비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얻어내거나, 부당 약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명령을 이끌어낼 수 있다. 최종적으로는 민사소송을 통한 강제집행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