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38)] 큰돈 아니어도 치열하게 다툰다
[정형근 교수 에세이 (38)] 큰돈 아니어도 치열하게 다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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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교통사고로 찾아온 선배. 고향 사람들의 분쟁이라 수임하기가 망설여졌다. 얽히고설켜 있는 인간관계에서 어느 한 편을 돕는다고 나섰다가 원망듣기 쉬웠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땅끝 해남으로 내려온 지 몇 달이 지났다. 해남 읍내는 높은 건물은 많지 않고, 외곽에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가 산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곳 토박이들은 먼저 나의 고향을 묻곤 하였다. 해남에 인접한 강진이라고 하면 이내 '객지 사람이구나!' 반응을 보였다. 반면 강진, 장흥 지인들은 왜 고향에서 개업하지 않았느냐며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에서 살 때는 고향이 남도 지역 전부로 여겨졌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 해남으로 올 때도 고향으로 사무실을 옮긴다는 생각이 컸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주민들의 정서 속에 군(郡)을 경계로 하는 소지역 정서가 강했다. 해남에서 사는 강진 사람들은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1년 선배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는 꾸깃꾸깃한 봉투에 넣어온 교통사고 사실확인원, 진단서 등의 서류를 보여주었다. 한 해 전에 그의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합의를 하려고 여러 번 만나 금액을 절충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언성만 높아지는 충돌만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 법대로 해야겠다며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교통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강진 읍내에 살고 있었다.
고향 사람들의 분쟁이라 수임하기가 망설여졌다. 얽히고설켜 있는 인간관계에서 어느 한 편을 돕는다고 나섰다가 원망듣기 쉬웠다. 그렇지만 이제껏 속을 썩다가 찾아온 그의 입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일단 얼마나 손해를 입었는지 확인해 보았다. 자동차 수리비 견적이 600만원이 나왔고 한다. 피해자는 50일간 입원 치료를 받았으며, 그 치료비는 보험회사에서 지급하였다. 그리고 퇴원 후에는 별다른 장애 없이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해자가 가입한 책임보험에서 200만원을 수령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가해자가 공탁하였던 돈 300만원도 수령한 상태였다.
그런데 문제는 가해자가 이 사건을 야기한 후에 다른 교통사고로 작년에 사망해 버린 것이다. 가해자의 상속인들을 상대로 재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속인들은 감정이 상하여 분노할 것이 불 보듯 했다. 그 선배는 가해자가 당한 불행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가해자의 유족들이 망인의 사고로 합의금으로 많은 돈을 받고서도 자신에게는 피해배상을 깨끗이 해주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의 눈에는 아름다운 땅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돈 몇 푼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어디나 같았다.
그 선배는 이미 가해자의 전답에 가압류를 해두었다. 그는 그동안의 사정을 설명하며 사건을 맡아달라고 했다. 나는 당사자들이 감정이 너무 상한 상태이고, 청구금액이 크지 않은 소액사건이라 수임하지 않고자 했다. 그래서 조금 양보해서 다시 한번 합의를 시도해 보도록 권했다. 그는 가압류를 해 두었기에 일단 상대방의 어떤 조치를 기다려 보겠다고 하면서 사무실을 나갔다.
꽤 여러 날이 지난 다음에 그가 또 찾아왔다.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아 속을 썩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때도 한사코 수임을 거절하였다. 혹시 섭섭해할까 싶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은 무료로 작성해 주겠다고 하였다. 앞으로 재판이 시작되면 그때그때 도와주겠으니 직접 법정에 나가라고 권했다.
"변호사가 사건 맡기를 거절하면 어떻게 하냐? 돈만 받으면 되지⋯."
그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얼마 후 강진 군청에서 공무원 하는 친구가 전화를 했다. 읍내에 아는 지인이 억울하게 가압류를 당했는데, 어떻게 하면 그 가압류를 풀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급히 법정에 가려던 참이었기에 자세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가압류를 당했으면, 제소명령 신청을 해서 다투어 보는 방법도 있다"고 알려준 후에 전화를 끊었다.
보름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두 번이나 돌려보냈던 그 선배가 다시 찾아왔다. 일전에 가해자의 재산에 가압류를 해놓은 것에 대하여 법원에서 제소명령이 나왔다고 했다. 가해자 쪽도 참 어지간하구나 생각되었다. 좋게 화해하면 좋을 것인데, 제소명령 신청까지 하였다고 급기야 생각하였다. 아무래도 선배의 말만 지속적으로 듣다 보니, 진실과 상관없이 그 상대방이 깐깐한 사람들로 여겨졌다. 세 번씩이나 찾아온 선배의 사건을 거절할 수 없어서, 그 사건을 수임하기로 하였다. 정말 내키지 않는 사건을 맡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 일전에 가압류 해제 방법을 물었던 공무원인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후배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친구는 그 후배가 가압류 해제 방법을 물어보길래, 일전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재판이 시작되면, 해남에 있는 정형근 변호사와 상의해 가며 대처하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던 그 변호사인 내가 원고 대리인이 되어 재판을 청구한 것이다. 자기편이 되어 줄 것으로 알았던 변호사로부터 제소를 당했으니, 그들이 얼마나 황당해하였을까 싶었다.
변호사는 똑같은 사건에 대하여 두 당사자를 대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좁은 시골에서 동일한 교통사고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쟁에 내가 조언을 해왔던 것이다. 물론 친구가 물어온 사건과 내가 상담해온 사건이 동일한 것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아무튼 그 친구의 말을 잠잠히 듣고 있던 나는, 고향 땅이 얼마나 좁은 곳인지 실감했다.
아무튼 지정된 재판기일에 법정에 출석하였다. 법정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사건관계인들로 만원이었다. 번듯한 모습의 젊은 사람은 대부분 금융기관 소속 직원들이었다. 그들은 변제기가 도래한 대출금을 청구하거나, 그 보증인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농촌살이의 어려움은 수익성 없는 농산물 가격만이 아니었다. 앞집은 농가 부채를 갚지 못하여 시름을 앓고, 그 이웃집은 앞집 보증을 서준 탓으로 근심에 싸여 있었다. 첫 기일이라 제출해 놓은 소장 내용을 진술하였고, 가해자의 상속인들인 피고들은 답변서를 재판기일 하루 전날 제출해 놓고 있었다.
변론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는데, 우르르 어떤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차에 오르려는데 그들은 나의 주위를 빙 둘러섰다. 법정에서 보았던 피고들과 그의 친척들 몇 명이 함께 있었다. 그들은 아주 적의에 찬 눈초리로 나는 쳐다보았다. 특별히 가해자의 처가 노골적으로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분은 가해자가 사망하고 없는데 무슨 유족들을 상대로 재판을 걸어왔느냐고 대들었다. 예상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씁쓸한 기분을 삼키며 사무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피고들이 제출한 답변서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그 답변서에는 이미 원고와 피고들이 합의를 하였다는 내용이 있었다. 가해자 유족들이 피해자에게 돈 550만원을 지급하고 끝내기로 하였다는 주장과 함께 합의서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합의금 550만원 가운데는 이미 원고가 찾아간 공탁금 300만원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피고들이 원고에게 250만만 지급하면 된다고 하였다. 합의가 안 되어 재판까지 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던 나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그 사건 의뢰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아, 그거요?" 멋쩍게 머리를 몇 번 긁어대더니 "합의서는 썼지만, 무효로 한 것이나 다름없는 합의섭니다"라고 하였다. 피고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돈 550만원으로 하자는 합의서를 작성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합의서를 작성한 다음에 터졌다. 합의서를 작성하였던 날은 가해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장례를 지낸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읍내의 어느 다방에서 합의서를 작성하고 집에 돌아간 가해자의 처는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300만원을 공탁한 서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고에게 전화를 하여 이미 받은 공탁금 300만원을 합의금 550만원에서 공제하고, 남은 250만원만 주겠다고 통보를 하였다. 그렇지만 원고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합의는 결렬되고 서로 간에 입씨름만 오가다가 급기야 재판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합의를 하였다는 피고들의 주장에 대하여 재판장은 "합의서 작성 당시에 정한 금액이 합의금이 아니겠느냐"고 언급하였다. 그 때문에 기일은 자꾸 속행되고 증인신문도 있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법원 구내에서 피고들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이 고역이었다. 좁은 법원 구내라 서로 간에 얼굴을 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서로 간에 화해를 시켜서 원만하게 끝나게 해주는 것이 옳은 성싶었다. 일단 적정한 액수를 산정해 내는 것이 필요했다. 원고는 자동차 견적이 600만원이나 나왔다는 점을 늘 강조했고, 사실 그 부분이 가장 큰 손해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고 가격으로 90만원 가량의 자동차였기에, 차량 교환가격보다 높은 600만원 수리비가 손해액으로 인정되기도 어려웠다. 실제로 수리를 한 사실도 없었다. 그래서 원고가 그간 수령한 돈의 액수를 고려하여 350만원 정도를 더 받고 끝내는 것이 옳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의뢰인과 피고들을 상대로 설득을 시켜 결국 재판을 끝내게 되었다. 피고 측 지인이 내 사무실에 들러 350만원을 주고 가면서도, 원고에 대한 분을 끝내 삭이지를 않았다. 그간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어 왔는지를 짐작하게 하였다.
그 사건이 종결된 후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지역 유지로 계신 분이 상(喪)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주에 있는 친구가 전화를 하여 상가가 있는 동네 입구에서 만나 함께 문상하기로 하였다. 해남에서 오후 6시 반에 택시로 출발하여 약속 장소에 7시경에 도착하였다. 택시에서 내려서 보니, 사방이 컴컴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쌩쌩 불어대는 바람 소리로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은 가로등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들리는 소리라곤 무섭게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뿐이었다. 혹시 주변에 인가가 없는가 둘러보았다. 도로 맞은편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마을 가게인 것 같았다. 도로를 가로질러 그곳으로 갔다. 조그만 주막이었다. 이런 들판 가운데서 무슨 장사가 될까 궁금해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턱을 넘어서는데 "정 변호사님, 아니세요?"라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앞을 살펴보았다. 어두컴컴한 부엌 입구에 오십대 중반이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서 있었다.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에 눈이 번득이고 있었다. 마치 큰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갑작스러운 상황 앞에 당황스러웠다.
"제가 변호사인지 어떻게 아십니까?"
엉거주춤 물어보았다.
"아, 봤잖아요? 법정에서! 그 교통사고 말이에요!"
그러고 보니 서너 달 전에 합의로 종결한 손해배상 사건의 피고 중 한 분이었다. 사고를 낸 남편이 죽자 혼자 가게를 꾸리며 살고 있다고 했다. 하필 들어온 집이 그렇게 껄끄러운 사건의 상대방 집이라니! 다시 한번 시골 변호사의 애로를 느껴야 했다. 다행히 합의로 끝냈던 사건인지라 더 이상의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다. 그분 역시 나의 역할을 인정하고 있었다. 만약 그 사건을 합의로 끝내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갔다면, 그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겠는가? 외나무다리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돌아설 수 있는 관계여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