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 행위로 최숙현 선수 죽음으로 몰고 간 그들에게 왜 '살인죄'는 적용할 수 없을까
가혹 행위로 최숙현 선수 죽음으로 몰고 간 그들에게 왜 '살인죄'는 적용할 수 없을까
'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 선택⋯수차례 전 감독과 팀닥터에 가혹 행위 당해
"도와달라" 신고했지만⋯최 선수를 도운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혹 행위로 인한 극단적 선택⋯가해자들에게 어디까지 책임 물을 수 있을까

수년간의 가혹 행위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철인3종경기' 최숙현 선수. 그의 비극에 "가해자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연합뉴스⋅셔터스톡⋅편집=이지현 디자이너
철인3종경기(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인 고(故) 최숙현 선수(22). 수년간의 가혹 행위 끝에 스스로 세상을 떠난 그의 비극에 "가해자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이들이 "(최숙현 선수를) 죽게 만들었으니 살인을 저지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의견이다.
여론이 이렇게까지 커진 건 최 선수가 남긴 '녹취록'과 '훈련 일지'가 결정적이었다. 심각한 가혹 행위의 증거가 셀 수 없이 나오자 "엄벌해야 한다"는 전 국민적 공분이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검찰 역시 사건을 대구지검 본청에 배당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가해자들을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2일 한때 포털사이트에서는 최숙현 선수의 연관검색어로 '살인죄'가 뜰 정도였다.
하지만 변호사들은 "실제 살인죄를 적용하는 등 형법상 (가해자들에게 최 선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민사적으로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며 "죽음에 대한 가해자들의 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수년간 이어진 가혹 행위로 최 선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번 사건. 폭행에 가담한 (경주시청팀) 감독과 팀닥터 등에게 형법상 살인죄, 폭행치사죄 등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변호사들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폭행 행위와 피해자의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법률 자문

법무법인 에이치스의 김용태 변호사는 "최 선수가 가해자들로 인한 정신적 고통 때문에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자살'을 '폭행'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과거 대법원은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이후 자살한 사건에서 "두 행위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자살 행위를 강간 행위로 인해 생긴 당연한 결과로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다.
법무법인 행복의 장종현 변호사도 "살인죄 또는 폭행치사죄는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폭행만으로 살해의 고의가 있었거나, 폭행 당시 최 선수가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수는 없었다고 보인다"고 했다.
법무법인 테헤란의 이수학 변호사 역시 "성립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변호사들은 이번 사건도 "살인 등이 아닌 단순 폭행이나 협박, 상해, 강요죄 등으로 다스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심각한 수준의 폭행 등이 장기간 발생했고, 견디지 못한 피해자가 자살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처벌은 실형 선고가 예상된다"고 했다.
법무법인 서울의 이장우 변호사는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점에서 실형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인다"고 했고, 법률사무소 파운더스의 하진규 변호사 역시 "종합적으로 봤을 때 실형이 예상된다"고 했다. 김용태 변호사와 장종현 변호사도 같은 의견이었다.
법률 자문

변호사들은 "형법상 (가혹 행위와 최 선수의 죽음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민사상 손해배상이라면 인과관계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형사사건에서는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을 요구하지만, 민사적으로는 '상당한 인과관계' 정도만 증명되면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과거 '가혹 행위'와 '자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판례를 보면 군대 등 폐쇄적인 집단인 경우 법원도 이를 받아들인 경우가 많았다. 체육계의 폐쇄적인 구조에 비추어 볼 때 김용태 변호사는 "최 선수 사건 역시 손해배상에서는 인과관계가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했다.
지난 2013년 대법원은 군복무 중 가혹 행위로 자살한 사건에서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당시 판례를 보면 이번 사건과 비슷한 점들이 여럿 발견된다.
①일반 사회와 달리 엄격한 규율이 중시되는 군대 사회에서는 상급자의 폭행의 의미가 일반 폭행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②피해자는 '가혹 행위' 상황이 계속됨으로써 견디기 어려운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모멸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③피해자는 '가해자가 너무 괴롭힌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④피해자에게 다른 자살할 동기를 찾아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