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외도 의심, 통화 엿듣고 녹음한 아내⋯법원 "아내 무죄" 선고한 이유는?
남편의 외도 의심, 통화 엿듣고 녹음한 아내⋯법원 "아내 무죄" 선고한 이유는?
항소심도 전부 무죄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늦은 밤, 아내 A씨는 남편 B씨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끝난 후, 남편 B씨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A씨의 휴대전화는 계속 연결된 상태였다.
그 순간, A씨의 귀에 남편 B씨와 그의 학교 후배 교사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통화가 끝난 줄 알고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A씨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자신의 휴대전화 자동녹음 기능을 통해 이 대화를 고스란히 청취하고 녹음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청취·녹음하고 이를 소송 증거로 제출해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한, 학교로 찾아가 B씨의 명예를 훼손하고, B씨와 그의 어머니를 협박한 혐의도 더해졌다.
하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제2형사부) 역시 A씨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의 항소는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왜 이런 판단을 내렸을까?

우연히 들려온 남편의 불륜 정황⋯전화 끊으라 요구할 수 없어
A씨가 남편과 B씨의 대화를 몰래 듣고 녹음한 행위 자체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 하지만 법원은 A씨에게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화 전날 상황과 직전 통화에서 남편이 거짓말을 한 정황, 그리고 두 사람의 말투 등을 종합할 때 "A씨로서는 남편의 외도를 의심할 여지가 충분했다"고 짚었다.
더욱이 A씨가 처음부터 엿들을 의도를 갖고 전화를 끊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편의 실수로 연결된 상태에서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된 점에 주목했다.
녹음 역시 휴대전화의 자동녹음 기능 때문이었지, 불법 증거를 수집하려 일부러 조작한 것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배우자의 외도 정황으로 의심되는 대화를 인식한 즉시 통화를 끊거나 자동녹음 기능을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기대할 수 없다"며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명예훼손·협박 혐의도 증거 부족
A씨는 이 녹음 파일과 녹취록을 남편과의 이혼 소송, 그리고 B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이를 통신비밀보호법상 '누설'로 보고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단호했다. 재판부는 "청취·녹음 행위 자체에 적법행위 기대가능성이 없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상, 이를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것을 처벌 대상인 누설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에 제출된 자료가 수사기관에 의해 악용될 여지가 없고, 해당 소송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증거였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A씨가 B씨가 근무하는 학교 중앙현관에서 "유부남 만나는 거 아느냐, 학교 그만둬라"라고 말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 역시 무죄를 받았다.
당시 목격자인 행정실장조차 "학부모와 이야기하는 줄 알았을 뿐 무슨 대화인지 들리지 않았다"고 진술하는 등, 불특정 다수가 들을 수 있는 공연성이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장실에서 보자", "어머니한테 말하겠다", "가족들과 사과받으러 가겠다" 등의 문자와 전화 역시, 사회통념상 상대방에게 극심한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협박에 해당하지 않거나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법원은 남편의 외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아내의 우발적 행동과,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법의 잣대로 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