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도구' 직접 만들고, 동선 파악해 연습까지 했지만⋯법원의 판단은 "우발적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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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도구' 직접 만들고, 동선 파악해 연습까지 했지만⋯법원의 판단은 "우발적 범죄"

2020. 10. 06 16:49 작성2020. 10. 06 20:10 수정
백승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bse@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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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만나려 현 남자친구 살해할 마음 먹어

집 주소 알아낸 후 동선에 따라 꼼꼼히 범행 계획 세웠지만⋯

재판부 "치밀하게 계획되어 실행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라는 사정이 없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한 남성. 그런데 재판부는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감형해준 판결이 나왔다. /셔터스톡⋅편집=조소혜 디자이너

'휙.'


집에 가던 한 남학생은 뒤에서 감겨오는 줄에 속수무책으로 목이 감겼다. 점점 조여드는 줄에 숨은 턱턱 막히는 상태에서 "살려달라" 겨우 외쳤다. 하지만 인적 드문 골목길이었다.


발버둥을 치다가 땅바닥에 굴렀지만, 뒤에서 휘감긴 줄은 여전히 팽팽했다. 철제 와이어로 된 줄은 너무 가늘어 손으로 떼어낼 수도 없었다.


그때. 목에 감긴 줄이 '팅' 끊겼다. 반사적으로 큰길로 내달렸지만, 몇 발자국 떼지 못하고 뒷덜미를 잡혔다. 날아오는 주먹을 간신히 막은 뒤 죽기 살기로 손을 깨물었다. 그리고 나서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직접 살해 도구 만들고, 손목에 무리가 갈까 봐 보호장구까지 챙긴 그 선배

그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사람은 학교를 오가며 본 적 있던 사람이었다. 같은 과 선배 A씨.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의 전 남자친구였다.


이 일로 한 달 넘게 치료를 받던 피해자 B씨는 A씨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 차근차근 준비했던 살인 계획 과정을 알게 된 후 큰 충격에 빠졌다.


A씨는 범행 전 답사를 통해 살인을 저지르기 가장 좋은 위치를 미리 골랐고, 집으로 가는 것을 확인한 뒤 범행 장소에 먼저 가기 위해 렌터카도 미리 빌렸다. 시신을 유기할 수단이기도 했다.


또한 B씨의 목을 조르기 쉽도록 도구도 손수 만들었다. 액자걸이로 쓰이는 철제 와이어에 원목 손잡이를 달고, 손목에 무리가 갈 것에 대비해 '손목 보호 장갑'까지 따로 챙겼다.


피해자 집주소 알아내는 것부터 '치밀'하게 움직였다

B씨의 집 주소를 알아내는 과정에서부터 계획적이었다. A씨는 2년 전 자신이 일했던 대학교에 방문해 조교에게 컴퓨터를 빌렸다. 그 컴퓨터에 교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자동저장돼 있다는 점을 알고 한 행동이었다. A씨는 이를 통해 후배 B씨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그리고 실제 B씨 정보가 맞는지 확인 전화까지 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이렇게 알아낸 집 주소로 향한 A씨는 4시간가량 그 주변을 관찰했다. CC(폐쇄회로)TV는 어디에 설치돼있는지, 아파트 경비원은 언제 순찰을 하는지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B씨가 지하철역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예상되는 경로 등을 파악했다.


범행 당일. A씨는 B씨가 주말마다 가는 PC방 앞을 40여분간 서성였다. 그리고 B씨가 PC방을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것을 확인한 뒤, 미리 빌린 렌트카를 타고 B씨의 아파트 앞에서 숨죽여 기다렸다.


그리고 B씨가 나타나자 살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그 시도는 미수에 그쳤다.


"헤어진 여자친구와 다시 사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법정에 서게 된 A씨. 살인미수 혐의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A씨는 어째서 B씨를 살해하려 했던 걸까.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범행 동기는 이랬다.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연락을 하게 됐고, 다시 사귀게 될 줄 알았는데 B씨와 교제하고 있었다."

"전 여자친구와의 재회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죽이려고 했다."


1심을 맡은 대구지법 이진관 부장판사는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보호받아야 할 절대적 가치로서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침해하는 살인 범죄는 어떠한 이유로 용납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고 했다.


하지만 A씨에게 선고한 형은 징역형의 집행유예였다. 구속돼 재판을 받던 A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바로 풀려났다.


피해자와 합의했다지만⋯'다행히'를 고려한 양형사유로 감형

1심에서 A씨가 집행유예로 선처를 받은 건 피해자와 합의한 점이 가장 컸지만, 재판부가 이번 범죄를 "계획적 범죄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도 결정적이었다.


재판 내내 A씨는 "우발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했다. 수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범행도구를 미리 제작하고, 동선까지 파악하며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이렇게 주장했다.


그런데 이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였다. 이진관 부장판사는 판결문에 "B씨가 여자친구(A씨의 전 여자친구)의 사진을 보고 있는 것에 격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시한 것이다. 더불어 "범행이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공개된 장소에서 행해졌고, 와이어가 끊어진 점을 비추어 보면 치밀하게 계획되어 실행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재판부의 말대로 '다행히' 와이어가 끊어지지 않았더라면, B씨의 목숨을 쉽사리 담보할 수 없었음에도 이를 A씨에게 유리한 양형사유로 고려한 것이다. 검찰이 청구한 전자발찌 부착명령도 기각했다.


이후 검찰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다. 지난 5월 대구고법에서 2심이 열렸지만, 변화는 없었다. 2심 재판장이었던 박연욱 부장판사 역시 집행유예를 유지했다. 합의했고, 반성하고 있고, 사회적 유대가 두터워 보인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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