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로 문의 주세요" 1년 넘게 이어진 영어능력평가시험 ‘화장실 커닝’
"메신저로 문의 주세요" 1년 넘게 이어진 영어능력평가시험 ‘화장실 커닝’
SNS 광고로 부정행위 의뢰자 모집
1년 3개월간 8천만원 챙겨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영어능력평가시험 고득점 가능하니 메신저로 문의해 주세요"
인터넷 도박에 빠진 A씨(30대)가 SNS에 올린 이 한 줄 광고가 대한민국 영어시험 제도를 뒤흔들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과외 광고 같았지만, 그 뒤에는 치밀하고 조직적인 부정행위 시스템이 숨어 있었다.
답안 전송 통로가 된 화장실
A씨의 범행 수법은 교묘했다. 그는 영어능력평가시험에서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했다. 시험 도중 자신이 작성한 답안을 미리 준비한 쪽지에 옮겨 적은 후, 화장실 이용을 핑계로 자리를 이탈했다.
화장실에는 미리 숨겨둔 휴대전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A씨는 답안이 적힌 쪽지를 촬영해 공범들에게 전송했다. 공범들 역시 화장실에서 전송받은 답안을 쪽지에 옮겨 적고 시험장으로 돌아와 자신의 답안지에 기입하는 방식으로 부정행위에 가담했다.
일부 경우에는 같은 시험장 내에서 답안이 적힌 쪽지를 직접 전달하거나 미리 약속된 장소에 숨겨 두는 방식도 활용됐다.
1년 3개월간 18명과 연루⋯범행 수익만 8천만원 넘어
이러한 조직적 범행은 2021년 7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1년 3개월간 반복됐다. 총 18명의 공범들이 각각 A씨에게 15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의 대가를 지불하고 답안을 공유받았다.
범행은 서울 성동구, 마포구, 영등포구 등 여러 시험장에서 이뤄졌으며, 다른 영어능력평가시험에서도 같은 수법이 사용됐다. 확인된 범행 수익만 8천만 원을 넘었다.
A씨는 범죄수익을 은닉하기 위해 사촌동생 명의의 계좌까지 이용했다. 2021년 9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총 30회에 걸쳐 합계 2,405만 원을 사촌동생 명의 계좌로 입금받아 마치 범죄수익이 자신이 아닌 사촌동생에게 귀속되는 것처럼 가장했다.
취업·이직 위해 가담한 공범들
나머지 피고인들은 취업, 이직, 졸업, 편입 등을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영어시험에서 고득점을 얻고자 부정행위에 가담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김예영 판사는 지난해 7월 11일 업무방해 및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 등 19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A씨에게 징역 3년과 추징금 7,665만 원을 선고했다. 나머지 공범들 중 4명은 각각 벌금 1,000만 원을, 14명은 각각 벌금 7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양형 이유에서 "A씨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범행했고, 화장실에 답안지를 가지고 나가 미리 숨겨 놓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촬영, 전송하는 등 범행방법을 사전에 계획해 범행수법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범행수익이 확인된 것만 8,000만 원을 넘고, 범행 동기가 비난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영어능력평가시험 제도의 허점을 드러냈다. 특히 화장실 이용 규정을 악용한 부정행위가 장기간 지속됐다는 점에서 시험 관리 체계의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참고] 서울동부지방법원 2024고단756 판결문 (2024. 7. 11.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