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박으면 1개당 50만원"⋯이런 '갑질 특약', 법적으로 유효한지 따져봤다
"못 박으면 1개당 50만원"⋯이런 '갑질 특약', 법적으로 유효한지 따져봤다
전세 계약 앞둔 예비 세입자 A씨가 받은 '갑질' 특약사항
계약서에 적힌⋯△못 박으면 1개당 50만원 △반려동물 금지 위반시 3000만원
변호사들과 유효한지 하나하나 따져봤더니⋯'당연 무효'인 것도 있지만, 인정되는 것도 있다

'갑질 특약'이라고 이름 붙여진 전세계약서 한 장. 정말 법적 효력이 있는 건지 변호사들과 하나씩 따져봤다. /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1번부터 10번 조항까지 하나하나 만만치 않았다. A4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운 문서의 정체는 바로 '특약사항'. 예비 세입자 A씨가 "전세 계약을 하겠다"고 하자, 집주인으로부터 받았다고 한 문서다.
이 문서는 지난 18일부터 온종일 화제를 모았다. 특약사항의 내용이 얼핏 봐도 '이건 너무 심한데' 싶었기 때문이다. △못 박으면 1개당 50만원 △반려동물 금지 위반 시 3000만원 △퇴거 시 6개월 전부터 집을 보여줘야 하며, 거부 시에는 회당 500만원을 보상한다는 조항 등이었다.
집주인은 이 모든 특약을 지킬 수 있다면 A씨와 전세 계약을 맺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우리 법은 계약 당사자가 동의만 하면, 원칙적으로 이런 특약사항의 법적 효력을 인정한다. 자칫 잘못 사인했다간, '큰일 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런 조항들이 실제 효력이 있을지 변호사들에게 자문했다.
변호사들은 "전체적으로 해당 특약사항은 무효가 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A씨가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부당함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근거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있다. 이 법은 민법의 특별법으로 다양한 조항에서 A씨와 같은 임차인을 보호하고 있는데, 특히 제10조에서 아래 두 가지를 충족하는 특약은 '무효'로 본다. ❶임대차보호법에 위반된 약정이며, ❷그 내용이 임차인에게 불리하면 "효력이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해당 특약사항 대부분은 위약금과 관련된 내용으로 A씨에게 불리한 건 맞는다(❷). 남은 관건은 '임대차보호법 위반이냐'는 것인데, 변호사들은 "명백하게 어긴 게 우선 하나 있고, 어겼을 가능성이 있는 조항도 많다"고 분석했다.

①당연히 무효
먼저, A씨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은 "확실한 무효"라고 변호사들은 분석했다.
법무법인 열음의 김정숙 변호사는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차보호법상 보호되는 권리"라며 "이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은 당연히 무효"라고 밝혔다. 법으로 보장되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특약으로 제한하는 건 확실한 임대차보호법 제6조의3(계약갱신 요구 등) 위반(❶)이라는 취지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해당 권리는 당사자가 특약으로 달리 정한다고 하더라도, 무력화시킬 수 없는 것"이라며 의견을 같이했고, 법무법인 승운의 정석원 변호사 역시 "A씨가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무효로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신효의 오세정 변호사도 같은 이유에서 "무효로 보인다"고 했다.
②무효 가능성 있음
무효 가능성이 있는 건 "위약금을 과도하게 규정한 내용의 대부분"이라고 변호사들은 말했다.
마이법률사무소의 이서영 변호사는 "못을 박거나 벽걸이 TV를 설치했다는 등 경미한 손상을 이유로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난 위약금을 규정한 것은 무효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로 "실질적으로 임대차보호법을 어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보증금 인상액(최대 기존의 5%)을 제한하고 있는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탈법으로 인정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세 보증금, 월세액 등을 올릴 수 없으므로 특약을 통해 우회해 악용하는 것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는 의미였다.
1년에 30만원의 보일러 감가상각비를 부담하게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했다. "집의 유지⋅보수 의무가 있는 임대인(집주인)이 해당 의무를 부당하게 임차인(A씨)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명목상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결국 실질적인 임대차보호법 제7조(차임 등의 증감청구권) 위반(❶)의 소지가 있다는 분석이었다.
다만 정석원 변호사는 "사적자치(私的自治⋅개인 간의 법률관계는 개인 각자에게 맡긴다는 원칙)의 원칙에 따라 무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며 "임대차보호법의 특정 법 조항을 (명시적으로) 위반한 것은 아니므로 당연히 효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③'이 정도'는⋯ 인정
변호사들이 '이 정도'는 "인정될 것"이라고 한 건 총 세 가지였다. ▲반려동물 기르는 것을 금지할 수 있고, ▲1년에 1회씩 집주인이 집을 점검할 수 있으며, ▲전세보증금을 매년 5% 정도씩 인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이서영 변호사는 "이 정도는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임대차보호법 위반도 아니고, 민법상 반사회질서 행위에 해당하는 수준도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인정되는 건 '금지' 등 그 자체다. 이를 어겼을 때 내야 하는 위약금이 해당 약관처럼 3000만원, 500만원 등 과다하다면 역시 "법원에서 감액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될 여지가 크다"고 이서영 변호사는 밝혔다.
오세정 변호사도 "사회통념상 손해배상액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감액을 요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석원 변호사 역시 "이 정도는 유효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전세보증금 매년 5% 인상'은 "무효가 되는 경우도 있다"며 "전세계약기간을 2년 이상으로 설정했을 때"라고 콕 집어 밝혔다. 이때는 1년에 5%씩 올린다고 해도, 2년을 기준으로 "10% 인상이 되기 때문"이라며 "결국 기존 계약의 5%를 초과하는 인상이므로 임대차보호법 제7조 위반(❶)"이라고 했다.
김정숙 변호사는 '한 가지'를 당부했다. 무효를 따지기 전에 애초에 "무리한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 기관의 판단을 통해 부당함을 바로잡는 데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