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 "명백한 친일파"⋯그가 친일인명사전에서 쏙 빠진 배경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배우 하영 증조부 안상호 "명백한 친일파"⋯그가 친일인명사전에서 쏙 빠진 배경

2026. 08. 14 09:21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글자 크기 설정

미리보기

더 이상 어렵지 않은 법을 위한 인터넷 신문 로톡뉴스를 만나보세요. 법 전문가들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를 생생히 전달합니다.

역사 작가 "고종 주치의 안상호, 친일파"

역사 작가가 짚어본 3가지 팩트

'매일신보' 1918년 12월 10일자 안상호 씨 가족이 일선동체의 모범사례로 소개된 모습. /연합뉴스

배우 하영의 증조부이자 고종을 치료했던 의사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됐다.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배우 하영이 자신의 증조부를 "고종을 치료했던 의사"로 소개한 뒤, 온라인상에서 친일파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결국 해당 배우는 자필 사과문까지 올렸다. 하지만 정부나 민간단체가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는 안상호의 이름이 없다. 명단에 없으니 억울한 마녀사냥일까.


1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한 박광일 역사 작가는 "안상호는 친일파가 맞다"며 명단 누락 배경과 그의 실제 행적을 분석했다.


한국인 최초 일본 의사, 고종의 전속 주치의였나


안상호는 1902년 일본 자혜병원 의학교에 입학해 한국인 최초로 일본에서 활동한 의사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을 방문한 의친왕을 치료한 인연으로 대한제국 황실과 연을 맺었다.


이후 일본인 여성(가와구치 이소코)과 결혼했으며, 1907년 국내 최초로 종로에 서양식 진료소를 개업했다.


고종의 전속 주치의인 '전의(왕실 전속 의사)'였다는 설도 있지만, 학계에서는 필요할 때만 궁궐에 들어가 진료하는 '촉탁의(계약직 외부 의사)'로 파악하고 있다.


고종 독살설의 배후인가, 단순한 친일파인가


일각에서는 그가 고종을 독살했다는 의혹도 제기하지만, 박광일 작가는 "역사적으로 희박하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일본은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정략결혼(1919년 1월 25일)을 앞두고 '내선일체(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일제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던 시기였으므로, 혼주인 고종을 그 직전(1월 21일)에 독살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살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그의 친일 행적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안상호는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본격적인 친일 행보를 보였다. 주요 친일파들처럼 자녀를 일본인 전용 학교에 보냈고, 1916년에는 '대정실업친목회(한국인을 일본 통치에 순응하도록 유도한 대표적 친일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특히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의 인터뷰는 그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시 안상호는 직접 "조선 옷은 입지 않는다", "집에서는 일본어만 쓰게 한다"고 발언하며 자신을 '내선동화(조선인을 일본인화 하는 것)'의 성공 사례로 내세웠다.


왜 '친일인명사전'에는 이름이 빠졌을까


행적이 이토록 뚜렷한데 왜 국가나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을까.


해당 사전은 중요 친일파 위주로 편찬되었기 때문이다. 박광일 작가는 "등재 근거가 구체적인 친일 행위가 있어야 하고, 조직의 간부여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상호는 친일 단체의 평의원(일반 회원) 수준이었고, 독립운동가를 직접 고발하는 등의 중범죄보다는 총독부에 아첨하며 일상적인 친일을 주도했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박 작가는 "명단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해서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과 병렬로 놓고 봐야"


법적 처벌이나 재산 환수 대상이 되는 중요 친일파 명단에 없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그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임은 남는다.


박광일 작가는 "당시 독립운동을 한 학생들은 퇴학을 당해 제대로 된 직장을 얻지 못했고, 그 후손들 역시 사회적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분들의 처지를 병렬 선상에 놓고 생각해보면 지금 안상호와 관련된 논쟁이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사실을 팩트체크하는 것을 넘어, 현재 우리 사회가 역사적 책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다.

나만 모르는 일상 법률 상식, 매일 아침 배달해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