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시멘트 뒤집어썼는데…안전 책임자는 바다 건너 휴가 중이었다
"펑!" 시멘트 뒤집어썼는데…안전 책임자는 바다 건너 휴가 중이었다
마포 청년주택 공사 현장 압송관 파열 사고
원청의 '실질적 안전' 방치 논란…법원의 잣대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온몸이 시멘트 범벅이 됐지만, 현장 안전 책임자는 해외 휴가 중이었다.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청년주택 건설 현장. 시멘트를 쏘아 올리는 펌프카의 압송관이 터지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 노동자 A씨는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맞았다면 사망했을 사고"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사고의 충격보다 더 황당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텅 빈 안전관리실, 책임자는 "해외 휴가 중"
사고 직후 동료들이 부랴부랴 안전관리자를 찾았지만, 그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원청 관계자에게 돌아온 답변은 기가 막혔다.
"지금 휴가 중입니다. 해외에 계셔서 연락도 어렵습니다." 안전의 최후 보루가 사라진 현장. A씨는 "결과적으로 사고가 났다는 건 안전 조치가 없었다는 증거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그는 자신을 위험에 방치한 원청과 펌프카 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휴가'는 죄가 아니지만…'안전 공백'이 핵심
법률 전문가들은 '휴가' 자체가 위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핵심은 '안전 공백'을 막기 위한 조치가 있었는지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휴가 시 업무를 대행할 대체 인력을 지정했거나, 위험 작업에 대한 특별 관리 지침을 마련해뒀다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다"며 "안전관리자의 부재가 곧 안전 시스템의 부재로 이어졌는지가 처벌의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법원 "서류상 안전 아닌, 실질적 조치 따져 물을 것"
원청 측은 "타설 전 통상적인 안전 체결 과정을 확인했다"며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서류상으로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법원의 시선은 서류 너머를 향한다.
대법원은 이미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에 이르러야 한다"고 명확히 선을 그은 바 있다(대법원 2020도3996 판결). 이는 법원이 '안전 점검표에 체크했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위험을 막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따져 묻는다는 의미다.
특히 여러 업체가 뒤섞여 일하는 건설 현장에서 원청은 하청업체 직원의 안전까지 돌봐야 할 막중한 종합 책임자다.
산재는 기본, '안전 방치' 입증되면 민사 책임까지
일단 A씨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치료비(요양급여)와 일을 못 한 기간의 임금(휴업급여)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약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회사가 안전조치 의무를 심각하게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면 A씨는 산재 보상과 별개로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사용자는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대구지방법원 2019. 8. 23. 선고 2017가단114655 판결)고 판시한다.
이번 사고는 한 노동자의 찢어진 입술을 넘어, 대한민국 건설 현장의 '실질적 안전'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