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 늦어지는데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해도 아무도 짜증 내지 않았던 그 날, 그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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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늦어지는데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해도 아무도 짜증 내지 않았던 그 날, 그 법정

2021. 02. 17 11:18 작성
박선우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w.park@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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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선희 변호사가 꼽은 최고의 판사⋯대전지법 천안지원 권순남 부장판사

"충분히 진술해도 된다" 시간이 쫓기듯 진행되는 재판 속에서도 피고인 방어권 신경 써

"필요하면 직접 설명해라" 번거로운 일에도 시간 내주며 변호인의 변론권도 보장

재판의 진행이 더뎠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변호사 입장에서 조바심이 났다. 준비해 온 걸 다 보여주지 못할까 걱정돼서였다. 이런 다급한 마음으로 시작한 재판이었지만 여유롭게 진행됐다. 한 판사 덕분이었다./연합뉴스⋅그래픽=조소혜 디자이너

지난해 말, 대전지법 천안지원의 한 재판정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재판 순서를 기다리는 피고인과 변호사들이었다. 이들이 입은 두꺼운 겨울 외투 때문에 재판정은 더욱 비좁았다.


추선희 변호사(38⋅법무법인 세창)도 그 틈새에 앉아 있었다. 이날은 의뢰인의 증인신문이 있는 날이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의뢰인은 일자리를 찾다가 일명 '나쁜 형'들을 만나 보이스피싱에 연루됐다. 추 변호사는 의뢰인의 일부 무죄를 다투기 위한 증거자료를 단단히 챙겨왔다.


하지만 앞선 재판의 진행이 더뎠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추 변호사 입장에서는 조바심도 났다. '준비해온 증거를 재판부에 보여주는 대신 간단하게 말로 설명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추 변호사 사건번호가 호명됐다. 다급한 마음으로 시작한 재판이었지만, 여유롭게 진행됐다. 권순남 부장판사 덕분이었다.


"증거 확인했나요?" 피고인 방어권 보장 위한 질문 다수 던졌던 그 판사

"피고인, 제출된 증거 확인했나요?"

"피고인, 변호인과 충분히 상의 된 내용인가요?"

"피고인, 필요하면 변호인과 얘기할 시간 줄게요. 하시겠어요?"


권순남 부장판사는 다른 피고인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해줬다. 피고인이 법정에 제출된 증거에 대해 미리 알고 있는지, 변호사와 특정 사안을 충분히 논의했는지 등 피고인의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폈다.


이런 모습은 다른 재판부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특히 시간에 쫓기는 경우엔 사실관계 인정 여부만 간단하게 검토한 뒤, 최후 변론으로 직행한다. 검찰 측이 제시한 증거에 대해 하나하나 검토하는 일은 영화 속 법정에서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권 부장판사는 영화 속 이야기를 실제 법정에서 현실화시켰다고 추 변호사는 기억했다.


복잡한 재판정 분위기에서도 피고인에게 일일이 확인을 하고 넘어갔다. 피고인의 이야기를 최대한 경청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은 충분히 해보라"며 기다려주기도 했다.


재판 일정 늦어지는데도 "필요하면 영사기로 증거 보여줘라"

재판정에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뒷 순번 피고인⋅변호인들이 가득했지만, 권 부장판사는 여유를 가지고 재판을 이어갔다. 추 변호사가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 말로만 설명하고 넘어가야 하나 고민했던 부분까지 영사기 등을 사용해 직접 보며 진행하라고 배려하기도 했다. 이에 추 변호사는 의뢰인의 일부 무죄를 뒷받침할 사진 증거를 화면에 띄우고 무죄 주장을 펼쳤다.


보통 다른 재판부는 이런 경우에 다르게 나왔다. 추 변호사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랬다. 이미 증거로 제출되어 있는데 꼭 봐야 하냐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고 했다.


추 변호사는 "(사건과 관련해) 의뢰인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억울한 부분도 있었다"며 "당시 재판부가 그런 부분을 충분히 변론할 수 있게 배려해줘서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존경스럽다고 생각한 판사님이다"고 덧붙였다.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관심과 배려를 줬던 권 부장판사는 이날 재판에 이 말을 가장 많이 했다고 했다.


"재판이 늦어지고 있는데 양해 부탁드린다."


이 말에 짜증을 보인 피고인과 변호인은 아무도 없었다고 추 변호사는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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