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이다? 아니다? 가이드라인대로 '청와대 하명수사' 따져봤다
직권남용이다? 아니다? 가이드라인대로 '청와대 하명수사' 따져봤다
정국의 핵심 된 '청와대 하명수사 및 선거 개입 의혹',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나
대검찰청이 만든 '직권남용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 상황을 분석해봤다

[조문 마친 윤석열 총장]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빈소를 조문한 뒤 굳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시장 선거에 경찰이 개입하도록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이른바 '청와대 하명(下命)수사' 논란이 정국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지난 울산시장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각별한 송철호 변호사가 현직이었던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꺾고 당선됐는데, 이 결과가 '하명수사' 때문이라는 논란이다.
청와대와 울산경찰청은 '청와대가 보낸 첩보에서 수사가 시작됐다'는 점을 포함해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켰으니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검찰은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법원에 넘어간다면 과연 유죄가 나올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를 예측할 수 있는 문건이 하나 있다. 대검찰청이 만든 '직권남용죄 해설서'다. 직권남용죄를 어떤 경우 적용할 수 있는지를 사례별로 정리해 둔 일종의 내부 가이드라인이다.
이 문건을 기반으로 이번 사건에서 쟁점이 되는 세 가지 상황을 예측해봤다.
검찰의 기소 "확실" ⋅ 법원 판단 "유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수사한 울산경찰은 청와대로부터 첩보를 받아 수사에 들어갔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경찰은 청와대에 9번이나 수사상황을 보고했다. 압수수색 20분 전에는 "수색에 들어간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보가 올라갔다.
검찰은 울산경찰청의 수사보고가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본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지난 2011년 검찰이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긴 '해군본부 법무실장' 사건이다.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해군본부 법무실장이 국방부 검찰단으로부터 수사 상황을 보고받아 문제가 됐다. 법무실장은 검찰단에 해군 소속 인원에 대한 사법처리와 관련한 수사기밀사항을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검찰이 이를 직권남용으로 기소하자 해군본부는 "법무실장은 해당 내용을 보고받을 권한이 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법무실장에 외형적으로 그런 권한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실질은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라고 판시했다. 그 근거로 "수사기밀이 유출될 경우 수사 기능에 현저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울산경찰청의 수사 상황을 보고받은 청와대, 직권남용죄에 해당할까? 가이드라인의 사례 중 하나와 비교해봤다. /그래픽 편집=엄보운 기자
이번 사건에 적용할 경우 청와대가 '해군본부'가 되고, 국방부 검찰단이 '울산경찰청'이 된다.
외형적으로 청와대는 울산경찰청으로부터 수사 상황을 보고받을 권한이 있다. 하지만 보고 내용 중에 수사기밀사항이 있었다면 '해군본부 법무실장' 사건과 동일하게 "그 실질은 일반적 직무권한 범위를 넘어섰다"는 법원 판단이 나올 여지가 있다. 기밀이 유출되면 수사에 장애가 초래되는 것은 똑같기 때문이다.
검찰의 기소 "유력" ⋅ 법원 판단 "사안에 따라 다름"
지난해 1월, 울산 지역 건설업자 김모씨는 울산경찰청에 고발장을 하나 제출했다.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삼형제를 수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김씨는 최근 "경찰 부탁을 받고 이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폭로했다. 경찰이 요구해서 고발장을 접수했고, 그 고발장을 토대로 경찰이 김 시장 측을 수사했다는 것이었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은 비슷한 사건을 심리했다. 서울의 한 경찰관이 "우리가 수사 중인 기업인 A씨에 대해 고소장 써서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고소장이 실제 제출되자 경찰은 A씨를 소환조사해 피의자신문까지 했다.
검찰은 "혐의가 명백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받아 이를 바탕으로 A씨를 소환조사한 것은 직권남용"이라고 보아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판단과 달리 A씨에게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근거에서다.

울산의 한 건설업자에게 고소장을 제출하도록 요구한 경찰청, 직권남용죄에 해당할까? 가이드라인의 사례 중 하나와 비교해봤다. /그래픽 편집=엄보운 기자
이를 이번 사건에 적용해보면, 울산경찰은 고소장을 요구한 '경찰관'이고, 그 고소장을 토대로 수사를 받은 A씨는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형제들', 고소장을 제출한 사람은 '건설업자 김씨'가 된다.
대법원이 2014년 사건을 무죄로 선고한 것처럼 이번 사건도 무죄가 될 수 있다. 관건은 경찰이 돌입한 수사에 얼마만큼의 범죄 혐의가 있었느냐다. 혐의가 상당했다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혐의가 미비하다면 유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울산경찰청은 건설업자로부터 받은 고소장을 토대로 김기현 전 시장 사건을 수사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보냈다. "범죄 혐의가 있으니 기소해달라"는 절차였다. 하지만 검찰은 "기소할 사건이 아니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리했다. 당시 검찰은 이례적으로 "경찰 수사 내용은 사실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발표했다.
검찰 판단이 맞다면 울산경찰이 손을 댄 혐의는 미비한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의 직권남용 혐의는 유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검찰의 기소 "고심" ⋅ 법원 판단 "무죄 확률 커"
마지막으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은 지난 포항시장 선거를 앞두고 행정관을 포항에 보내 정보 수집활동을 하게 했다. 야권에서는 "이것도 직권남용"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이 사안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대법원은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 지난 2012년 무죄를 선고했다.
2012년 사건에서 국방부 근무지원단장은 자기 관할 헌병대대에 해병대사령관 관련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검찰 포항지청에 내사를 요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은 이것이 직권을 남용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재판에 넘겼다.

행정관을 보내 울산시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요구한 청와대, 직권남용죄에 해당할까? 가이드라인의 사례 중 하나와 비교해봤다. /그래픽 편집=엄보운 기자
하지만 대법원은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려면 문제의 지시가 해당 공무원의 직무상 권한에 속해야 하는데, 권한 밖의 지시를 내린 것이므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직권이 있어야 남용이 있을 수 있는데, 애시당초 직권이 아니었다면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다만 청와대의 직무권한은 국방부 근무지원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졌을 때 검찰은 "청와대는 모든 사안에 대한 포괄적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고 법원에서 일부 받아들여졌다. 이 논리가 이번 사안에도 적용되면, 법원에서 유죄가 나올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