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고 엽기적"이라던 재판부, 가스라이팅 무속인 형량 깎아줬다
"잔혹하고 엽기적"이라던 재판부, 가스라이팅 무속인 형량 깎아줬다
피해자 측 "엄벌 탄원"
가해자 공탁금도 수령 거부

가스라이팅을 통해 피해자를 지배하며 범죄를 저지른 2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징역 6년으로 감형받았다. /셔터스톡
"네가 멍청하니 몸이라도 거덜 나야 한다."
그녀는 피해자에게 칼을 쥐여주며 스스로 허벅지를 긋게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네 엄마에게도 똑같이 하겠다"는 협박이 뒤따랐다. 음식물 쓰레기와 반려견의 배설물을 억지로 먹게 하고, 뜨거운 제모 왁스를 얼굴과 허벅지에 붓기도 했다.
한 20대 무속인이 영적인 힘을 내세워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벌인 범죄의 전말이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재판장 장성훈)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A씨에게 1심 징역 7년보다 가벼운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사회초년생이고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신점으로 시작된 덫, 가스라이팅 지옥으로
모든 비극은 2021년 SNS에서 시작됐다. 여성 A씨(23)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피해 남성 B씨에게 오컬트 등 공통 관심사로 접근해 신점을 봐주며 신뢰를 쌓았다. A씨는 스스로를 "영적인 존재와 대화하는 특별한 사람", "생각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존재"라고 소개했다.
A씨는 B씨와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해주겠다며 117만 원을 받아냈고, 마침 B씨의 턱 통증 등 가벼운 증상이 호전되자 이를 자신의 영적 능력 덕분인 것처럼 행세했다.
B씨는 A씨를 전적으로 믿게 됐다. 이 믿음은 곧 족쇄가 됐다. A씨는 "나와 함께 자취하지 않으면 집에 우환이 생길 것"이라며 동거를 강요했고, 2022년 11월부터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됐다.
A씨는 동거가 시작되자 본색을 드러냈다. A씨는 마치 다른 영혼에 빙의된 것처럼 행세하며 B씨를 폭행하고, 시체 사진을 보여주며 "말을 안 들으면 너희 부모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B씨를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완전히 고립시킨 뒤, A씨는 상상을 초월하는 학대를 이어갔다.
A씨에게 모든 물건은 폭행 도구였다. A씨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손에 잡히는 아이폰과 노트북, 심지어 빗자루가 부러질 때까지 피해자를 무차별 폭행했다.
폭행은 가혹 행위로 이어졌다. A씨는 피해자에게 음식물 쓰레기와 반려견의 배설물을 먹도록 강요했고, 서울숲역 대합실에서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하는 등 모멸감을 주었다.
한 걸음마다 스쿼트를 하며 1.4km를 걷게 하거나, 목욕탕 냉탕에 머리를 담그게 하고 무릎으로 등을 눌러 나오지 못하게 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학대는 뜨거운 제모 왁스를 얼굴과 허벅지에 부어 화상을 입히는 잔혹한 상해로까지 번졌다.
A씨는 "공물을 바치지 않으면 엄마가 살해당할 것"이라고 협박해 34차례에 걸쳐 약 326만 원을 갈취했고, 4,800만 원을 추가로 뜯어내려 대출을 받게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법원이 1년 덜어준 이유
1심 재판부는 이처럼 잔혹한 범죄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저울은 감형 쪽으로 기울었다.
재판부는 A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점 ▲사회초년생으로 볼 수 있는 젊은 나이라는 점 ▲불우한 성장 과정을 겪은 점 등을 유리한 사정으로 꼽았다
또한, 수사 단계와 달리 법정에서는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 점, A씨의 어머니가 피해자 어머니에게 사죄하고 아버지가 선처를 탄원하는 등 가족들이 노력하는 점도 감형 이유로 고려됐다.
피해자는 A씨가 공탁한 2,000만 원 수령마저 거부하며 엄벌을 탄원했다.
[참고]
서울남부지방법원 제2-3 형사부 2024노2233 판결문 (2025. 6. 24. 선고)
서울남부지방법원 2024고단2577 판결문 (2024. 11. 29.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