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생명 앗아간 은마아파트 화재, 30년 '안전 공백'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10대 생명 앗아간 은마아파트 화재, 30년 '안전 공백'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스프링클러 의무화 이전 건축물 소방 사각지대
국가배상·민사 책임 쟁점 분석

24일 오전 6시 18분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불이 나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이날 화재가 난 은마아파트의 해당 세대에서 경찰과 소방의 1차 현장 합동 감식이 진행되는 모습. /연합뉴스
오늘(24일) 새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화재로 10대 여성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스프링클러 의무화 이전 지어진 노후 아파트의 소방 안전 사각지대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가를 상대로 한 책임 규명은 험로가 예상된다.
재건축 기다리다 멈춰버린 소방 시계
이날 오전 6시 18분께 전체 14층 중 8층에서 발생한 불로 10대 여성 1명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집에 있던 40대 어머니와 10대 여동생, 위층 주민 1명도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출동한 소방 당국에 의해 불은 1시간여 만에 꺼졌지만, 초기 진압의 핵심인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애초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은마아파트가 준공된 것은 1979년이다.
현행법상 14층인 은마아파트 규모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것은 2005년부터다. 1979년에 지어진 은마아파트에는 이 법이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스프링클러 미설치가 합법인 셈이다.
여기에 '재건축'이라는 특수성이 비극을 키웠다. 1990년대 말부터 재건축을 추진해 온 은마아파트는 2030년에야 새 단지로 거듭날 예정이다. 건물은 노후화되어 화재 위험이 커지는데, 곧 철거될 건물이라는 인식 탓에 30년 이상 소방 안전 공백기가 방치된 것이다.
스프링클러 면제됐다고 면죄부 아냐…관리주체 민사 책임은
그렇다면 법이 스프링클러 설치를 면제해 주었으니, 화재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피해자의 몫일까. 법조계의 시각은 다르다.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주체는 스프링클러가 없더라도 아파트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주의의무를 진다. 공동주택관리법령에 따라 이들은 화재 예방을 위한 자체 소방 점검, 소화기 적정 배치, 피난 경로 확보 등의 선관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만약 이를 게을리하여 피해가 커졌다면,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이나 채무불이행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재건축을 추진하는 조합 역시 기존 건물의 안전 관리 의무를 소홀히 했다면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국가배상 청구? 대법원 판례 비추어 보면 '가시밭길'
가장 큰 쟁점은 국가나 지자체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 청구 가능성이다. 소방공무원이 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아 참사가 발생했으니 국가가 책임지라는 논리다.
국가배상법 제2조가 성립하려면 소방공무원의 법령 위반과 피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입증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무상 인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행법상 소방공무원에게 법 개정 이전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강제할 권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 역시 과거 청주 우암상가 붕괴 사건(97다36613)에서 소방공무원의 국가배상책임을 엄격하게 제한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소방공무원들의 숫자에 비하여 담당하는 소방 점검 대상물 수량이 지나치게 많아 업무가 과중하였고, 실제로 스프링클러를 작동시켜 물을 뿌리면서 작동시험을 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던 점"을 들어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했다.
입법부가 소급 적용 법안을 만들지 않은 '입법 부작위'를 탓하기도 쉽지 않다. 헌법재판소는 입법 부작위에 대한 위헌 및 손해배상 책임을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만 좁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화재 참사 유족과 피해자들이 현실적으로 법적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나 재건축조합을 상대로 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에 집중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아울러 과거 소방 기준이 적용된 노후 건축물에 대한 스프링클러 설치 국가 지원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