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인권 문제 터질 때마다 소환되는 사건…여친 편지 조롱한 선임 향해 방아쇠 당긴 서울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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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인권 문제 터질 때마다 소환되는 사건…여친 편지 조롱한 선임 향해 방아쇠 당긴 서울대생

2026. 02. 03 13:45 작성
손수형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sh.son@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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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천문학과 출신 엘리트 병사의 비극적 선택

선임병들의 연애편지 검열과 희롱이 부른 총기 난사

1962년 군대 내 가혹행위 끝에 발생한 총격 사건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군 인권 문제의 출발점으로 거론된다. /셔터스톡

1962년 7월 8일, 육군 제15사단 연병장. M1 소총의 총성이 울려 퍼지기 직전, 최영오 일병(당시 25세)은 절규했다. 서울대 천문학과 4학년 재학 중 입대했던 전도유망한 청년은, 왜 전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겨야만 했을까.


단순한 하극상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비극적인 이 사건은, 60년이 지난 지금도 군 인권 문제의 시발점으로 회자된다. '학보병(학적보유병)'이라는 특수 신분과 학력 차별, 그리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철저히 짓밟았던 병영 악습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선임들의 희롱 도구가 된 연인들의 언어


사건의 발단은 편지였다. 최 일병은 입대 전부터 교제하던 여자친구 장모 양과 애틋한 편지를 주고받으며 고된 군 생활을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소중한 연서는 선임병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같은 내무반의 정방신 병장과 고한규 상병 등은 최 일병에게 온 편지를 무단으로 뜯어봤다. 그 횟수만 무려 12차례. 단순히 읽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연인들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사랑 고백이나 사적인 내용을 공개적으로 낭독하며 낄낄거렸다.


선임병들은 편지 내용을 큰 소리로 읽으며 최 일병을 희롱했다. 최 일병은 중대장에게 "사신 검열을 막아달라"고 호소했지만, 이는 오히려 선임병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긁어 부스럼'이 됐다.


당시 중졸 학력이었던 선임병들과 명문대생 최 일병 사이에는 학력 차이와 복무 기간이 짧은 '학보병' 제도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미묘한 갈등 기류가 흘렀다 . 이런 상황에서 최 일병이 중대장에게 고충을 토로하자, 선임병들의 괴롭힘은 더욱 노골화되었다.


"엎드려 뻗쳐"... 참을 수 없는 모욕에 폭발한 분노


사건 당일, 저녁 점호 시간. 선임병들은 최 일병을 따로 불러냈다. "대졸이면 다냐?", "남자가 치사하게 고자질이나 하고."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구타가 이어졌다. 바닥에 엎드리라는 지시를 거부하자 주먹이 날아들었다.


모멸감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었다. 최 일병은 내무반에 있던 M1 소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위문공연 관람을 위해 연병장에 모여 있던 정 병장과 고 상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정 병장에게 4발, 고 상병에게 3발. 두 사람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국립묘지에 묻힌 피해자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가해자


이 총격으로 사망한 정 병장과 고 상병은 사건 직후 '순직'으로 처리되지는 않았으나, 훗날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두 사람 모두 일계급 특진 추서되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 다만 실제 안장 시기는 사망 시점과 상당한 차이가 있어, 정 병장은 1995년, 고 상병은 사건 발생 50년이 지난 2012년에야 현충원에 묻혔다.


반면 가해자가 된 최 일병에게는 군형법상 '상관살해죄'가 적용됐다. 서울대 동문들과 각계각층에서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 동기가 가혹행위에 있다"며 구명 운동을 벌였으나,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했다. 1963년 3월 18일, 최 일병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형 집행 직전, 최 일병은 "가슴에 붙은 죄수 번호를 떼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들의 사형 소식을 전보로 접한 최 일병의 어머니(당시 60세)는 그날 밤,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참극은 한국 군대에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병사 간 사신(편지) 검열 관행은 이 사건을 계기로 폐지되었다. 또한, 학력 차별과 병사 간 갈등의 원인 중 하나였던 학보병 제도 역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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