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57)] 아내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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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57)] 아내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무덤

2022. 10. 06 12:26 작성
정형근 변호사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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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은 인도의 무굴제국 시대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로 꼽히고 있다. /셔터스톡

인도여행 둘째 날,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주의 서부에 있는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과 아그라성을 가기로 하였다. 아그라는 델리에서 남쪽으로 204km 떨어진 곳에 있는 도시였다. 그곳은 델리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다고 했다. 무굴제국이 1558년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겨 1564년부터 1574년까지 10년 동안 국고를 탕진해 가면서 아그라성을 건축하였으며, 샤 자한 왕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아침 식사는 휴게소에서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왔다. 긴 여행 준비를 서둘러 마치고 숙소 앞으로 나왔더니, 예약해 두었던 차량이 도착하지 않았다. 아침 등교시간이라서 붉은 스타킹에 붉은 리본을 머리에 달고, 코에는 코걸이로 장식한 어린 소녀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1시간이 지난 후에야 차량이 도착하였다. 출발이 예정보다 늦어 차 안에서 망고 등의 과일로 요기를 했다. 차량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가한 농촌지역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산이 보이지 않은 넓고 푸른 들녘이 계속되었다. 도로 중앙에 앉아 있는 소떼들의 모습은 농촌이나 도시나 같은 풍경이었다.


톨게이트와 같은 곳에 도착하자, 운전기사는 운행 서류를 들고 어느 사무실로 갔다. 차 안에서 기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차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커다란 곰과 원숭이를 데리고 오기도 하였다. 어떤 할아버지는 자동차 옆에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 검은 항아리를 놓았다. 그리고 땅바닥에 앉더니 항아리 뚜껑을 열고 주머니에서 작은 피리를 꺼내는 것이었다. 이윽고 피리 소리가 나니까, 항아리 안에서 코브라와 같은 뱀이 고개를 쳐들고 나왔다. 모두들 관광객의 주의를 끌고자 애쓰고 있었다. 곰이나 원숭이의 모습이 신기하다고 사진을 찍으면 돈을 요구한다고 하였다. 차창 밖으로 여러 잡상인들도 몰려들었다. 돈을 달라고 손을 들이밀기도 하였다. 마치 차 안에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어서 빨리 기사가 돌아와 출발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오전 9시 40분경에 어느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휴게소래야 상점 하나와 식당 한 군데가 있을 뿐이었다. 공중화장실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짜이’라고 부르는 차를 시켰다. 밀크를 섞은 커피 색깔의 차였는데, 설탕이 아닌 소금을 넣어 짭짤하였다. 냄새도 생소하고 소금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주변 식탁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여행은 새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맛을 음미하였다. 그런 적극적인 마음가짐 때문인지 낯선 환경에서도 먹고 마시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즐길 수 있었다.


출발지 델리에서 4시간을 달린 끝에 오전 12시경 타지마할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 매표소가 있는 출입구를 찾아가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관청의 허가를 받았다는 증표처럼 사진이 붙여진 신분증을 내보이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돈을 받고 안내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불과 몇 걸음 앞에 있는 매표소를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손에 판매할 물건을 들고 따라오며 연신 몇 루피라고 외쳐댔다. 빈손을 벌리며 구걸하는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 후 출입문으로 갔더니, 총을 든 경비원들이 입장객들의 소지품과 몸을 수색하였다. 뜨거운 햇살로 검게 그을린 얼굴에 약간 미소 띤 하얀 이가 돋보였다. 가방을 경비원에게 들이밀었더니 꼼꼼히 손으로 만져 보면서 모든 지퍼도 열어보았다.


타지마할은 인도의 무굴제국 시대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입구에서 안으로 발길을 옮기니 100여 미터도 멀리에 있는 흰색 건물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 앞 연못에는 비취색 물속에 흰 대리석 타지마할의 모습이 비치고 있있다. 물속에 비친 타지마할 모습도 아름다웠다.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역사상 무굴제국은 몽고 후손들이 건국한 우즈베크 공화국에서 출생하였던 바부르에 의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47세에 죽은 바부르를 이어 그의 아들 후마윤이 23세에 아그라에서 왕위에 올랐다. 후마윤이 델리의 어느 도서관 계단에서 발을 실족하여 사망하자, 그의 아들 악바르가 13세에 등극하였다. 악바르는 뱅갈지역, 카슈미르, 오릿사 등지의 북인도를 정복함으로 거대한 제국을 이뤘다. 악바르의 아들 자항기르는 아그라에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자항기르에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던 아들 샤 자한이 왕위에 올랐다. 이슬람 교도였던 그는 건축에 관심이 많아 타지마할과 델리 성과 아그라 성을 건축하였다.


그는 왕위에 오르기 6년 전에 뭄타즈 마할과 결혼하였다. 샤 자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뭄타즈 마할은 1631년 결혼 후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39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위하여 샤 자한은 야무나 강변에 흰 대리석으로 묘를 만들었다. 뭄타즈 마할이 세상을 떠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를 만들어 달라고 유언하였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렇게 시작한 건축역사가 22년 만에 완공되어 오늘의 타지마할 모습이 드러났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로 꼽히고 있다. 자동차 매연으로 인하여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을 우려하여 타지마할 주변에는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들의 통행도 제한하고 있다고 하였다.


매표소 입구에서도 검문을 당하였는데, 타지마할이 바라다보이는 출입구에서 다시 한번 몸수색이 이뤄졌다. 손가방의 지퍼도 열어서 소지품까지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경비원의 검문을 받고 몇 발짝 앞으로 나갔더니, 타지마할이 눈앞에 바로 다가와 있었다. 타지마할 건물에 오를 때는 입구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관광객들이 벗어둔 신발들이 수백 켤레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신발 보자기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벗어 관리인에게 맡기고 계단을 올랐다. 바닥도 흰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다. 강렬한 햇살로 양말을 신었음에도 바닥이 뜨거웠다. 현지인들은 맨발로 다니고 있었다. 묘 입구를 들어가니 지하로 향하는 듯한 통로가 있고, 그 입구를 철문으로 폐쇄해 놓고 있었다. 그 지하 통로 안에 뭄타즈 마할의 관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곳을 지나 더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거대한 관을 안치해 놓은 듯한 모습과 그 주위를 검은 돌판에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쓰여 있었다. 코란을 새겨 놓은 것이라 했다. 그런데 안내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건물의 아름다움을 설명해 주었다. 벽면에 있는 붉은 보석 같은 돌에 조그만 손전등을 갖다 대니, 전깃불이 켜진 것처럼 돌 전체가 붉은빛을 띠었다. 그는 쉬지 않고 건물의 정교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런 설명을 해주고 돈을 받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여행객들에게 조그마한 호의라도 베풀어서 그 대가를 얻으려는 모습이었다.

타지마할 뒤쪽으로 흐르는 야무나강은 물이 말라 있었다. 밖으로 드러난 강바닥에서 검은 소떼들이 모여 있었다. 분명 칭찬받을 아름다운 건축물이지만, 마냥 탄성만 지를 수 없었다. 한 여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하여 동원되었던 수많은 백성들의 고통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고, 그들의 땀방울이 지금도 건물 벽에서 흐르는 듯하였다. 국력을 탕진하다시피 공을 들여 완성된 묘를 바라본 샤 자한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후 2시경에 타지마할을 나왔다. 점심시간이 지난 때라 빨리 식당으로 가고 싶은데, 밖에 나와 보니 차량 기사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연락할 방법도 없어 마냥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여행은 항상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러는 사이에 몰려든 잡상인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들은 정말 끈질겼다. 얼마 후에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식당으로 갔다. 부석부석하게 날아갈 듯한 쌀로 볶은 밥, 닭고기 요리 등이 나왔다.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여행자에게 늦은 점심 맛이 없을 리 없다. 주변 식탁에 있는 현지인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낯설어 자꾸 눈길이 갔다.


식사 후 아그라 성으로 이동하였다. 델리까지 돌아가려면 서너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1시간 정도만 머물기로 하였다. 날씨가 무더워 걷기도 힘들었다. 성은 온통 황토색 건물이었다. 그 성은 아그라의 도시가 형성되고 변화되어 왔던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백성들이 보기에 그 성은 힘과 권력의 근원으로 보였을 것이다. 치열한 정치세력 간의 권력투쟁이 벌어졌던 장소이며, 그 성을 둘러싸고 많은 전쟁과 피를 흘린 역사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을 구석구석 돌면서 그 시대 사람들의 숨결을 느껴보았다. 지금은 기둥과 텅 빈 공간만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따스한 훈기가 감돌았을 것이고, 권위 있는 멋진 문과 호화로운 천으로 장식되었을 것이다. 옛 영광은 간데없고 황량한 공기가 성을 감싸고 있었다. 샤 자한 왕이 폐위되어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지냈다는 방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성벽에 올라 보니 그림처럼 타지마할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왔다. 날씨가 무더워 조금이라도 시원할 것 같은 그늘로 찾아들었다. 강한 햇살은 면했지만 후덥지근한 열기는 여전하였다.


오후 4시경 성에서 나와 델리로 출발하였다. 운전기사는 델리에 도착하기까지 시종 난폭 운전을 하여 마음을 졸이게 하였다. 그는 앞서 진행하는 차량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선행차량의 바로 후미까지 따라붙어 쌍라이트를 번쩍거렸다. 그러면 앞선 차는 옆 차선으로 비켜섰다. 거의 3시간 동안 그 같은 아슬아슬한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다. 사고 직전의 위험한 순간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수없이 비명을 지르곤 하였다. 너무 더워 중간에 멈춰서 물을 사기로 했다. 가게에서 식수를 구입하는 경우에는 병마개를 한번 뜯었는지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미 사용한 병에 물을 채워 판매하는 경우도 있고, 그 물이 식수에 적합한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건네받은 병마개를 살짝 돌려 보니 이미 사용한 물병이었다. 그래서 다른 것으로 달라고 하였더니 비로소 제대로 된 식수를 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서도 인도의 실상을 알 수 있었다. 길에서 텐트를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 큰 나무 밑에서 벌거벗고 누워있는 집 없는 사람들, 큰 도로에서 아무렇게나 용변 보는 모습, 땔감을 머리에 이고 가는 모습을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수억의 인구와 다양한 소득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는 택시, 인력거, 릭샤 등의 헤아릴 수 없는 운송 수단도 있다. 4시간을 달린 끝에 밤 9시 무렵 숙소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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