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소방관의 비극, '업무 관련성' 증명 못 하면 국가는 외면하나
이태원 참사 소방관의 비극, '업무 관련성' 증명 못 하면 국가는 외면하나
참사 현장 트라우마로 공무상 요양 신청했지만 '불승인'
유족은 '공무상 순직' 인정 위한 험난한 법적 싸움 예고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수많은 주검을 수습했던 소방관이 국가의 지원을 거부당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참혹한 기억과 싸우던 한 영웅의 외로운 죽음은, 보이지 않는 상처를 증명해야만 하는 국가 시스템의 차가운 현실을 드러냈다.
참사 현장서 시신 옮기던 그 손, 끝내 놓아버린 삶
고성소방서 소속 40대 A 소방장은 지난달 29일, 경남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2022년 10월 29일, 용산소방서 소속으로 이태원 참사 현장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의 손으로 수많은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했고, 유족들의 절규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그날 이후 A 소방장의 시간은 멈췄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참혹한 기억은 그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불안장애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내 상처를 증명하라"…'업무 관련성'의 벽 앞에 좌절된 영웅
A 소방장은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는 지난 2월, 국가에 도움을 요청하며 '공무상 요양(업무 중 발생한 질병·부상 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제도)'을 신청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인사혁신처가 내놓은 대답은 '불승인'이었다. 법리적 쟁점은 '상당인과관계(업무와 질병 사이의 직접적 연관성)' 입증 책임에 있었다. 현행법상 정신질환의 공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려면, 신청인 스스로가 참사 현장 경험과 자신의 질병 사이에 명확한 의학적·법률적 인과관계가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인사혁신처는 A 소방장이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인과관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그는 질병휴직과 휴가를 반복하며 홀로 고통을 견뎌야 했다.
죽음으로 증명해야 하는 '공무상 순직'…유족의 마지막 법정 투쟁
이제 남겨진 유족들이 그의 마지막 명예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유족 측은 A 소방장의 죽음이 명백한 '공무상 순직(공무 수행 중 사망)'이라며 관련 절차에 돌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과정 역시 험난한 법정 다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공무상 요양이 불승인된 기록은 순직 인정 심사 과정에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어, 유족은 더 치밀한 법리적 대응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복되는 비극, '보이지 않는 상처'를 외면하는 국가
불과 열흘 전에도 이태원 참사에 출동했던 또 다른 소방관이 우울증을 앓다 숨진 채 발견됐다. 잇따른 비극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는 "생존 피해자와 구조자들을 폭넓게 지원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난 현장의 영웅들이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증명하다 스러져 가는 비극을 막기 위해, 국가의 책임과 지원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