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33)]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원인
[정형근 교수 에세이 (33)] 법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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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숙 화재 사건의 피고인을 변론했던 정형근 교수. 이후 이 사건 손해배상 소송에서 여인숙 주인을 대리했는데 상대방이 문제를 삼았다. 변호사법에서는 '동일한 사건'은 변호사가 양쪽 당사자를 동시에 대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심야에 허름한 여인숙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그곳에서 장기 투숙해 왔던 여러 명이 사망하였다. 수사 결과 그 여인숙에서 몇 달 전부터 지내왔던 사람이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 중 한 사람이 퇴근 후에 동료들과 여인숙에서 소주를 마셨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소한 시비로 언성이 높아지고 급기야 주먹질까지 오가게 되었다. 몇 대 얻어맞은 사람이 급히 여인숙 밖으로 뛰쳐나갔다. 근처 주유소로 달려가서 휘발유를 사 왔다. 그는 동료들이 있는 방 안에 휘발유를 쏟아붓고 라이터를 켰다. 종일 노동으로 곤히 잠든 동료들이 사망하고, 그 여인숙에 그날 밤 우연히 투숙하였던 손님들도 큰 피해를 당했다.
법정에서는 대개 술과 돈과 성(性) 때문에 다투는 경우가 많다. 여인숙 방화살인 사건도 맨정신이었다면 발생하지 않을 참화였다. 물론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연히 눈만 마주쳐도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실제로 업소에서 무술 시범을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해 가던 청년들이 야간에 위험한 물건을 들고 싸웠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그들은 늦은 밤시간에 차를 타고 다른 업소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차량이 멈춰 직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옆 차로의 승용차 안에 있던 젊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 승용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눈을 마주쳤던 청년들이 건방진 놈들이라서 혼을 내주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무술 시범을 가던 청년들도 즉시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수십 년 전 원수를 만난 것처럼 무섭게 싸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로변에 있던 신문가판대를 집어 들어 던지기도 하고, 차 안에 가지고 다니던 야구방망이를 꺼내 휘두르기도 했다. 무술 시범을 하면서 생활하였던 청년들도 격렬한 싸움으로 상처를 입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대가는 컸다. 눈이 마주치면 사랑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성정이 불같은 청년들 사이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우려 들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싸움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검사는 "피고인들은 눈이 마주쳤나요?"라고 질문하는 것을 흔히 본다. 법정에서 처음 그런 질문을 들을 때는 설마 눈 마주쳤다고 주먹질하나 생각되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런 유형의 사건은 최근에도 빈발한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24일 상해 혐의로 입건된 20대를 구속했는데, 그는 오후 3시쯤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 1층 현관에서 70대 남성이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주먹과 발로 폭행하였다는 것이다.
법원에서 나에게 여인숙의 방화 살인 사건 피고인에 대한 국선변호인 선정 통지서를 보내왔다. 나는 공익활동 차원에서 국선 변호 사건을 맡아왔다. 피고인을 접견하려고 구치소로 찾아갔다. 구치소 입구에서 변호사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피의자 만나러 왔다고 하면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접견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면 교도관이 접견할 방은 지정해 준다. 복도를 중심으로 하여 양편에 조그만 공간의 방이 있다. 그리로 들어가면 검은색 책상 하나가 놓여 있고, 책상 위에는 재떨이도 놓여 있었다. 방문을 닫으면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된다. 피고인에게 변호인과 접견을 보장하기 위하여 대화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도록 접견실을 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먼저 그 방에 들어가 있으니, 곧 피고인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변호사님! 담배 한 대 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평소에 담배를 피지 않기 때문에 담배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러면 밖에 있는 교도관에게 한 대 얻어다 주세요!"라고 했다. "교도관에게 그런 부탁을 할 일은 아니다"라고 하면서 다음에 접견 올 때 한 대 가져오든지 말든지 하겠다고 달랬다. 그러면서 공소장을 꺼내놓고 범행 사실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범행 사실은 전부 시인하고 있고, 수사기관에서도 자백을 했던 터라 내가 묻는 말에 큰 관심이 없었다. 오직 담배 한 대 얻어 피울 기대가 무산된 것에 기분이 나쁜 얼굴이었다.
애연가라면 구속상태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것이 큰 고통일 것이다. 피고인의 아내가 찾아와서 "남편이 하루에 두 갑 씩 피우던 담배를 구속되어 못피우니 힘들다고 하니, 변호사님이 접견 가실 때 담배 좀 피우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접견실을 그렇게 차단된 방 형태로 만들어 놓고, 책상 위에 재떨이까지 준비해 놓았으니, 그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접견의 비밀은 완전히 보장되는 것이지만, 실제로 그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변호사가 자기 피고인에게 담배와 마약까지 전달하는 일이 발생했다. 변호사가 구치소 변호인 접견실에서 수용자를 접견하던 중에 구치소에서 부정 물품으로 정한 담배 1갑을 제공한 행위로 2000만원의 과태료 징계에 처해진 사건도 일어났다. 그 후에도 이런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다 보니 1인 접견실은 폐지되었다. 그 대신 통유리로 만든 접견실이 생겨났다. 교도관이 밖에서 접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알 수 없도록 하여 자유로운 접견을 보장하는 구조로 변경되었다.
이렇게 자유로운 접견이 처음부터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변호사가 지난 1991년 6월 14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 피의사건으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전신)에 의하여 하루 전에 구속되어 서울 중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피의자를 접견하려고 찾아갔다. 그런데 변호사 조〇환 및 피의자의 처는 그날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국가안전기획부 면회실에서 피의자를 접견하게 되었는데, 국가안전기획부 직원(수사관) 5인이 접견에 참여하여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듣고 또 이를 기록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그러자 변호사가 이에 항의하고 변호인과 피의자의 접견은 비밀이 보장되어야 하니, 피의자와 변호인이 따로 만날 수 있도록 해줄 것과 대화 내용의 기록이나 사진 촬영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무슨 말이든지 마음 놓고 하라"고 말하면서 변호인의 요구를 거절하고 접견하는 동안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그 후 이 피의자는 1991년 6월 26일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관들의 위와 같은 행위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헌법소원 심판청구를 하였다. 제43차 유엔총회는 1988년 12월 9일 "모든 형태의 구금 또는 수감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 제18조 제4항은 "피구금자 또는 피수감자와 그의 변호인 사이의 대담은 법 집행 공무원의 가시거리(可視距離) 내에서 행하여질 수는 있으나, 가청거리(可聽距離) 내에서 행하여져서는 아니 된다"라는 내용을 채택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이 1991.6.14. 17시부터 그날 18시경까지 국가안전기획부 면회실에서, 그의 변호인과 접견할 때 피청구인 소속직원(수사관)이 참여하여 대화 내용을 듣거나 기록한 것은 헌법 제12조 제4항이 규정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서 위헌임을 확인한다"(헌재 91헌마111)는 결정을 내렸다.
여인숙 방화사건 재판이 종결된 후 몇 개월이 지난 후 그 여인숙의 주인이 찾아왔다. 방화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들이 여인숙 주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어왔다면서 소장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형사사건 국선 변호인으로 재판을 하여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으니 민사사건을 맡아달라고 했다. 유족들은 방화를 한 가해자인 피고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그는 이미 징역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서 복역 중에 있고 손해배상을 해줄 재산도 없었다. 그래서 여인숙 주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한 것이다. 여인숙 주인 역시 투숙객끼리 심야에 벌어진 싸움으로, 여인숙이 완전히 불타버리는 손해를 입은 상태였다. 여인숙 주인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였다. 남편이 죽은 후 여인숙 운영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숙박시설 개선을 위한 투자도 할 수 없어서 몇십 년 된 낡고 오래된 여인숙을 운영해왔었다. 그런 여인숙을 찾는 이는 우연히 하룻밤 묶고 가려던 뜨내기손님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노동 일을 하면서 거처도 마땅찮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모여 지내던 곳이었다. 방화사건으로 사망한 유족들은 당연히 손해배상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반면, 여인숙 주인 역시 전 재산인 여인숙이 불타 없어져 버려 생계까지 막막한 상태로 변했다.
얼마 후 첫 번째 재판이 있었다. 우리 사건 순서가 되어 나는 피고석으로 나갔다. 이미 제출되어 있는 소장과 답변서에 따른 변론이 있은 후 원고들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말을 하였다.
"피고 대리인이 과거에 방화범인 피고인을 변론하였는데,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 사건에서 여인숙 주인인 피고의 대리인이 된 것은 수임 제한을 위반한 것 같습니다."
수임 제한이라는 매우 낯선 단어를 처음 들어본 순간이었다. 변호사법은 변호사가 어떤 사건을 맡을 수 없는지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지만, 그때까지 변호사법을 배운 적도 없었다. 스스로 그 법을 펴본 적도 없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그런 부분을 교육하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른 후부터 사법연수원에서 이런 내용도 교육하였다. 지금 로스쿨에서는 법조 윤리라는 과목을 신설하여 중요하게 교육한다.
변호사법에서는 '동일한 사건'은 변호사가 양쪽 당사자를 동시에 대리할 수 없도록 한다. 변호사 한 사람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원고와 피고의 두 당사자를 충실하게 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형사재판에서 여인숙을 방화한 피고인의 변호인이 되었던 내가, 그 피고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는 유족들의 대리인이 될 수 없다. 사실 변호사법에서 이 부분이 가장 어렵다.
나는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한 번도 변호사법을 공부해 본 적이 없고, 배운 적도 없었다. 그러니 원고 대리인 변호사가 하는 말을 잘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정확히 근거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방화범을 형사재판에서 변론하였을지라도, 여인숙 주인이 의뢰하는 사건을 맡는 것은 문제가 될 것 없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무튼 원고 측 변호사가 수임 제한 규정을 위반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재판장도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수임 제한에 해당될까요?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첫날 재판은 그렇게 끝났다. 그 후에 계속된 재판에서 재판장은 내가 수임 제한에 위반하였는지 여부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원고 측 변호사 역시 그 문제는 다시 거론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몇 개월 후에 재판이 끝나 판결선고일이 지정되었다.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여인숙 주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의 판결이 선고된 것이다. 패소한 원고들이 항소를 하였다. 그러자 의뢰인은 항소심도 맡아 달라고 했다. 그 무렵 나는 서울을 떠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래서 사법연수원 시절 지도 교수님이 부장판사로 퇴직하고 변호사 개업을 한 상태였기에 그분을 소개해 드렸다. 한참 후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뢰인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지만, 이겼다고 마냥 즐거워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