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교수 에세이 (35)] 금의환향했던 해남 변호사의 첫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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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교수 에세이 (35)] 금의환향했던 해남 변호사의 첫날

2021. 06. 24 12:07 작성2021. 06. 24 14:39 수정
정형근 교수의 썸네일 이미지
hkjung@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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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첫날 중환자실로 문병을 가려던 참이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게됐다. /셔터스톡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천관산 탑산사에서 지내던 중 20세에 청운의 꿈을 품고 올라갔던 서울을 뒤로 하고 해남으로 내려갔다. 땅끝마을 해남은 드넓은 농토와 바다로 농수산물이 풍부하다. 인구도 다른 군 지역보다 많았고, 인재도 많은 고을이다. 처음에는 고향인 장흥지원 부근으로 가려고 했지만, 모두들 물산이 부유한 해남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해남지원에는 판사 3명, 해남지청에는 검사 3명이 있었고, 그곳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는 4명이었다. 내가 새롭게 법률사무소를 이전을 하자, 그곳에서 개업 중인 변호사들은 어려운 시기에 왔다면서 걱정해주었다. 이 땅에서의 삶 자체가 힘들어서인지, 변호사들도 항상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업무를 시작하던 첫날 오전에 서울에서 같은 교회에 소속해 있던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님이 전화를 했다. 갑작스럽게 내가 사무소를 지방으로 이전한 것을 뒤늦게 전해 듣고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신앙생활을 잘하자고 권했다. 그러면서 "출세를 조금 더 하면 뭐할 것이며, 돈을 조금 더 벌면 뭐할 것이냐. 신앙인의 길을 잘 걸어가자!"고 했다. 좋은 말이었지만, 마음으로 동의가 되지 않았다. 교회 생활에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런 권면이 무척 진부하게 들렸다.


그날 오후에 초등학교 동창이 해남에서 인접한 강진 의료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해남에서의 첫 일정을 동창생 문병으로 시작했다. 이미 그 병원에는 갑작스런 중환자실 입원 소식을 듣고 여러 고향 친구들이 와 있다고 했다. 20여년 만에 그들을 만날 기대로 살짝 흥분되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 올라가서 변호사가 되어 고향에 돌아왔으니 금의환향을 한 셈이었다. 친구들에게 나눠줄 명함을 여러 장 챙긴 다음에 기사가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평화로워 보이는 들판을 달리면서 고향에 내려온 기분을 만끽하였다.


몇십 분 후에 강진 입구의 사거리에 이르렀다. 교통신호가 초록색이었다. 내 차가 천천히 사거리 중앙 지점을 지나고 있는데, 차창 밖에 내 차를 향해 달려드는 붉은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정지신호를 위반하고 달려오는 119구급차였다. 응급환자가 발생하였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출동 중인 구급차가 신호를 위반한 것이다. 내 차를 발견하지 못한 구급차는 내가 앉아 있던 뒷좌석 부분으로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순간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서 반사적으로 좌측으로 몸을 움츠렸다. 바로 그때 구급차가 차량 뒷문 부분을 세차게 들이받았다. 나는 새우처럼 움츠려진 채 옆 좌석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순간 머리를 다칠까 봐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 당시 평소와 달리 안전벨트를 매고 있지 않았기에 옆 좌석으로 피신이 가능했다. 산산조각난 유리 조각들이 우수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렸다. 자동차의 유리 조각이 뾰족하지 않고, 둥굴둥굴한 형태인 것을 그때 알았다. 충돌한 구급차의 앞부분도 움푹 들어간 상태가 되었고, 엔진 부근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나는 것 같았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움켜쥐고 간신히 차에서 내렸다. 충격을 당한 내 차는 사고 장소에서 시동이 꺼지고 멈춰버린 상태였다.


사고를 낸 구급차에서 내린 소방대원들이 나를 그 구급차에 태웠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강진의료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 병원 중환자실로 문병을 가려던 참이었는데, 교통사고를 당하여 그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간 것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정신이 없었고, 보이는 모든 것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응급실에서 볼품없는 런닝 차림의 환자의 모습으로 있는데, 사고 소식을 들은 동창들을 찾아왔다. "네가 정형근이냐?" 묻는 이도 있었다. 여러 명의 눈동자가 근심스럽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변호사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렸고, 병원 직원들이 누군가에게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전화 통화소리도 들려왔다. 그렇게 링거를 맞으며 응급실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때 오전에 서울지법에 계시는 부장판사님과의 통화내용이 생각났다. 출세를 더 하거나, 돈을 더 벌면 뭐할 것이라며, 신앙인답게 살아가자는 말이 뇌리를 스쳐 갔다. 사고의 원인이야 구급차 운전자의 잘못이었지만, 이 사고로 인한 뭔가의 교훈은 찾아야 할 것 같았다. 그간의 교회 생활은 갑작스럽게 당한 일을 신앙적인 측면에서 그 뜻을 새겨보도록 했다.


예수님의 부활 후에 그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 바다로 낙향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제자들처럼 나 역시도 신앙의 방향을 놓치고 고향을 찾아와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무튼 그토록 그리던 고향에 내려와 업무를 시작하였던 첫날에 당한 교통사고로 저세상으로 가지 않고, 다시금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날 밤늦게 병원을 나왔다. 사고당한 차량은 폐차를 위하여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택시를 타고 해남으로 돌아왔다. 해남으로 가던 중에 서울에 있던 아내에게 전화로 교통사고 당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 사건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흐트러진 신앙의 자세를 새롭게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해남으로 이사하려던 계획을 바꿔 가족들은 광주로 이사를 하고 전남대 선교단체(UBF)로 나가기로 했다. 주말에는 광주로 올라와 전도도 하고, 대학생들에게 성경도 가르치며 활발하게 지냈다. 어려운 시간을 겪었던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을 섬긴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세기 35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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