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팩 납품 40년' 신뢰, 한순간에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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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 납품 40년' 신뢰, 한순간에 무너지다

2025. 09. 09 16:49 작성
김혜지 기자의 썸네일 이미지
hj.kim@lawt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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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팩 납품 40년' 신뢰, 한순간에 무너지다

서울우유 / 서울우유 홈페이지

40년간 서울우유에 우유팩을 납품하며 굳건한 신뢰 관계를 쌓아온 삼영. 그 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2021년 11월, 서울우유는 삼영의 우유팩 사업부를 145억 원에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밝힌다.


전담 팀을 꾸려 실사까지 마쳤고, 이듬해에는 인수 예산을 150억 원으로 늘려 이사회와 대의원회에서 가결까지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인수 후에는 고용승계까지 약속하며 삼영 노동자들에게 '대기업 직원이 된다'는 꿈을 심어줬다.


그러나 이 '희망'은 2년여에 걸친 '희망 고문'이 됐다. 서울우유의 인수를 철석같이 믿은 삼영은 인수의향서에 명시된 '경쟁 거래 금지' 조항을 지키기 위해 다른 거래처와의 계약을 끊었다. 그 결과, 매출은 130억 원에서 78억 원으로 급감했고, 누적 손실은 35억 원에 달했다. 한 노동자는 "곧 대기업 직원이 된다"며 새 차를 샀다가 빚만 떠안게 되기도 했다.


2년간 이어진 ‘희망고문’의 전말

인수 협상은 2023년 9월, 서울우유 임시대의원회에서 인수 안건이 부결되면서 갑작스럽게 막을 내렸다.


삼영은 하루아침에 희망을 잃었고, 40여 명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결국 삼영은 오랜 시간 함께한 구미 공장을 120억 원에 농심에 매각했다. 고용승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삼영은 서울우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우유가 인수의지를 반복적으로 표명하며 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기대를 형성시켰고, 이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삼영 측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서울우유가 인수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부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서울우유의 손을 들어줬다. 삼영은 현재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거대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 법적 판단 넘어선 도덕적 책임은?

법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은 단순히 법적 책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우유는 1심에서 승소했지만, 협력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거대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비난은 피하기 어렵다.


민법 제2조는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기업 간의 계약뿐만 아니라 계약교섭 과정에서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서울우유가 법적으로는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2년간이나 인수의지를 표명하며 삼영의 기대를 형성시킨 후 갑작스럽게 인수를 중단한 행위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계약교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계약체결상의 과실책임'이나 '불법행위책임'의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항소심 법원이 1심과는 다른 판단을 내릴지, 그리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관계에 변화가 생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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