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연장 뒤 이사하려는데…집주인 “새 세입자 구해야 보증금 준다”
전세 연장 뒤 이사하려는데…집주인 “새 세입자 구해야 보증금 준다”
통보 기한 놓쳐 성립된 '묵시적 갱신'
새 임차인 구하라는 기존 특약 무효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형 AI로 만든 이미지
A씨는 2년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 B씨와 구두로 연장 의사를 나눴다. 보증금도 500만 원 올려줬으나 별도의 계약서는 쓰지 않았다.
최근 A씨가 주택을 매수해 이사를 가야 할 상황이 되자 B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B씨는 "원래 계약서에 있던 특약대로 새 임차인을 구해놓고 나가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계약서 없이 이뤄진 갱신에도 '새 임차인을 구해야 한다'는 기존 특약이 유효할까. A씨가 3개월 뒤 보증금을 안전하게 돌려받고 이사할 수 있을지 짚어봤다.
계약서 없는 연장, '묵시적 갱신' 성립이 관건
변호사들은 A씨가 B씨와 통화한 시점에 주목했다. 이들이 통화한 시점은 계약 만료를 불과 한 달 앞둔 때로,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에게 갱신 거절이나 조건 변경을 통보할 수 있는 법정 기한(계약 만료 6개월~2개월 전)은 이미 훌쩍 지난 뒤였다.
HB & Partners 이충호 변호사는 "양측 모두 법정 기간 안에 아무런 통지를 하지 않은 이상 그 시점에 이미 묵시적 갱신이 성립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후 보증금을 500만 원 올려준 것은 "이미 성립이 확정된 묵시적 갱신의 조건을 일부 변경한 것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목민 박현익 변호사 역시 "임대인과 임차인의 통화는 만기 32일 전에 이뤄져 이미 법정 기한을 넘긴 상태였다"며 "따라서 이 계약은 원칙적으로 '묵시적 갱신'이 성립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 만료 2개월 전까지 별다른 의사 표시를 하지 않으면 이전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자동 연장되는 '묵시적 갱신'을 인정하고 있다.
묵시적 갱신 인정 시 3개월 후 보증금 반환 청구 가능
A씨의 계약이 묵시적 갱신에 해당한다면, 당장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3개월 뒤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2에 따르면 묵시적 갱신이 된 경우 임차인은 언제든지 계약 해지를 통지할 수 있다. 또한 임대인이 그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이 지나면 해지 효력이 발생한다.
법률사무소 시야 오희재 변호사는 "묵시적 갱신에 해당한다면 임차인은 언제든지 해지를 통보할 수 있고, 임대인이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계약이 종료된다"며 "이후에는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졌는지와 관계없이 보증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법무법인 도모 김강희 변호사 역시 "묵시적 갱신일 가능성이 크므로, 해지 통지가 임대인에게 도달한 뒤 3개월이 지나면 보증금 반환을 청구할 여지가 있다"고 조언했다.
핵심 쟁점 부상한 '새 임차인 구하기' 특약…법조계 "효력 없어"
A씨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원 계약서에 명시된 "임차인 사정으로 만기 전 퇴실 시 새 임차인을 맞추고 중개수수료는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특약 조항이다.
전문가들은 이 특약이 현 상황에 적용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 행사를 '만기 전 퇴실'이라는 기존 특약으로 막을 수 없다는 취지다.
이충호 변호사는 "해당 특약은 만기 전 임의 퇴실을 전제로 한 것이라 법이 부여한 해지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설령 적용된다고 보더라도 임차인의 해지권을 제한하는 내용은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이어서 효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0조는 법 규정에 위반된 약정으로서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현익 변호사 또한 "법이 엄격하게 보장하는 3개월 후 계약 종료 및 보증금 반환 청구권을 원계약의 특약을 이유로 무효화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변호사들은 지금이라도 내용증명 등을 통해 집주인에게 명확히 계약 해지 의사를 통보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신언 법률사무소 박영재 변호사는 "적법하게 해지권을 행사했다면 새 임차인이 구해져야만 보증금을 반환받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지금이라도 내용증명으로 해지 의사를 알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