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빠가 다른 여자랑 같은 방에서 잤어" 딸의 말에, 엄마는 무릎을 꿇었다
[단독] "아빠가 다른 여자랑 같은 방에서 잤어" 딸의 말에, 엄마는 무릎을 꿇었다
"가정 깨지 말아달라" 상대 여성에 무릎까지 꿇었는데 지속된 불륜
"학교에 불륜 사실 다 알릴거야" 8개월간 협박 문자
'불륜 피해자의 불법 행위, 어디까지 참작될 수 있나'가 쟁점
![[단독] "아빠가 다른 여자랑 같은 방에서 잤어" 딸의 말에, 엄마는 무릎을 꿇었다 기사 관련이미지](https://d2ilb6aov9ebgm.cloudfront.net/2019-10-08T17.51.39.942_283.jpg?q=80&s=832x832)
“아빠가 어떤 이모랑 같은 방에서 잤어”라는 말에 아내는 충격을 받았다. 사건과 관계 없는 참고 사진. /셔터스톡
"아빠가 어떤 이모랑 같은 방에서 잤어."
2017년 9월 9일 저녁, 아내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아내는 4살 딸로부터 남편이 다른 여자와 같은 방에서 잤다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 교사인 남편은 얼마전 동료교사 3명과 함께 아이 동반으로 부산의 한 리조트에 다녀왔다. 아내는 불참했던 여행이었다.
다음날 저녁, 남편을 추궁했지만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보게 된 남편의 휴대폰. 그 안에는 남편이 그 '동료 교사'를 "자기야"라고 부르는 메시지가 있었다. 남편은 허둥대며 "손만 잡고 잤다"며 변명했다.
아내는 다음날 자신보다 5살 어린 불륜상대 여성을 찾아갔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드라마처럼 뺨을 때리거나, 얼굴에 물을 쏟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가정을 깨지 말아달라"고 빌었다. 모든 건 당시 2살, 4살이었던 두 아이에게 ‘이혼가정 자녀’라는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후 남편으로부터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쓴 각서도 받아내고, 불륜상대 여성의 약속도 받아냈다. 그렇게 두달 간 지옥같은 시간을 견뎠다. 그러나 아내에게 돌아온 건 끝나지 않는 불륜이었다.

결국 아내는 2017년 11월 20일 오후 5시쯤 ‘한 번이라도 사과를 받자’는 마음으로 불륜상대 여성이 근무하는 학교 앞으로 갔다. 그 앞에서 기다려 결국 만났다. 상대 여성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근처 주차장으로 갔다. 그러나 상대방 여성은 사과하지 않았다.
"할 말 다 했냐" "뭘 이야기 하라는 거냐"라며 오히려 아내를 타박했다. 그 과정에서 실랑이가 벌어졌고 상대 여성은 전치 2주의 엄지손가락 골절을 입었다. 아내는 역으로 형사 소송을 당했다.
지난 7일 열린 의정부지방법원 국민참여재판에서 나온 진술들을 종합한 사건의 전말이다. “어떻게든 상황을 벗어나려 했다”는 불륜상대 여성 김씨(33)는 아내 송씨(38)를 폭행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또한 사건 당시 송씨가 “학교 비상 연락망을 통해서 (불륜 내용을) 다 알릴거야”라고 한 것은 협박죄, 사건 이후 8개월간 23회에 걸쳐 “다 뿌리고 감옥 갈거야” 등의 문자를 보낸 것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죄에 각각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피고인석에 앉게 된 아내 송씨는 “상간녀에게 불륜했다고 말한 것도 죄가 되느냐”고 했다. 실랑이를 벌이고 협박 문자를 보낸 것은 맞지만, 더 큰 책임은 혼인관계를 파탄 낸 불륜상대 여성 김씨 측에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협의이혼 당시 가정법원도 남편과 김씨의 부정행위를 인정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결국 혐의의 쟁점은 모두 ‘불륜 피해자가 악에 바쳐 저지른 위법행위를 어디까지 참작해줄 수 있나’로 좁혀졌다. 이날 재판은 오후 11시 30분까지 12시간 동안 이어졌다.

사실, 재판 내내 불리한 입지에 놓여있던 사람은 아내 송씨였다. 앞서 약식기소에서 벌금 200만원이 내려졌고, 증인은 피해자인 불륜상대 여성 김씨가 유일했다. 이 사건과 비슷한 사건에서 ‘죄는 죄대로’ 처벌됐다는 점도 불리한 정황이었다.
우리 법원은 "불륜 피해를 입었다는 이유가 사적인 복수를 용납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판례를 일관적으로 쌓아오고 있었다.
검사 측은 폭행 사건 당시 불륜상대 여성 김씨가 녹음한 파일을 공개하면서 “(아내 송씨가 김씨에) ‘여우 같은 X’, ‘꽁치 같은 X’ 등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감정이 격앙된 상태였기에 ‘몸싸움이 없었다’는 송씨의 주장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검사는 “50분에 걸쳐서 김씨가 ‘가겠다’고 보내달라는 의사표현을 했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병원에서 받은 왼쪽 엄지손가락 골절에 대한 전치2주 진단서도 피해사실을 입증했다.
검사는 협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대해서도 “불륜 관계의 진위여부와 무관하게 김씨는 심각한 명예훼손과 공포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불륜 사실을 직장에 고발하겠다는 데 대체 누가 겁을 먹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혼 이후 아내 김씨가 아버지와 함께 김씨의 직장인 의정부 모 고등학교에 찾아가 소란을 피운 사실도 언급했다. 실현 가능성 있는 ‘협박’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변호인 측은 아내 송씨가 불륜상대 여성 김씨에 일정한 피해를 입혔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협박을 하고, 문자를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정황에 억울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송씨와 변호인은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불륜 피해자의 위법행위였음을 참작해달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먼저 폭행 혐의에 대해 변호인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녹음 된 파일의 소란스러운 소리 하나만으로는 폭행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변호인은 “녹음파일 어디에도 송씨가 김씨의 손가락을 억지로 벌리는 내용이 없다”라며 “김씨의 변명도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녹음파일에서 들리는 소란스러운 소리는 몸싸움 소리가 아니라 자갈밭 소리”라며 몸싸움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김씨의 피해 부위에 대한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는 점과 김씨가 병원에서는 싸운 게 아니라 ‘넘어져서 다쳤다’고 말한 점 역시 “폭행이 아니라는 근거”라고 밝혔다.
변호인은 송씨의 협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역시 “공포심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라며 “특별한 분쟁 없는 일반적인 대화였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실랑이를 벌이던 당시에도 송씨가 김씨에 ‘시간 뺏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점, 사건 발생 두달 전에도 송씨가 김씨 앞에서 직접 무릎을 꿇고 ‘가정을 깨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점이 제시됐다.
재판 내내 송씨의 어깨는 축 쳐져있었고, 떨리고 있었다. 더구나 전남편과 불륜상대 여성이 주고받은 카톡을 증거자료로 봐야 했다.
남편이 보낸 카톡 내용 중에는 불륜 사실을 들킨 직후 “(아내가) 우는 거 보기 싫다” “우리 만나고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던 것 같다” “자기(김씨)의 남편은 내가 아닌데, 그 틈을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라는 내용이 다수 있었다.
김씨는 “ㅋ” “내버려둬라” 등으로 무덤덤하게 답했다. 아내는 이 증거들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검사 측은 불륜상대 여성 김씨가 “실제로 상당한 공포를 느꼈다”는 주장의 근거로 아내 송씨의 '학교 난입'을 들었다. 아내 송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친정 아버지와 함께 김씨 학교를 찾아갔다. 검사 측은 “근거없는 소문이 퍼져 김씨가 학교에서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송씨 측은 즉각 “협박의 의도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송씨는 “가족이 너무나 힘들어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며 “어머니가 쓰러졌었다”고 밝혔다. 이어서 “아버지가 수차례 ‘그렇게 억울하면 아빠가 학교가서 다 이르고 감옥갈게’ ‘아빠는 70 넘어서 감옥살이해도 하나도 안 힘들다?’ 라는 말을 건넸다고 말했다. 송씨는 “‘아빠, 그건 아니야’라며 수차례 말리기도 했지만, 결국 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송씨는 최후진술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부끄러운 행동은 한 적이 없다”며 “오늘도 법정에 나오며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오겠다’ 약속하고 왔다”고 진술했다. 모든 건 불륜 피해자인 자신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했던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이어서 “현재 6살이 된 딸아이는 간질 진단까지 받았다”라며 “만약 하나라도 유죄를 받으면 법인에서 징계를 받게 돼 직장을 잃는다”고 배심원 측에 선처를 호소했다.
이를 듣던 배심원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모든 재판 과정을 지켜본 배심원 7명과 의정부지방법원 제13형사부(이영환 부장판사)는 오후 9시 쯤 법원 내 평의실로 자리를 옮겨 논의를 시작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2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드디어 11시 30분쯤 선고 결과가 나왔다. 재판부는 폭행치상, 협박,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받는 피고인 아내 송씨에게 “피고인은 무죄입니다”라고 주문했다. 재판장이 이유를 설명하기 전부터 송씨는 흐느끼며 북받치는 서러움을 참지 못했다.
재판부는 먼저 폭행 혐의에 대해 “불륜상대 여성인 피해자 김씨의 진술대로 폭행이 있었는지 확신에 이를 수 없다”고 밝혔고, 협박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역시 “전후 맥락과 전체 대화 내용을 보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유발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폭행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에서 배심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무죄라고 판단했고, 7명 중 5명이 협박에 대해서 역시 무죄라며 재판부와 판단을 같이 했다.
또한 재판장인 이영환 부장판사는 “사실 배심원들의 결론과 전문 직업 법관들이 그간 내려온 결론이 다른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인정하는 한편, 이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된다”고 밝혔다.
이어서 “배심원들의 의견은 합당하고, 합리적인 범주 내에 있다고 판단하여 우리 법원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무죄 선고를 듣고 표정이 어두워지던 검사 측에도 재판장은 “소송과 수사가 미흡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위로한 뒤 “원래 무죄판결이 되어야 할 사건이 전문 직업 법관인 검사로 인해 유죄가 된다면 그게 더 나쁜 걸 지도 모르겠다”고 전했다.
재판장은 “밤이 깊었는데 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말을 끝으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