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무비] 익숙함이 병들게 한다
[로드무비] 익숙함이 병들게 한다
[law de movie]
머니볼 (Moneyball), 2011 베넷 밀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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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빌리 빈 단장(브래드 피트 연기)은 데이터로 선수를 평가해 팀을 새롭게 구성하려 하지만 안팎의 반대에 부닥친다. / Sony Pictures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로마켓(Law Market) 사건을 선고했다. 인터넷 정보사업자 로마켓의 서비스를 금지해달라고 변호사단체가 제기한 소송이다. 특정한 두 법조인이 얼마나 친밀한지 보여주는 인맥지수, 변호사의 소송성적을 수치로 만든 승소율이다. 앞서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은 자기정보통제권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인맥지수는 공개된 정보를 조합하고 가공한 것이라 문제가 없지만, 승소율은 변호사 개인의 자기정보통제권을 침해하기에 위법하다고 했다. 그런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두 결론을 정반대로 뒤집었다. 인맥지수는 금지하고 승소율은 허용했다. 판결에는 인맥지수도 허용된다는 반대의견 대법관이 4명 있었고, 그중 2명은 보충의견까지 썼다.
변호사 승소율을 공개해도 된다고 대법원이 판단한 이유는, 변호사는 공적인 존재이므로 소송 수행 결과는 오히려 감시 대상이라는 것이다.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공적인 존재에 해당하므로 직무수행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직무수행 영역에서 형성된 공적 정보가 변호사별로 재가공되더라도 변함이 없다."
설령 정보가 불완전해도 법률수요자가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법률수요자의 입장에서는 불완전한 정보라 하더라도 법률서비스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변호사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다방면의 검토가 필요할 것이며, 그러한 정보의 취사선택은 법률수요자들에게 맡겨져야 할 것이다."
이와 달리 인맥지수를 공개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이른바 인맥지수는 변호사의 공적 업무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인맥지수에 의하여 표현되는 법조인 간의 친밀도는 변호사인 원고들의 공적 업무에 대한 평가적 요소와는 무관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정보로서 일반 법률수요자들이 변호사를 선택하기 위하여 최소한도로 제공받아야 할 공익적 가치가 있는 개인적 및 직업적 정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면서 친밀도는 재판과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 금지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법조인 간의 친밀도가 재판과 수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그릇된 인식이 심화되고 결과적으로 공정성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이 조장될 우려가 크다."
인맥지수 금지에 대한 반대의견은 '표현의 자유'를 문제로 보고 있다. "일반의 그릇된 인식을 심화시키고 재판이나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것은 추상적인 위험에 불과한 것으로서, 이를 이유로 헌법상 표현의 자유 내지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으로서 쉽게 허용될 수 없다." 오히려 변호사선임 계약을 하는데 인맥지수를 참고하든 말든 당사자의 자유라고 했다. "인맥이나 연고를 좇아 변호사를 선택하는 경우 비록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는 계약의 자유의 영역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법률수요자는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의 위험도 스스로 인수하는 것이다."
<머니볼>은 로마켓 판결이 있은 2011년 개봉한 미국 영화다. 메이저리그의 가난한 약체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 빌리 빈이, 기록만으로 선수를 평가해 구단을 재구성해 20연승 신기록을 세우는 실화다. 팔꿈치를 다쳐 공을 던지지 못하는 선수를 볼넷 출루율이 높다며 데려오고, 이상한 투구폼 때문에 외면받는 투수를 방어율만 보고 마운드에 세우겠다고 한다. 구단 스카우터들은 야구란 그런 게 아니라며 반대한다. 누구는 스트립바에 출입하고, 누구는 허리가 살이 붙어있다고 한다. 반대를 무릅쓰고 선수들을 데려왔지만 이번에는 감독이 선수들을 출전시키지 않는다. 애슬레틱스는 3승 14패로 꼴찌가 되고, 언론은 야구는 숫자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비난한다.

이에 빌리 빈은 스카우터들을 해고하고, 감독이 출전시키는 선수들을 다른 팀으로 보낸다. 새로 구성한 선수들을 직접 격려해, 출루하고 점수를 내는 데만 집중하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아메리칸리그 최고 기록인 20연승을 달성한다. 머쓱해진 언론은 이 대기록이 감독 덕분이라고 칭찬한다. 야구를 보는 팬들과 언론이 원한 것은 스타보다 승리였다. 이기는 게임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출루하는 선수를 응원했다. 서부리그 1위가 되었지만 빌리 빈은 말한다. "나는 성적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우승을 위한 것도 아니다. 다른 팀이 우승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만 우리처럼 가난한 팀이 우승한다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 해 부자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의 영입 제안을 빌리 빈 단장이 거절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일본법에 관한 중요한 논쟁이 일본인의 재판기피 문제다. 시작은 도쿄대학 법학부 노다 요시유키(野田良之) 교수가 1966년 프랑스어로 펴낸 일본법 교과서(Introduction au droit japonais)다. "일본인에게 법은 국가가 국민을 강제하는 수단이기에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것이다. 재판 당사자가 되기 싫어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재판기피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논문(The Myth of the Reluctant Litigant)을 1978년 미국 워싱턴대 로스쿨 존 헤일리(John Haley) 교수가 발표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재판 이용이 활발했는데 이후에 감소한 것이다. 이유는 재판관과 변호사가 적고, 소송 기간은 긴데 비해 비용은 높아서이다. 원인은 제도에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다 1988년 미국 하버드대 마크 램지어(Mark Ramseyer) 교수가 일본인의 재판기피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인의 소송기피는 법문화적 요인이나 높은 소송비용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판결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 당사자가 소송을 택할 것인지 화해와 조정을 택할 것인지 합리적으로 계산한 결과"라고 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유혁수 가나가와대학 교수는 최근 펴낸 <일본법 강의>에서, 도쿄대학 무라카미 준이치(村上淳一) 교수 얘기가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재판 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것 자체가 일본인의 법‧권리의식이 약한 것을 의미한다. 법의식이나 국민성 같은 정신적 요인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상황을 대립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신구조를 포함한 사회구조'를 규명해야 한다."
미국변호사협회(American Bar Association)는 해마다 루이스 브라운상을 시상한다. 루이스 브라운은 예방법학으로 유명한 미국 법학자이다. "변호사를 만나야 할 때는 법적으로 건강할 때이다. 다시 말해 소송이 일어나기 전,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기 전"이라고 자신의 교과서에서 설명했다. 1995년 제1회 수상자는 전화로 변호사와 법률상담을 가능케 한 서비스(Tele-Lawyer, Inc.)였다. 이후 지역 주민에게 변호사를 추천하는 지방 변호사회 프로그램, 로스쿨의 비영리 리걸클리닉 등이 상을 받았다. 2020년 수상자는 18세 영국 청년이 개발한 인공지능 법률서비스 두낫페이(DoNotPay), 미국 스탠포드대 2학년생 조슈아 브라우더가 2015년 만든 무료 어플리케이션이다.
영국 런던에 살던 브라우더는 30차례 주차위반 과태료를 받았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나누려 어플을 만들었다. 우선 이의제기 가능한 사유들을 확인한다. 과태료가 부과된 곳에 주차를 제한하는 안내 문구가 있었는지, 운전자가 병원에 긴급하게 가야 했는지 등이다. 항목을 선택해 내용을 적으면 자동으로 이의제기 문서가 보내진다. 어플 공개 4개월 만에 이용자의 40%인 3만 3000명의 과태료가 취소됐다. 1인 평균 60파운드(9만 7000원)로 모두 200만 파운드(32억 35000만원)이다. 이후 서비스 국가와 분야를 넓히고 유료로 전환했다. 미국변호사협회는 "서민들이 저렴하고 쉽게 법률서비스에 접근하도록 만들어 소비자의 권리를 민주화했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로마켓 판결 10년 만인 2021년 서울대 로스쿨 천경훈 교수가 인맥지수에 관한 칼럼을 법률신문에 썼다. "로펌에서 변호사로 근무하던 때다. 갑자기 어떤 지방법원의 형사사건을 맡아 달라는 전화가 심심찮게 오기 시작했다. 공정거래, M&A 등 기업자문을 하던 나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알고 보니 그 법원의 형사단독 판사 한 분과 내가 사법연수원 기수, 출신학교, 나이 등이 비슷해서 변호사 소개 사이트의 '인맥지수'가 99점이나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친한 분이기도 했다. 형사는 전문분야가 아닌데다가 로펌에 소속된 몸이라 수임이 어렵다고 일일이 거절했지만, 꼭 맡아 달라는 부탁 너머에서 인맥지수 99점 변호사에 대한 비릿한 기대가 느껴졌다." 로마켓 사건 판결은 현실을 모르고 한 것이거나, 당위와 실제를 뒤바꾼 것일지 모른다.
재판기피가 문제인 일본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곳이고 정보기술 분야가 많이 뒤처진 나라이다. 도쿄대학에 유학하던 시절 기숙사 근처에 1888년부터 영업 중인 빵집이 있었다. 나름 최신 설비를 갖췄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손님이 현금을 넣으면 자동으로 거스름이 나오는 기계가 있었다. 빵값은 장치에 달린 카메라가 빵을 인식해 계산했다. 우리 같으면 카드를 받거나 바코드를 붙일 테지만, 나름 디지털화한 것이다. 하긴 체크카드를 만들러 은행에 가니 도장을 만들어 찍으라고 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는 우편으로 보내줬다. 과거 소송기피라는 오명이 붙은 나라이지만 이미 변호사 소개 사이트가 성업 중이다. 정보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일본 사회도 변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2000년대부터 법조를 담당하는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 사이 산처럼 물처럼 당연한 것들이 대부분 바뀌었다. 대통령에게조차 기득권이라 비판받던 언론도 변하고 있고, 대한민국 최고 무소불위라는 검찰의 권한도 줄었다.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 바뀌어야 했고,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바뀌었다. 돌이켜 보면 변하지 않은 곳은 변호사 업계뿐이다. 바뀌지 않으면 외면받고 마침내 소멸할 뿐이다.
